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석의 난행難行 19] 쿠르드출신 4남매 ‘엄마 전사’의 꿈

다시 만난 기쁨에 우리는 활짝 웃었다. 필자, 시벨, 기젬(가명,얼굴을 일부러 감췄다 ) 그리고 터키 디야르바키르에서 가족과 떨어진 채 그리스에 온 망명객 남성. 기젬은 헤어진 네자녀와 다시 만나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했다. <사진 이신석 기자>

[아시아엔=이신석 <아시아엔> ‘분쟁지역’ 전문기자] 2016년 터키에서 만난 후 4년만에 이곳 그리스에서 만난 그들이 내게 물었다. “미스터 리가 하카리에서 체포되었을 때 우리는 모두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가?”

뜬금없는 질문이다. 내가 답했다. “경찰한테 PKK 대원이 무전을 도청하여 내가 구금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그들은 웃으며 “우리 모두 알고 있었다”고 했다. 나는 “고맙다. 걱정해 줘서 정말 감사하다”는 말 외에 달리 할 말을 찾지 못했다. 

터키인 통역 모즐란(오른쪽)은 “자식이 없어 다행”이라고 했다. 다른 망명객들이 떨어져 있는 가족 생각에 밤마다 고통스러워 하는 걸 보니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한다. 컴퓨터기술자인 그는 ”터키에서 취업이 안됐는데, 친형이 YPG에 가담해 정부에서 불온분자로 낙인을 찍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고 했다.
<사진 이신석 기자>

그들은 내게 밥은 먹었느냐며 옆에서 통역해주던 모즐란이라는 젊은 친구에게 식사를 챙겨주라고 했다. 모즐란과 함께 3층으로 올라갔다. 그에게 이곳에 취재기자가 오느냐 물었더니 자주는 아니고 가끔 온다고 했다. 모즐란은 “여기 오는 기자들은 카페테리아까지는 괜찮은데 숙소로 들어가면 긴장하는 편인 것 같다”고 했다.

‘나도 좀 긴장하고 있어’

다섯평 남짓한 공간에는 이층 침대 4개와 개인 침대 2개, 적십자와 EU마크가 붙어있는 개인 사물장이 전부였고, 벽에는 여지없이 압둘라 오잘란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발코니에서는 남자 둘이서 식사를 위한 요리를 하고 있었다. 정성을 다해 필라프와 스프를 만들고 있었다. 나머지 몇명은 옆에서 식탁 준비와 양파를 썰고 있었다.

쿠르드 남자 한명은 어디가 아픈 지 계속 누워 있었다. 밤에는 굉장히 춥다고 했지만, 문득 전기도 없는 간이텐트에서 지내는 그리스 3개섬 난민들이 떠올랐다. 여기 이들은 적어도 전기렌지를 이용해 요리하고 있었으며 추우면 전기스토브를 켤 수 있으니 그들보단 훨씬 나은 환경이었다. 물론 신분증을 얻기 위해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괴로움은 어디서나 마찬가지일 것 같았다.

모즐란은 “여기 이 방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PKK 전사는 아니라”며 “정치 망명자로 보는 게 더 맞을 거”라고 했다. 출신지도 디야르바키르, 시르트, 누사이빈, 말라티야 등등 제각각이었다. 이들은 에르도안 대통령이 지지세력을 결집하기 위해 지난 몇년간 자국 내 쿠르드인을 공격한 것이 대성공이었으며 그 결과 자신들이 망명길에 오를 수밖에 없었노라고 했다.

그리스의 경제는 몇 년째 안 좋고 난민 상황도 이에 따라 녹록치 않다. 배급 받은 음식이 식어 다시 불에 덥히는 난민들. 1월 8일 그리스 히오스섬 난민캠프.
<사진 이신석 기자>

어떤 이는 자신의 할아버지가 한국전에 참전했다고 하는데 그 당시 거의 많은 터키군이 쿠르드 출신으로 채워졌다고 덧붙였다.

그들이 내게 물었다. “과연 우리에게 희망이 있을까?”
나는 단연코 “희망이 있다”고 힘주어 대답했다.

쿠르드족이 문맹도 많고 교육정도도 낮은 데다가 흩어져 살면서 양떼나 평화롭게 키우다 외부의 공격을 당했지만, 이제는 교육도 많이 받고 뭐가 옳고 그른지 판단하며 쿠르드족의 미래를 위해 헌신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분명 그 헌신이 헛되지 않을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면서.

라브리오 난민수용소 건너편에 보이는 2층집엔 시리아에서 온 쿠르드족 망명자들이 가족단위로 살고 있다. 주로 시리아의 아프린 코바니 출신들이다. 저녁 식사 초대받은 터키 쿠르드출신 주거 공간 발코니에서 찍은 사진이다.<이신석 기자>

식사가 끝나고 차를 마시고 마지막 인사를 나눈 후 어두컴컴한 그리스의 지방도시를 지나 다시 아테네로 돌아왔다. 난민들의 슬픈 현실과 그 속에서 굽히지 않고 키워가는 꿈과 희망을 필자가 제대로 취재했는지, 문득 회의감도 들었다.

2년 전 라브리오 난민캠프를 다녀오며 황석영 선생의 단편소설 제목을 빌어 ‘몰개월의 새’를 언급했는데, 지난 2년 동안 변한 것 없이 부끄러운 줄 모르고 살았구나 싶어 또다시 울컥하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기젬(가명)은 밤새 공들여 팔찌를 만들어 기자에게 선물했다. 쿠르드 전통문양이라고 그는 말했다. 기자에게는 훈장 이상으로 자랑스럽다. 우연히 찍힌 사진 속 쿠르드족 전사자들이 팔찌를 바라보는 듯하다.<사진 이신석 기자>

황석영 작가의 <몰개월의 새>에서 기지촌아가씨 미자는 오뚜기를 건네주고, 이를 받은 주인공(나)은 월남으로 향하는 남지나해상에서 오뚜기를 버린다. 밤새 만든 저 팔찌가 오버랩 되는 것은 아직도 내가 철이 없다는 것일까?

그녀와 나눈 대화가 난민취재를 마치고 귀국한지 보름이 지나도록 머릿 속을 빙빙 돌며 내 가슴을 짓누른다. 

-앞으로 계획은 무엇인가?
“야밤에 급하게 탈주하느라 네명의 아이들(딸 2, 아들 2)을 데리고 나올 수가 없었다. 나에게 혁명은 추후의 일이다. 내 아이들을 안전하게 독일이나 스위스로 데려오는 게 급선무다. 그후에 쿠르드족을 대변하는 일에 계속 앞장설 것이다.”

-4년형이라면 짧지 않은 세월을 감옥에서 보낸 것이다. 후회는 없는가?
“쿠르드인으로서 당연한 도리를 한 것뿐이다. 쿠르드인의 의지를 누구도 꺾을 순 없을 것이다.”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그가 밤새 만들어준 팔찌를 벗어버리고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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