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석의 난행難行⑥] “5년전 친형이 시리아정부군 총에 맞아 죽어 고향 떠나왔어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로 이동하여 죽음을 무릅쓰고 EU회원국 크로아티아로 넘어가겠다던 시리아 청년과 함께 한 이신석 기자(오른쪽)

[아시아엔=이신석 <아시아엔> ‘분쟁지역’ 전문기자] 밤이 되어 다시 카페에 들렸다. 짐작했던 대로 대략 그들의 정체가 윤곽이 잡히기 시작했다.

낮에 역 앞을 지나다 난민 청년들 무리를 보았는데 그 중 한 청년이 내가 먼저 권하기 전에 ‘버릇없이’ 담배를 달라고 했었다. 바로 그 청년은 한 그룹의 대장으로 예닐곱명의 청년들에게 소리를 지르며 잰 걸음으로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청년은 한 그룹의 리더로 보였으며 매우 거칠었다.

카페에 들어와 “밖에 있는 쟤들 왜 저러냐”고 그에게 물었다. “오늘밤 바람이 많이 불고 추워서 같이 집합해서 노숙지로 함께 이동해야 하는데 조직원들이 오지 않아 닥달하는 것”이라고 누군가 귀띔해 주었다.

카페가 문을 닫을 시간이 다가와 청소를 하기 시작했지만, 아랑곳 않고 알레포 출신의 ‘아부’라는 이름의 청년과 대화를 계속 나누었다. 그는 “5년 전 친형이 머리에 총 2발을 맞고 죽었다”며 피 흘리며 절명한 형의 사진을 보여줬다.

그것이 그가 난민의 길을 떠나게 된 이유였다.

이곳에서 만난 아프리카 난민들. 이들 바로 위에 걸려있는 반라의 여인이 모델로 나오는 광고판이 너무 대조적이서 기자는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그때 검은 피부의 청년이 합석을 했다. 그는 시리아 수도인 다마스쿠스에서 왔는데 아사드 정권에 반대하여 난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내가 “몸이 좋고 굉장히 날렵해 보인다”고 했더니 그는 “여긴 약육강식이다. 강한 자만 살아남는다”고 했다.

이윽고 그들은 유튜브 켜며 세르비아에서 EU 회원국인 헝가리로 철조망을 통해 넘어가는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여기 담긴 메시지는 무엇을 뜻하는지, 아부는 끝내 말 없이 눈만 붉혔다. 

-당신들 계획이 뭔가?
“우리는 내일 국경을 넘어갈 것이다.”

-어디로 가는가?
“말해줄 수 없다.”

-어떻게 넘어가는가?
“강을 건너기로 했다.”

-추운데 어떻게 강을 건너는가?
“보트가 준비되어 있다.”

-어떻게 보트가 준비되는가? 믿어지지 않는다.
“동영상을 보여주겠다.”

12월 중순 강을 건너다 헝가리측 헬리콥터에 포착되어 실패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은 내일(12월 24일) 또 시도한다고 했다.

-EU로 넘어가면 영국으로 가는가?
“아니다. 네덜란드로 간다.”

그때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난민이 다가와 경직된 자세로 서서 이야기를 붙인다. 너무도 간절한 표정이다. 무언가 부탁을 하는 듯했다. 다마스쿠스 출신의 청년은 앉아서 잠자코 듣기만 한다. 그는 자신이 그룹의 리더이며 이번 계획을 주도하고 있다고 했다. 알레포 출신의 아부는 그의 오른팔로 보였다. 아부가 그를 대하는 태도와 표정으로 미루어 보건대, 그가 신체적으로 강해서라기보다 믿을만한 인간성과 민첩한 행동 그리고 판단능력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그들이 보여준 동영상 속에는 다리밑에 있는 거처에서 담요를 뒤집어 쓰고 자는 모습이 담겨 있다. 

아부는 어떤 교각 아래 있는 자신들의 은신처를 찍은 사진도 보여 주었다. 다리 아래 길게 슬리핑백을 펼치고 서로의 체온에 기대어 자는 것이 보였다.

메고 다니는 백팩이 크지 않은 것으로 봐서는 중요 물품만 백팩에 넣어 다니고, 그 다리 밑 장소에 슬리핑백과 취사도구를 두고 다니는 듯했다.

그들은 내게 자신들의 비참한 현실을 담은 동영상을 보여준다. “미스터 리, 이 꼴 보면서 웃고 싶으면 웃어도 된다”면서 말이다.

동영상에는 바로 앞 사바강에서 물을 길어 장작불에 데워 팬티만 입은 채 목욕하는 그들의 모습이 찍혀 있었다. 그 장면을 보며 나는 웃어주었다. 마음은 애처롭고 슬펐지만 그 순간 그들과 함께 웃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며칠 지나면서 그것이 두고 두고 마음 아팠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