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석의 難行①] 오스트리아서 만난 35살 아프가니스탄 난민 ‘싱’

이신석 기자(오른쪽)와 아프간 출신 싱
<아시아엔> 이신석 분쟁지역 전문기자가 12월 17일 또다시 험난한 취재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이신석 기자는 유럽에서 시작해 아시아로 넘어와 파키스탄과 인도, 미얀마, 태국, 말레이시아 그리고 인도네시아에서 1차로 마무리 될 예정입니다. 지난 10년 이상 분쟁지역을 목숨 걸고 찾아다니며 난민과 램넌트들의 고달픈 삶을 취재해온 이신석 기자는 말합니다. “분명 가서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고 믿기에 또 긴 여정을 시작합니다.” <아시아엔>은 ‘이신석의 難行’이란 타이틀을 붙여 연재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관심과 격려 당부드립니다. <편집자>

[비엔나=이신석 <아시아엔> 분쟁지역 전문기자] 17일 인천공항을 출발한 나는 발칸반도를 통해 EU국가로 들어가기 위해 떠돌고 있는 난민들을 만나기 위해 유럽 중앙부인 오스트리아로 향했다.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난민수용소는 트라이스키르첸에 위치해 있다. 1950년대는 헝가리혁명 과정에서 빠져나온 헝가리 난민들의 수용소로 사용됐다. 이후 체코슬로바키아 난민과 동유럽과 이란, 이라크, 우간다 난민들도 수용하다 2015년 유럽 난민이 크게 늘면서 수용인원이 급증했다.

트라이스키르첸 수용소 내부가 멀리 철창 안으로 보인다. 

트라이스키르첸(Traiskirchen)에 위치한 난민수용소엔 4500명 안팎이 수용되어 있는데 물자 부족과 비위생적인 열악한 환경에서 폭력과 범죄가 난무하고 있다고 매체에서 읽은 적이 있다. 특히 남녀가 구분되지 않고 함께 수용돼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직접 이곳 난민수용소를 찾기로 했다. 오스트리아 수도 비엔나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이라고 해 우버택시를 탔으나 운전사는 위치는커녕 난민수용소 존재조차 알지 못했다. 다운타운에서 내린 나는 낯선 도시에서 두시간을 걸어 다니다 마침내 수용소를 발견했다.

1900년에 지은 건물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이 2천명 규모의 군대 병영으로 사용한 적도 있다고 한다. 역사가 말해 주듯 암울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외부에서 보기엔 일반 관공서와 경찰서 같은 시설이 눈에 들어온다. 난민들이 수용된 건물은 안쪽 깊숙이 위치해 외부와 차단이 되어 있어 검문을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다. 감시카메라가 곳곳에 설치되어 있으며 외부인은 사전 승낙이나 특별한 목적없이 출입을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사진 촬영도 쉽지 않아 멀리서 몇장 찍을 수밖에 없었다. 공연히 서성대다 경찰에 체포되어 곤욕을 치를 지도 모른다. 나는 난민 수용소 분위기를 느끼는 것으로 만족하고 자리를 떴다. 이곳이 나의 목적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수용소에서 1km 가량 떨어진 역에서 비엔나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아프가니스탄 출신 난민을 만났다.

이신석 기자와 싱

35살 ‘싱’이라고 했다. 아프가니스탄의 소수 시크교 출신이다.

-미스터 싱, 왜 이곳까지 왔나?
=형이 무슬림이 아니라는 이유로 내가 보는 앞에서 처형당했다. 나와 나머지 가족도 처형 당할 위기에서 도망쳐 나왔다. 아프가니스탄을 떠나 현재 4년째 유랑생활을 하고 있다.

그의 형을 참수한 단체는 탈레반과 더불어 과격 무슬림 단체 중 하나인 ‘판쉐리’라는 무장단체라고 싱은 말했다.

-그동안 어디어디를 거쳐서 왔나?
=처음에는 파키스탄으로 넘어가서, 이어 이란으로 이동했다. 그 이후로도 수많은 나라를 떠돌았다. 다행히 1년 전에 나 외에 부보님과 아내와 우리 아이 둘은 영국에 정착하는데 성공했다.

-이곳 오스트리아에 어떻게 왔나?
=그리스 아테네에 있다가 1주일 전, 그러니까 12월 10일쯤 오스트리아에 들어왔다. 현재 국제적십자의 도움으로 영국에 있는 가족과 상봉하는 절차를 밟고 있는 중이다.

싱의 말을 들으며 나는 최근 2~3년 사이 내게 일어났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나는 2019년 1월 이란의 국경지역을 취재하기 위해 들어가려다 입국금지를 당했다. 그곳에서 이란 보안당국의 강제력에 의해 좌절된 입국으로 인해 나는 무력감에 빠져 한동안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2017년 초 터키에서 추방당했던 아픔이 채 가시기 전에 발생한 일이어서 더 그랬을 터다. 남의 나라 국경을 넘지 못한 절망이 이럴 진대 형제를 잃고 가족과 흩어져 4년째 떠도는 35살 아프간의 싱의 처지를 생각하니 울컥 뭔가 내 입에서 나올 것 같다. 

내 눈 앞의 싱은 7년 이상 <아시아엔> 분쟁지역 전문기자를 맡고 있는 나의 원초적 본능을 다시 일깨워주고 있었다. “나는 여기서 멈출 수 없다. 다시 일어나 분쟁지역을 향해 떠나자. 그곳에서 갈 곳 없어 방황하는 이들을 만나자. 그리고 힘껏 안아주자.” <계속>

시리아 출신 난민. 그의 다음 행선지는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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