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석의 난행難行 18] 4년전 터키서 만난 여전사들 그리스서 재회
[아시아엔=이신석 <아시아엔> ‘분쟁지역’ 전문기자] 마당에 햇빛이 들어와 나른해지고 눈도 뜨지 못할 정도로 부시자, 문득 까뮈의 소설 <이방인>에서 눈이 부셨던 지중해의 햇살 때문에 아랍인을 총 쏴서 죽인 뫼르소를 떠올렸다.
마당 한쪽에 이동도서 차량을 대놓고 몇몇 자원봉사자들이 아이들에게 글과 그림을 가르치거나 도서를 대여해주는 모습이 보였다. 난민수용소에서 생활하며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는 어린 아이들에게 이런 방식의 봉사도 좋겠구나 싶었다. 그들은 영국에서 왔는데 NGO 단체에 소속되는 것이 싫어서 개인적으로 봉사를 다닌다고 했다.
그때였다. 어떤 중년여성이 다가오더니 내 옷깃을 잡고 통역이 가능한 영국 자원봉사자에게 뭐라고 계속 말을 했다. 거의 울부짖듯이 큰소리로 말하니 우리 주위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순간 내가 무언가 잘못한 게 아닌가 두려운 생각도 들었다. 그녀는 내 옷깃을 잡고 흔들어대며 계속 뭐라고 말하자 자원봉사자가 통역을 하기 시작했다.
-미스터 리, 당신을 본 적이 있다고 해.
“난 모르는 사람인데.”
-터키에서 봤다는데.
“난 에르도안 정부에게 추방돼 다시는 터키에 못 가는데.”
-터키의 소도시인 누사이빈(Nusaybin)에서 당신을 봤다고 하는데.
‘누사이빈’이라는 도시이름을 듣자 나는 순간 격정을 못이겨 몸이 흔들렸다. 그 중년여성의 얼굴을 쳐다보며 “사라카야?”라고 물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재빨리 클라우드를 열어 당시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그 사진들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아내었다. 4년 전 누사이빈에서 그녀가 동료들과 앉아 있던 사진 몇장을 찍었는데, 그녀가 지나치고 있는 모습도 사진에 담아있었던 것이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너무도 놀랍고 그 몇배로 더 반가워 그녀를 꼭 안았다. 터키어를 영어로 통역해주던 영국 자원봉사자도 울고,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우리와 함께 울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사람들이 몇 명 더 모여들었다. 창문을 통해 이 장면을 내려다보던 사람들은 우리 이야기를 듣더니 환호성을 질렀다. 그녀는 내 핸드폰 속에 저장된 사진을 몇 장 더 보더니 또 한명의 여성을 찾아냈다. 그 여성도 지금 이곳에 있다며 기뻐했다. 마당 가운데 설치된 컨테이너 박스에 초대돼 들어가니, 그곳은 그들의 응접실 겸 사무실이었다. 그 안에서 사진 속 또 다른 여성을 만났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다니
4년 전 필자는 언론에선 취급하지 않던 터키 동남부 도시 지즈레에 들어가기 위해 터키로 갔다. 지즈레는 에르도안 정부에 의해서 잿더미로 변했다. 나는 그곳에서 에르도안 정부가 자국민을 향해 무차별 공격을 일삼는 심각성을 취재하여 알리고 싶었다. 그때 쿠르드 자치를 요구하는 쿠르드인의 집회가 열렸는데, 여기서 만난 시벨과 기젬(가명)도 참석했다. 그녀는 정치인이었다.
4년 전 <아시아엔> 기사에서 시벨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아시아엔> 관련기사 링크
[‘노아의 방주’ 터키 지즈레, 지옥에 온 것을 환영한다] Day 8: 누사빈과 미드얏 시장, 같은 신분·다른 처지
필자는 그 집회에 갔다가 경찰에 체포돼 얼마간 억류되어 취조를 받은 후 추방되었다. 이번에 만난 두 여성은 쿠르드공산당 당원이었는데 그날 집회가 있었고, 그 집회장면을 필자가 찍은 것이었다. 한 여성은 사라카야와 함께 있던 여성운동가였고 또 다른 여성은 대학 때부터 함께 한 동지였다. 두 사람은 이후 각각 징역 4년형과 5개월형을 선고받아 교도소에서 복역을 했다. 그 안에서 갖은 협박에 시달리다 결국은 밤에 보트를 이용하여 터키를 탈출했고 이곳 라브리오로 오게 되었다고 했다.
기자와 시벨 그리고 기젬(가명, 그녀는 고향에 두고 온 아이들의 안위를 생각해 이름을 절대 밝히지 말아달라고 했다) 등 세 사람 모두 5년 전 ‘그날 그 집회’ 이후 특별한 인연을 갖게 된 거였다. 그들은 커다란 아픔과 시련의 상처를 딛고 이곳까지 왔고, 그후 난민 취재를 계속해온 나와 재회를 하게 된 것이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터키가 아닌 그리스의 난민수용소에서 다시 만나게 되다니···.
처음 필자를 알아본 그녀는 “내일 또 만나자”며 자신이 밤새 쿠르드 전통 팔찌를 뜨개질해서 내게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녀의 호의에 뭉클해져 필자도 뭔가 호의를 표시해야 할 것 같아 소액이나마 현금을 건넸으나 그동안 만났던 난민들과는 달리 한마디로 단호하게 거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