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석의 난행難行⑬] 폭풍우 몰아친 난민캠프 ‘생지옥’ 따로 없어

시리아 코바니에서 온 쿠르드 가족. IS를 가까스로 물리치자 이번에는 터키군이 밀려와 난민이 되었다고 한다. 구급약품 상자를 건네니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다. 얼마간의 돈을 전하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후회된다. <사진 이신석 기자>

[아시아엔=이신석 <아시아엔> ‘분쟁지역’ 전문기자] 태풍이 몰고 온 바람과 비가 세차게 포구를 강타했다. 간밤에 난민들은 어떻게 밤을 지새웠을까 걱정이 되어 아침 일찍 나섰다. 택시기사에게 난민캠프로 가자고 하자 기사 얼굴이 굳어졌다. 20여분 폭풍우가 몰아치는 도심을 지나 교외로 빠져나가 난민캠프에 도착했다.

폭우 속에 돌아다니는 난민은 단 한명도 보이지 않았다. 쓰레기더미 위로 비가 떨어지고 더러운 분변과 쓰레기가 뒤엉켜 개천이 돼 흘려 내려왔다. 임시 변통으로 지어 놓은 텐트들 사이는 수렁으로 변했다. 미끄러운 진흙은 자칫 중심을 잃고 넘어지면 배설물과 오물을 뒤집어 쓸 것 같았다.

비오는 날의 난민캠프. 생지옥과 다름없다. <사진 이신석 기자>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이 하나 둘 나와 간밤에 분 폭풍우에 자신들의 텐트가 온전한 지 점검했다. 복장과 생김새가 약간 다른 이들이 있어 다가가니 자신들은 시리아 쿠르드인이라고 했다. 코바니란 도시에서 왔다고 한다. 2016년 코바니를 사수하려고 IS와 혈전을 벌이던 바로 그곳이었다. IS 병사들을 만나 내가 준 항생제 효과가 있어, 상처가 호전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려왔다. IS 병사와 쿠르드인이 함께 거주하는 이곳 비알캠프는 총부리를 겨누던 상대와 ‘오월동주’ 하는 묘한 기운이 느껴졌다.

우비를 쓰고 텐트촌을 걸어가고 있는 난민. 어깨가 축 처져 있다 <사진 이신석 기자> 

깡통에 불을 피우는 쿠르드인 가장에게 다가가 밤에 춥지 않았느냐 물으니 무척 추웠다며 장작을 숯으로 만들어 텐트 안으로 갖고 들어가 난방을 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럴 경우 사람들이 기침을 하고 호흡기 질환이 생기지 않겠느냐고 걱정을 하니 추운 날씨를 이겨 내는 게 먼저라고 했다. 전기도 없이 나뭇가지에 불을 지펴 난방을 해서 이 겨울을 견딜 수 있을까 염려됐다.

밖에서 말소리가 들리니 텐트 안에 있던 한 아이가 고개를 빼꼼이 내밀길래 카메라를 꺼내 사진 한컷을 찍었다. 이동하기 전에 휴대용 구급약상자가 있어 아이가 건네려니 아이는 망설이는데 아이 아버지가 얼른 받으라고 다그쳤다. 물론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올리브 농장에 텐트를 치고 지내는 그들은 자신들의 거주지를 ‘정글’이라고 불렀다. 정글 안으로 더 들어가보니 비바람이 거세고 악천후에 난민들은 어디로 향해 갔다. 음식을 배급받으러 가는 것이다. 그들이 거주하는 숲 안쪽으로 더 들어가자 배설물이 더 많아지고 악취가 진동했다. 간간히 쥐들이 텐트와 텐트 사이로 이동하는 모습도 보였다.

자원봉사자들은 처음에 도착하면 매일 밤, 이 처참한 환경에 눈물로 지새운다고 했다. 심한 경우는 한달 내내 눈물이 그치지 않는다고 했다. <사진 이신석 기자>

간밤에 날아간 텐트를 고치는 이들, 슬리퍼만 신고도 미끄러운 진흙길을 잘도 걸어다니는 아이들, 하루 중 가장 힘든 일과인 화장실을 다녀오는 무슬림 여인들, 국적을 알기조차 어려운 아프리카 여성들, 아랍여성들, 아프가니스탄 여인들이 궂은 날씨에 진흙탕을 오갔다.

그녀들은 기자의 손에 들린 카메라가 혹시나 자신으로 향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모습이 뚜렷했다. 가부장적인 생활에 눌려온 그들이기에 대놓고 항의하는 여성은 없었으나 사진 찍히는 것을 무척 꺼려하는 게 역력했다.

쓰레기 더미 근처에서 식사를 배급받기 위해 길게 서있는 난민들. 하얀 헬멧은 경찰병력으로, 만약의 폭동에 대비해 투입된다고 한다. <사진 이신석 기자>

중심 잡기조차 어려운 진흙길에서 난민들이 배급표를 갖고 음식을 받고 있는데, 하얀 헬멧을 쓴 경찰들이 보였다. 배식시간이면 항상 배치돼 질서를 유지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장시간 줄을 서서 기다리면서 극도로 예민해진 난민들이 수시로 싸움을 벌이고 폭동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가장들은 불을 피워 텐트 안을 따뜻하게 하려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인근 올리브 농장에서 썩은 나뭇가지를 주워다 움막 구석에 비축해 놓았다가 날씨가 추워지면 깡통에 넣고 불을 피워 연기가 덜 나는 숯으로 만든다.

시리아 알레포에서 난민이 되어 왔다는 일가족. 적은 금액을 건네자 환하게 웃던 부인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뒷편 빨간 스카프. <사진 이신석 기자>

비에 흠뻑 젖은 기자를 텐트 안으로 들어와 몸을 녹이라고 한다. 두평 정도 비좁은 공간에서 아이 셋과 부부가 살고 있었다. 그 광경에 눈물이 나서 얼른 적은 돈을 큰 아이에게 쥐어 주자 아이 엄마는 연신 고맙다고 미소를 보낸다.

밖으로 나오자 또다시 지옥이었다. 비바람은 거세지고 아래 위 내복에 장갑까지 끼었지만 몸은 점점 얼어갔다. 입구까지 되돌아 나오니 날은 어둑해지고 난민도, 이동하는 차량도 보이지 않았다. 그냥 걸어야 했다. 온몸이 다 젖고 저체온증이 걱정 될 무렵 간신히 차를 얻어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기자가 취재한 히오스캠프에는 하자라족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소말리아·수단·에티오피아·카메룬·부르키나파소 등지의 아프리카 흑인과 이집트·모로코·알제리 등 북아프리카 아랍인이 눈에 띄었다. 이들은 주로 이른바 ‘경제난민’으로 불리는 사람들이다. 가장 많은 숫자의 시리아인들은 압도적으로 라카 샴 데이르에조루 출신이 많았다. 즉 IS 출신들인 것이다.

쓰레기 더미에서 흘러나오는 오물과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인분은 내리는 빗물에 섞여 시내를 이루어 흘러간다. <사진 이신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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