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석의 난행難行⑮] 그리스 난민촌서 만난 자원봉사자들

자원봉사자들 청소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10분도 되지 않아 프랑스인 로즈(앞쪽)는 바지가 오물투성이가 되어도 다부지게 일했다. <사진 이신석 기자>

[아시아엔=이신석 <아시아엔> ‘분쟁지역’ 전문기자] 그리스의 조그만 섬 히오스캠프에서 하자라족 청년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어디선가 자원봉사자들이 나타났다.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보는 자원봉사자다. 그들은 캠프 주변에 널려있는 플라스틱과 쓰레기와 오물 등을 순식간에 치우기 시작했다. 시작한 지 10분도 채 안돼 옷은 오물투성이가 되었으나 아랑곳 않고 재빠르게 그리고 묵묵히 일을 해냈다.

CESRT를 이끌고 있는 그리스 여성 토울라. 우측 붉은 모자가 영국인 오웬. 그는 기자에게 여러 질문을 했는데 주로 각국 난민의 발생 연유를 집중적으로 물었다. 기자는 다각도로 설명하며 그의 이해를 도우려 했다. 자원봉사 프로그램에 참여한 봉사자들도 난민이 발생하는 나라의 상황을 제대로 모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진 이신석 기자>

몸을 아끼지 않고 청소하는 모습에 매료되어 그들과 통성명을 했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도미니크, 영국인 오웬, 프랑스에서 온 로즈, 그리고 바르셀로나 출신 등 유럽 각지에서 봉사하러 온 청년들이다. 그들은 저녁 일과 후 그리고 아침 일과 시작 전 모여서 하는 자신들의 회의에 나를 초대했다.

그룹의 리더 인 토울라라는 여성은 어느 날 죽음의 항해에서 살아남아 뭍에 올라와 자신의 문을 두드리며 구조를 요청하는 난민의 모습에 CESRT 긴급난민구조팀을 결성하게 되었다고 했다.

CESRT 아침회의 모습. 창고건물에 구호물자를 잔뜩 쌓아놓은 곳이 회의실로 사용된다. 팀은 긴급대기팀, 청소팀, 수거팀, 영어교육팀, 어린이교육팀, 창고정리팀, 운전팀 등 상황에 맞게 인원을 재배치하고 당일 일정을 사전 조율한다고 했다. <사진 이신석 기자>

그녀는 그러면서 자신들의 팀 이름 ‘CESRT’(Chios Eastern Shore Response Team)
Nonprofit Organization)을 내게 소개했다.

이 난민구조팀은 이름 그대로 ‘히오스섬 동쪽 해변에서 그리스 해안경찰과 공조하여 바다를 건너 도착하는 난민들을 구조하며 그들의 난민촌 정착을 여러 방면으로 돕는 일’을 해오고 있는 거였다.

영국인 도미니크(앞줄)가 바쁘게 일하는 모습에 기자는 너무 감동해 연신 경의를 표했다. <사진 이신석 기자>

도미니크와 오웬이 “바다를 건너오는 사람들 취재하는 게 어떠냐”고 묻길래 나는 “당연히 해야 할 취재”라며 토울라에게 협조를 요청했다. 내 말에 그녀는 “여기선 원칙적으로 경찰이 모든 것을 관할하며 우리들은 보조역할만 할 뿐 그럴 결정권이 없다”며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그녀는 “여기 난민촌에서 사진 찍는 것도 모두 불법”이라며 얼굴 표정을 바꿔 나를 몰아세웠다. 나는 못 이기는 척 한 발짝 물러나면서 ‘난민촌 실상을 찍은 사진들을 들키지 않아야겠다. 당신에 내게 알려줘 차라리 다행이다’라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도미니크와 오웬 그리고 로즈에게는 “그동안 여러 가지로 도와줘 정말 고맙다”며 존경을 담아 감사를 표했다.

이들은 전체회의 후에도 팀별로 그날의 일정을 다시 한번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모두들 자원봉사 경력이 많다. 창문에 붙어있는 ‘어메이징 볼런티어스’란 단어가 눈에 띈다. <사진 이신석 기자>

그들과 헤어진 나는 혹시나 다른 자원봉사단체는 바다를 건너오는 난민들을 촬영하거나 인터뷰 하는 것을 도와줄 수 있지 않을까 수소문해 보았다. 그러다가 방글라데시 출신의 영국인이 리더로 있는 그룹을 접촉하게 되었다. 그들은 낮에는 난민들에게 옷 나누어 주는 일을 하고 있었는다. 겨울철이라 두꺼운 옷이 필요해서인지 배급받으려는 줄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다른 사람들이 입던 헌 옷인데도 너도나도 차례를 기다리면서 원하는 것을 하나씩 골라 가져갔다.

난민촌에서 만난 아프가니스탄 하자라족 청년들. 몇몇은 한국인이라 해도 믿을 정도로 닮았다. <사진 이신석 기자>

다행히도 아이들이 털모자나 따뜻한 겉옷을 입고 있어 마음이 놓였다. 아이들 옷과 겨울 옷을 기부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복을 나누어 주며 봉사하는 그룹은 체계적이라기보단 자유스러운 분위기에서 일하는 것 같았다. 그날 저녁 그들의 모임에 합류했다. 29살 루히라는 여성이 리더를 맡고 있었는데, 그 그룹 역시 여러 국적의 사람들이 자원하여 봉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아프가니스탄 파슈튠족의 젊은 남자 두명이 함께 있었다. 무슬림인 그들은 거침없이 술을 들이키며 어느 정도 술김이 오르자 아주 버릇 없는 식탁 매너를 보였다. 합석한 사람들이 불편해 했다. 두 청년은 주변의 만류에도 아랑곳 않고 젊은 여성 봉사자들에게 함부로 대하는 것이었다. 잠시 후 보니 그들과 두 여성은 서로 어울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레스보스섬에서도 젊은 그리스 여성에게 접근하는 난민 청년들을 보았는데, 성추행이나 성폭행 같은 범죄가 흔하게 발생한다고 들어서 적잖이 우려가 되었다.

섬에는 며칠 새 비가 이어지고 바람도 그치지 않았다. 배가 결항하고 나는 꼼짝없이 섬에서 며칠을 더 보내야 했다. 바람과 파도가 잠잠해지자 페리 운항이 재개되었다. 다음날 새벽 떠나게 되니 하루는 더 있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혹시 모를 그리스 경찰과의 마찰로 난민촌 사진을 빼앗길 것을 대비해 클라우드에 저장하고 가능한 한 위험한 상황은 맞지 않도록 만반의 준비를 했다.

17세기에 지어진 성곽을 둘러보다가 40~50대 남성 3명과 마주쳤다. 팔레스타인 출신의 이들은 “오래 기다린 보람으로 드디어 망명이 받아들여졌다”며 좋아라 했다. 그들은 이제 신분증을 얻어 2주 후엔 여권도 생기게 된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그리스 여권은 표지가 붉은색인데 자신들의 것은 파란색 표지로 난민용 여권이라고 했다. 하마스 출신이냐고 묻자 “하마스는 항상 문제만 일으켜 안 좋아한다”며 자신들은 아라파트를 지지한다고 했다.

그토록 원하던 신분증을 얻게 되어 기뻐하는 팔레스타인 난민들. 그들은 난민촌 사진을 찍었다며 기자를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으름짱을 놨다. 그러더니 결혼해서 이미 아이가 여덟 있는데 한번 더 장가를 가겠다고 한다. <사진 이신석 기자>

팔레스타인에서 레바논, 이집트, 그리고 터키에서 죽음의 바다를 건너 이곳에 온 지 8개월 만에 드디어 빛을 보았다고 좋아라 하는 그들의 얼굴엔 행복한 표정이 역력했다. 셋은 일주일 후 아테네로 간 후 벨기에, 노르웨이, 독일로 행선지를 각기 다르게 정했다고 했다.

그 중 나이가 더 들어보이는 팔레스타인인은 자녀가 여덟명이며 독일에 가면 또 다시 결혼을 할 거라고 했다. “아무리 무슬림이라도 오래 전 이야기이고 이제는 아니지 않냐”고 물으니 극구 자신은 또 결혼을 할 것이라며 의기양양해 했다. 난민 처지에서 막 벗어난 그들은 필자가 허가를 받고 취재 중이라고 했는데도 난민촌 사진을 찍었으니 신고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들의 말투엔 하자라족에 대한 인종차별적인 조롱과 아시아인보다는 자신들이 상위에 있다는 뉘앙스를 은연 중 풍기곤 했다. 어제 아프가니스탄 파슈툰족 청년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토울라와 상의를 하고 있는 방글라데시 출신 영국인 Ruhi(왼쪽에서 두번째). 그녀는 Biryani&Banans라는 자원봉사단체를 이끌고 있다. <사진 이신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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