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의 방주’ 터키 지즈레, 지옥에 온 것을 환영한다] Day 7-B: 운명을 뒤바꾼 한장의 메모

경찰 장갑 지프. 햇빛이 너무 강렬 했었던건가? 이내 지프의 문이 열린다.
경찰 장갑 지프. 햇빛이 너무 강렬 했었던건가? 이내 지프의 문이 열린다.

[아시아엔=이신석 분쟁지역전문기자]

Day 7-B

시리아 국경에만 오면 ‘IS로 넘어간 김군이 생각나서일까?’

건조한 공기에 타는 목마름을 견디지 못할 즈음, 경찰의 장갑지프 너머로 오아시스 같은 찻집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안도감에 사로 잡힌다. 마치 영화 <이방인>의 마지막 장면처럼 햇빛이 너무 눈부셨었던걸까? 천천히 열리는 장갑차의 문에서 손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 손가락은 까닥까닥 움직여 기자에게 밖으로 나오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던진다.

why? 왜?라고 했을 뿐인데 그들은 기자를 땅에 구르게 했다.

그런 단어는 3000년이 된 도시 누사빈(nusaybin)에서는 용납 되지 않기 때문이었으리라···.

경찰서 취조실 풍경 전반전
형사 1: 계속해서 한국인 기자를 주먹으로 내리 칠려고 든다.

형사 2: 계속 거짓말 한다고 면박 준다.

형사 3, 형사 4: 가방을 샅샅이 뒤지며 평범한 물건들이 마약과 돈 그리고 폭탄이 아니냐는 의미없는 질문을 반복한다.

형사 5: 기자의 스마트폰의 비밀번호를 풀고 연신 PKK 연루됨을 물으며 사생활이 담긴 페이스북, 이메일 등 모든 것을 연신 낄낄 빈정대며 본다. 인권은 이 방안에 없다.

형사 6: 인상쓰고 툭툭 친다.

형사7: 노스코리아 어쩌니 하면서 빈정댄다. 분명 사우스코리아인줄 알면서도.

형사 8,9,10: 여기저기에 참견하고 동조하며 겁박하고 빈정대지만 측은지심으로 쳐다보기도 한다.

형사 11: “This is sparta!”라며 하면서 한국에서도 유행했던 스파르타 놀이를 한다.

형사 12: 투숙하고 있는 호텔에 내 동향을 묻는다.

형사반장: 이동경로를 샅샅이 뒤지고 전화내역을 뽑으라고 지시한다.

이곳의 여형사 1,2는 사복이지만 권총을 차고 다닌다. 그외 서 내의 모든 형사들도 권총을 차고 있다. 권총이라는 ‘절대권력’은 기자를 무력화 시키기에 충분했다.

스톡홀름 신드롬
이렇게 인권이 짓밟혀도 죄가 없음이 밝혀지면, 형사들이 자신들의 무례함을 사과하고 모든 것을 이해하라고 하면서 풀어 주는 시간이 올 것이란 상상에 빠진다. 두려움에 사로 잡혔던 내가 그들을 용서하고 친구라고 스스로 여기며 자위하는 스톡홀름 신드롬 같은 비겁함이 내 머리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자존감을 잃지 않으려고 매순간 노력 했지만, 비릿한 그들의 미소는 “넌 이미 졌어”라고 말하는 듯 하다. 너의 영혼은 나의 것이라는 그들의 자신만만한 미소가 흘러넘친다.

난 무너졌다. 눈치를 보고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에 나의 영혼은 흔들린다.

오! 불쌍한 나의 영혼.

사라카야(Sara kaya, 오른쪽에서 두번째)와 그녀의 참모들. 그녀의 확고한 의지는 쿠르드인에게는 희망이지만, 터키인들은 그를 'PKK대원'이라는 불편한 존재로 여긴다.
사라카야(Sara kaya, 오른쪽에서 두번째)와 그녀의 참모들. 그녀의 확고한 의지는 쿠르드인에게는 희망이지만, 터키인들은 그를 불편한 존재 ‘PKK 대원’으로 여긴다.

형사 2가 기자의 카메라에 찍힌 누사빈 현 시장인 사라카야의 사진을 보며 마치 악질을 발견했다는 듯한 어투로 그 측근들 이름 하나하나를 호명한다. 폭격으로 부서진 지즈레의 가옥들 사진도 그에게 좋은 먹잇감이었다.

그는 기자랑 같이 사진 찍었던 보통의 순수한 쿠르드 청년 모두를 PKK 대원으로 낙인 찍는다. 형사들중 가장 선한 심성을 가진 자로 보였는데, 그는 왜?

시간이 되었다.

진술서를 작성하는 동안 형사 14는 기자에게 커피와 차, 음료, 담배 등을 제공하며 온갖 외교적인 발언을 한다.

“우리 터키인들은 너희 남한 사람들을 좋아한다.” “여긴 아주 위험한 곳이라 거칠게 대한 것을 유감으로 생각한다.” “대사관 등 기관에 연락해서 구원을 요청하고 문제를 삼아도 좋다.” “단지 우리는 너의 신변이 걱정 되기에 보호 하고자 하는 의미이고 별 뜻 없다.” “너가 가고자 하는 지즈레는 전쟁 중이다. 곧 종식 될 것이니, 그 때 가도 좋다.”

형사반장이 나타나고 조서를 이리저리 고친 후, 형사 14가 기자를 보더니 싸인을 하라고 한다. 기자가 “모두 터키어로 된 조서인데 왜 사인을 해야하냐”고 물으니 방안의 형사들이 우르르 또 몰려들어 폭력을 휘두르려고 겁을 준다. 이 도시 이 나라에서는 왜? Why 라는 단어는 “때려도 됩니다”로 해석되나 보다.

그러자 형사 14가 단어와 문장 하나하나 짚어주며 영어로 번역을 해주는데 내가 그걸 어떻게 믿겠는가? ‘저는 PKK에 협력하고 터키를 전복하려는 음모를 지니고 있습니다’라고 쓰여 있어도 확인할 방법이 없다.

그들은 흉흉한 눈빛을 뿜으며 또 겁박하기 시작한다. 순간적으로 어디서 많이 보던 장면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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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dnight Express
미드나잇 익스프레스는 영국과 터키 양국이 1970년 초 극도로 외교 마찰을 빚던 즈음 제작된 영화인데 중학교 시절에 돌아가신 누이와 같이 보았던 추억이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구성된 이 영화는 마약을 운반하던 서구의 젊은이의 이야기와 중세시대와 맞먹는 당시의 터키 인권 실태를 전세계에 고발한 작품이다. 마약을 운반하던 젊은이는 이스탄불에서 터키 경찰에 체포되어 처음에는 5년을 선고 받는다. 그러나 앙심을 품은 검찰이 제기한 재심에서 종신형을 받고 감옥에서 겪는 고초는 중세시대의 그것에 비유될만큼 혹독했던 것이 기억에 선하다.

사인을 하면서 영화 속 상황이 머릿속에 펼쳐진다. 어차피 폭력에 무너지나, 이런 농간에 무너지나 매한가지일테지만 기지를 발휘했다.

메모지를 꺼내 급하게 후려 갈겼다.

“난 터키의 국내법을 준수하며 PKK 또는 IS를 도와준 적이 없다”

그리고는 “형사 14 너도 여기에 사인해야 나도 사인 할거야”라고 하자 ‘어디 감히’라는 표정의 형사들이 우르르 덤벼든다. 그래 죽기를 각오한 몸이니 죽여봐라!

그러자 형사 14가 그들을 제지하며 메모지에 사인을 해준다. 나도 이게 운명이니 어쩔 수 없다라고 생각하고 사인을 한다.

이제 내 운명은 하늘에 달렸다고···.

기자의 운명을 뒤바꾼 한장의 메모지
기자의 운명을 뒤바꾼 한장의 메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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