[이신석의 난행難行⑭] 여성난민들의 ‘삼중고’···성폭행·호흡기질환·용변
[아시아엔=이신석 <아시아엔> ‘분쟁지역’ 전문기자] 1월 5일, 오늘은 비가 오지 않았으나 어제보다 더한 태풍이 불었다. 비알캠프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기사는 어제 보다 오늘 상황이 참담할 것이라고 했다. 내가 “비 오는 날이 힘들지 그래도 바람은 좀 낫지 않느냐”고 되물으니 그는 “가서 한번 보라. 아마 처참한 광경이 펼쳐져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바람이 불면 임시로 만들어 놓은 텐트가 날라가기도 하고 무너져내려 버리니 더 난장판이 되어 있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난민 캠프에 도착하니, 섬의 경찰병력이 턱 없이 부족해 그리스 본토에서 충원돼 왔다는 무장경찰들은 대형버스에서 대기하며 비바람을 피하고 있었다. 그들은 정문에 배치되어 내외부의 치안과 보안을 담당했다. 작은 버스에 타고 항시 대기하고 있는 경찰병력이 있었는데, 그들과 달리 이들은 차 안에만 있고 중무장 상태인 것으로 보아 비상출동팀으로 보였다. 그들은 차 안에서 수용소 외곽을 드나드는 필자를 날카롭게 지켜보면서도 별다른 조치는 취하지 않았다.
한번도 검문검색이 이루어지지는 않았으나 긴장의 끈을 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서서히 언덕을 올라가는데 흑인 난민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영어로 말을 걸어왔다. 손을 올리브농장 너머로 가리키며 한번 가보라는 제스처를 연신 하는 것이었다. 나는 알았다고 답한 후 그쪽으로 발걸음을 하게 되었다. 거기에선 구호단체가 겨울옷을 나누어 주고 있었는데 난민들이 3~4시간째 줄을 서서 배급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와중에 줄 밖에서 자기에게 먼저 달라고 애원하는 난민들도 있었다. 별의 별 모습이 다 보였다. 같은 난민이면서 자원봉사에 나선 난민에게 욕지거리를 하며 싸움을 걸다가 이내 수습이 되었다. 한 아프리카인은 저런 옷들은 싫다며 기자의 옷을 벗어달라고 집요하게 쫓아다녔다. 다른 아프리카인은 내 신발이 맘에 든다며 벗어달라고 애원했다. 기자가 소지하고 있는 아이템을 자신들도 갖고 싶어 쫓아다녔는데 그들은 모두 아프리카인이었다.
긴 줄에 서서 기다리다 지치고 날도 추워지자 난민들은 올리브나무 가지를 꺾어 불을 피웠다. 전날 인근 주민들이 도로를 점거하며 시위를 했던 이유 중에 하나는 난민들이 올리브나무를 베어가 땔감으로 쓴다는 것이었는데 난방을 위해서는 그것 말고는 별다른 방법이 없어 보였다.
밖에는 너무 추워서 운신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시리아 이들리브에서 왔다는 중년 남성이 깡통에 불을 피우길래 합석을 했다. 알 아사드 대통령의 부대가 폭탄을 퍼부어 온 도시가 잿더미가 되고, 봉쇄되어 기아와 갈증에 허덕이던 이들리브 출신이었다. 그는 폭탄에 상처가 나고 매일 밤 후유증에 고통스러워 한다며 내게 상처를 보여주었다.
그는 자신이 끓여 마시던 차를 잔에 따라주었다. 지나가다 너무 추워 손을 녹이려 하지라족 청년 2명이 불가에 다가왔다. 손에 뭔가 쥐어 있어 보니 생쥐였다. 왜 쥐를 갖고 다니느냐고 물으니 쥐가 너무 추워해 불가에 좀 몸을 녹여준 뒤 놓아주려 한다고 답했다.
감옥 같은 난민촌, 섬에 갇혀 지난한 시간을 보내는 그들은 하찮은 쥐지만 다른 생명체에 대한 소중함이 절로 생기는 게 아닌가 싶었다. 비록 자신들에게 쥐벼룩과 질병을 가져다주는 쥐라는 생명체조차도 그들은 귀하게 여기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