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석 분쟁지역 순회특파원 인터뷰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었다”
[아시아엔 편집국] 2차 대전 후 세계는 평화를 외치고 있지만 분쟁의 불씨는 지금도 곳곳에 남아 지구, 특히 아시아를 조각 내고 있다. 이신석 분쟁지역 순회특파원은 15년간 분쟁지역과 그 지역의 난민들을 만나며 아시아의 조각난 파편을 끼워 맞추고 있다. 그런데 “왜?”라는 철 없지만 원초적인 질문이 우리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다. 그래서 <아시아엔>의 철없는 아이들이 그에게 철없는 질문을 던져봤다. 또한 <아시아엔>은 2월 26일(월)부터 이신석 분쟁지역 순회특파원의 쿠르드 난민수용소 르포를 게재한다.
이 일을 시작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너무 개인적인 부분이라 자세하게 밝힐 수는 없지만, 종교적으로 커다란 경험을 한 후 이 일에 확신을 갖게 됐다. 지난 15년간 중근동 지역만 30여 차례, 발칸국가 20여 차례, 코카서스 20여 차례, 그 외 동유럽, 쿠바, 남아시아, 중앙아시아 등지를 수십 차례 다녀왔다. 약 3년 전 김군이 IS로 넘어갔을 당시, 현장을 다녀오며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한번 나가면 얼마나 머물다 오나.
보통 1~3개월 정도 체류한다. 가장 최근엔 두 달 좀 넘게 있었고.
한국에선 남자가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통념이 있다. 안정적인 수입을 바랄 수 없는 일인데 생계로 고생한 적은 없나.
글쎄, 돈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웃음). 50여 가지 직업을 가졌었다. 그래도 돈 좀 벌었다는 것은 대여섯 번 정도 밖에 안되지만. 그런데 이런 것들이 별로 의미가 없다. 사람마다 각자의 우선 순위가 있다면 내게 돈은 가장 최하위에 속할 것이다. 젊은 사람들이나 보통 사람들에겐 돈이 굉장히 중요할 수 있겠지. 내게 돈은 나중 문제다. 가족의 안위와 건강, 내가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것들이 우선이다. 돈의 우선 순위가 낮으니까 그렇게 걱정하진 않는다.
여러 곳을 다녔다. 그 중 기억에 남는 음식 등은 없었나.
이란 아제르바이잔 주의 주도인 타브리즈(Tabriz)의 찻집 풍경이 기억에 남는다. 매우 좁은 공간인데 백 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그 안에서 차를 마시며 흡연하더라. 지금의 한국에선 상상도 못하는 광경이지.(웃음) 좋은 음식도 많았다. 터키 동부에서만 먹는 바비큐(Ocakba?ı)와 이란 북부의 양고기가 정말 맛있었다. 특히 이란 양고기는 세계 최고다. 양고기를 많이 먹어봤는데 이란에 비할게 아니더라. 숙성이 뛰어난 것도 그렇고 원하는 부위만 딱 잘라서 불에 직접 구워주는데 그 맛을 잊을 수 없다. 보통 외국 나가면 음식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한다고 하는데 사실 난 한국에서 더 고생한다. 매운걸 못 먹어서.(웃음) 외지에 나가 있는 동안 한국 음식이 그리운 적은 별로 없었다.
최근 쿠르드 난민이 거주하고 있는 그리스를 다녀왔다. 분쟁지역을 다니기 이전엔 쿠르드족을 어떻게 바라봤나. 많은 사람들이 이들을 테러집단이라 여긴다.
그들이 테러리스트라고 생각한 적은 추호도 없다. 쿠르드족 숫자가 거의 4천만에 달하는데 그 안에도 별별 사람이 다 있다. 일제강점기 때 친일파가 있었듯이 쿠르드인 사이에도 친터키파와 배신자들이 있다. 정치적인 문제에 관심 갖기보단 ‘그냥 돈이나 벌겠다’는 비즈니스맨도 있고. 정말 가난하고 어렵게 자라왔는데 독립에 헌신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다 스무 살도 채 되지 않았는데 뜻을 이루기도 전에 죽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내 눈에 보였다. 쿠르드족은 터키뿐만 아니라 시리아, 이라크 등지에서도 살고 있는데 그 곳에도 친정부파들이 있다. 이들은 흔히 말하는 ‘가진 사람들’이다. 일제치하 때 친일파가 그러했듯, 이들도 독립을 외치는 대다수의 쿠르드족을 외면하고 있다.
그동안 많은 쿠르드족을 만나왔다. 쿠르드족의 특징 같은 것은 없나.
쿠르드족은 술을 즐기진 않지만, 일단 흥이 나면 춤추고 노래 부르는 것을 굉장히 좋아한다. 이들은 이라크, 이란, 시리아의 산악지대를 돌아다니는 산간 유목민이다. 그래서인지 쿠르드족에도 유목민의 일반적인 특징들이 묻어있더라. 외형을 보자면 이들은 체격이 작은 편이다. 경제적으로 낙후되고 궁핍한 지역에서 살아왔으니까. 쿠르드와 다투고 있는 터키와 비교해 예를 들어보겠다. 터키인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 중에는 덩치가 큰 사람들이 꽤 많은 편이다. 이에 비해 쿠르드인은 왜소하기 그지없다. 굳이 비교하자면 늑대와 아프리카 들개 정도의 차이? 그런데 분쟁지역을 돌아다니면서 느낀 것이 있다. 현대전은 복잡한 도심의 시가지나 산악지대에서 주로 벌어진다. 덩치 큰 사람들이 유리해 보이지만 꼭 그렇진 않다. 은폐하기 좋고 민첩한 체격이 더 유리하다.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쿠르드족 하면 전사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근래 들어 자주 등장하는 페슈메르가(YPG, 쿠르드민병대)만 봐도 그렇다. 쿠르드의 전통이기도 한데 위기에 처하면 홀연히 일어나 민족을 지키는 이들이 페슈메르가였다. 쿠르드족이 절멸하지 않았던 것은 이들의 존재가 컸다고 본다.
가족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은 당신을 어떻게 바라보나? 많이 걱정할 것 같다.
사람들은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그다지 관심 갖지 않는다. 또 듣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다만 아내는 내가 무슨 일을 하든 나를 완전히 신뢰한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떻게 변했는지 잘 알기 때문에. 물론 아내는 내가 위험한 곳 다닐 때마다 걱정을 많이 한다. 나도 두려운 것은 똑같다. 위험한 곳에선 하루에 몇 번씩 기도한다. 기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다. 예를 들어 어느 마을에서 머물고 있는데 누군가 내게 “오늘 안에 너를 납치해 살해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고 생각해봐라. 그런 말 듣는데 사람이 잠을 잘 수 있겠나. 누가 들이닥치면 도망가야 하니까 창문 한 쪽을 열어놓고 뜬 눈으로 밤을 지샌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위급한 상황에선 어떻게 대처하나.
호신용품을 늘 소지하고 다니기는 힘들다. 내 외모에 그런 것 들고 다녀봐라. 의심 사기에 딱 좋다.(웃음) 문제가 생기면 외국인에게 불리할 수 밖에 없기도 하다. 사소한 시비가 붙거나 정말 심각한 위기에 처하면 일단 그 자리를 피하고 본다. 이래봬도 육상선수 출신이라 뛰어다니는 것은 자신 있다.(웃음)
분쟁지역 순회특파원으로 세상을 돌며 가장 좋았던 순간과 힘들었던 순간이 있다면.
터키의 쿠르드족 거주 지역인 하카리에서 경찰에 체포 됐을 때 가장 힘들었다. 그 곳을 방문하기 며칠 전 쿠르드 독립을 주장하는 PKK가 터키 경찰과 군을 사살한 사건이 벌어졌다. 때문에 경비가 매우 삼엄했는데 경찰들이 “외국인이 어떻게 검문을 뚫고 여기까지 왔냐”고 묻더라. 한국으로 치면 DMZ 같은 곳이었으니까. 현지 경찰이 나를 테러리스트들과 연관돼 있다고 의심해 체포하더라. 온갖 고생 다 했다. 그때 일은 2016년 1월 <아시아엔>에 연재되었던 ‘쿠르드 분쟁지역 억류기’ 편을 통해 전한 바 있다. 반대로 가장 좋았던 기억은 이란의 사막을 홀로 걸을 때였다. 두 달 반 정도 체류했는데 나 자신과 대화하며 내면의 깊은 슬픔을 발견했다. 아무 것도 없는 사막에 홀로 서 있다고 상상해봐라. 내 자신을 돌아볼 수 밖에 없다.
대화를 할수록 그간의 고생이 느껴진다. 그럼에도, 당신이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프리카의 가장 가난한 나라들을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많은 곳을 돌아다니다 보니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은 분쟁지역의 약자더라. 전쟁이 벌어지는 곳의 어린이, 부녀자, 노인들이 세상에서 가장 약한 사람들이다. 이 일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철거에 반대하는 주민들만 봐도 누가 곁에 있어주는 것 만으로 큰 힘이 되지 않나. 분쟁지역의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외지에서 온 타인이 곁에서 공감하고 지지해준다는 것에 큰 힘을 얻는다. 물질적인 부분도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안다. 나도 처음엔 물품들을 많이 가져다 주기도 했고. 그런데 하면 할수록 물건보다 마음으로 지지해주는 것이 더 중요하고 가치 있다는 걸 느꼈다. 난 여전히 부족한 사람이다. 내가 다녀온 곳을 온전히 글로 표현하는 것이 지금도 힘들다. 그럼에도 매체의 지면을 할애 받아 그들의 고통을 알릴 수 있다는 것에 무엇보다도 큰 보람을 얻는다.
다음엔 어디를 방문할 예정인가.
갈 수 있는 곳이 그리 많지 않다. 터키의 경우 블랙리스트에 올라 들어갈 수 없다. 가고 싶은 곳이 따로 있긴 하지만 법적인 제약이 있어 힘들다. 여전히 고민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