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석의 난행難行⑨] “죽을 때 죽더라도 국경 넘어 EU국가로 갈 것”
[아시아엔=이신석 <아시아엔> ‘분쟁지역’ 전문기자] 사라예보에서 난민수용소에 접근이 불가능했던 필자는 당초 예정대로 비하치로 가보기로 했다. 비하치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북서부 우나사나州의 중소도시로 크로아티아와의 국경에 인접해 있는 곳이다.
한국인들이 즐겨 찾는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에서 높은 산을 넘으면 만나게 되는 곳이다. 현지인들은 “그곳을 흐르는 우나강이 보스니아의 수많은 강들 중에서 가장 생태가 잘 보존되어 있다”고 입을 모아 자랑한다. 그들 말처럼 48km의 우나강을 끼고 있는 국립공원은 플리비체 국립공원보다 훨씬 더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아름다운 지역에 난민들이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발칸 루트를 통해 유럽연합 국가들로 들어가려는 난민들이 2016년 크로아티아가 난민의 입국을 금지시키자 사실 상 그 루트는 막혀 버린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 이후 난민들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 의도치 않게 머물며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돼버린 것이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는 총 8곳의 난민수용소가 운영되고 있는데 그중 가장 큰 곳이 비하치에 있는 비라캠프다. 비라캠프는 멀지 않은 곳에 있어 쉽게 찾아갈 수 있었으나 출입이 통제되어 들어갈 수가 없었다. 출입허가증을 신청하면 가능하다고 했지만 허가증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걸릴 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비라 난민수용소 주위를 조심스레 다니다 보니 난민들 여럿을 만나 대화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그들은 난민수용소에서 지내기도 하지만 많은 이들이 여름이 되면 산을 넘어 크로아티아의 국경을 통과하기 위해 길거리나 무허가 건물에서 지내기도 하고 더러는 산속에서 생활하기도 한다고 했다.
특히 지난해 6월 비하치 근처의 부챠크라는 곳에 난민들이 임시 천막촌을 만들어 거주하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전기, 수도도 없이 800여명이 지내고 있었다. 그러나 12월 초 눈이 내리기 시작하자 천막 안으로 물이 새들어오고 기본생활이 불가능해지면서 급기야 보스니아 정부는 12월 10일 부챠크 임시수용소를 철거하기에 이르렀다.
불도저를 동원해 천막과 임시시설물을 철거하는 과정은 12시간이 넘게 걸렸다고 한다. 그곳에서 생활하던 난민들은 사라예보 외곽에 위치한 두 곳의 난민수용소로 나뉘어 보내졌다.
크로아티아 경찰들이 불법으로 국경을 넘는 난민들에게 폭력을 쓰는 일은 이미 잘 알려진 일이다. 경찰들이 돈을 빼앗고 핸드폰을 압수해 부수거나 난민들을 몽둥이로 때리기도 했다고 한다. 심지어 물대포나 공기총을 쏘아 난민들은 다시 보스니아로 되돌아오는 일이 부지기수라고 했다.
필자가 만난 이집트인 마호메드(32)도 크로아티아 경찰에 맞은 무릎을 보여주었다. 뼈가 부러졌는지 심하게 부어올라 큰 혹이 만져질 정도였다. 그럼에도 아무런 응급조치도 취하지 못하고 그냥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파키스탄에서 왔다는 두 청년 굴판(16)과 세이판(25)은 각각 4년차, 2년차 난민이라고 했다. 굴판은 12살부터 난민이 되어 떠돌기 시작했는데 비하치에는 8개월째 머물고 있었다. 세이판도 4개월째 이곳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 그들은 입을 모아 비라 캠프의 열악한 환경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여러 나라에서 온 난민들이 모여 있는 비하치에서 특히 북아프리카의 모로코, 이집트, 알제리 출신의 아랍 난민들은 난민수용소에 들어가지 않고 무허가 건물이나 버려진 집 등 그들만의 근거지를 만들어 생활하고 있었다.
비하치 비라캠프 근처에서 마주친 네덜란드 출신 NGO 단체여성과 또다른 사진작가 덴 블랑켄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들은 “난민들이 유럽연합 국가에 들어오면서 발생하게 되는 문제의 심각성은 언론을 통해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며 “앞으로 유럽이 처한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될 것”이라고 했다.
유럽연합 국가로 들어가려는 난민들이 처한 상황이나 그들을 받아들이는 EU 국가의 상황 그 어느쪽도 심각하기는 마찬가지라고 했다.
비하치에서 머물며 크로아티아로 들어가기 위해 몇번이고 무모한 시도를 하고 있는 난민들을 직접 만나보니 답답하고 참담한 심정이 더 들었다. 여러 이유로 자신들의 나라를 떠날 수밖에 없었는데 세상 그 어느 곳에서도 그들을 반기기는커녕 받아주지도 않아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고 있는 것이다.
파키스탄 라호르 출신의 와카(34)와 나눈 대화는 이들 난민들의 딱한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어디서 지내는가.
“비라캠프에서 지낸다. 전에는 이곳을 공장이라고 불렀다.”
-그곳 상태는 어떠한가.
“한마디로 열악하기 그지 없다. 최악이다. 수용가능 인원을 훨씬 넘어 위생과 청결문제 등 거주환경이 말할 수 없이 나쁘다.”
-파키스탄은 어느 루트를 이용해 국경을 넘었는가. 퀘타-자헤단 루트를 통했나?
“아니다. 시스탄-발루치스탄으로 넘어왔다.”
-그곳은 큰 사막이 있어 넘어오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나? 굉장히 힘들었을 텐데.
“난민 브로커에게 3000유로를 주고 넘어왔다.”
-최종 목적지는 어디인가.
“이탈리아다. 이곳 비하치에서 산의 지형을 살피며 넘어 갈 것이다. 이탈리아-크로아티아 국경은 검거될 확률이 높아서 슬로베니아로 들어가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로 들어갈 계획이다.”
-조력자가 필요하고 그러려면 돈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맞다. 이것은 ‘머니 비지니스’다. 국경을 넘어갔을 때 그곳에서 도와주는 사람이나 차량이 없다면 바로 체포되어 다시 되돌아오게 될 것이다.”
-유럽은 일자리 찾기도 힘들 텐데 왜 굳이 힘들게 그리로 가려고 하나.
“알고 있지만 그것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미스터 리 고국인 한국에 가면 일자리도 많고 돈도 금방 벌어 브로커에게 진 빚도 바로 갚을 수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비자 받기가 어려워서 포기했다.”
-가족은 어떻게 되는가
“파키스탄에 남겨진 아내와 딸이 셋 있다. 보고 싶다. 밤마다 보고 싶어 죽을 지경이다.”
그는 “보스니아와 크로아티아 국경을 넘기 위한 무모한 시도를 하고 있는 난민들에 대한 크로아티아 경찰의 폭행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고 했다. 파키스탄 출신의 30대 초반 이 난민은 “지금은 겨울이라 날이 따뜻해지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그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여기서 그냥 죽거나, 죽을 때 죽더라도 국경을 넘어가거나 둘 중의 하나뿐”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