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석의 난행亂行⑫] 그리스 난민촌서 만난 IS대원들···1평 움막에 사랑이 넘쳤다
[아시아엔=이신석 <아시아엔> ‘분쟁지역’ 전문기자] 레스보스(Lesvos) 섬에서 출발하여 히오스(Chios) 섬으로 가는 페리는 강한 바람과 파도로 인해 예정시간보다 좀 늦게 도착했다. 페리 선착장 근처에 숙소를 정하고 짐을 풀지도 않은 채 곧바로 비알캠프(Vial Camp)로 향했다.
당초 1000명을 예상하고 올리브농장이 있는 언덕에 큰 창고를 개조하여 만들어진 비알캠프에는 7000여명이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레스보스 섬의 모리아캠프에 가장 많은 난민이 있다.
기자는 앞서 열악한 상황을 보아 왔기에 이곳은 그에 비하면 조금은 낫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고 왔다. 하지만 여기에 비하면 모리아캠프는 천국이라 할만큼 비알캠프 상황은 더욱 나빴다.
화장실 부족, 물 부족, 의약품 부족은 물론 밤이 되면 무법천지가 되는 등 똑같은 문제 외에도 이곳은 난민들이 지내기에 훨씬 더 불편하고 위험해 보였다. 화장실은 거주 인원에 대비하여 터무니 없이 부족해 남성들은 대부분 숲으로 들어가 용변을 해결했다.
모리아캠프 주거지역 곳곳에 있던 수도시설도 비알캠프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지만 치우지 않아 악취가 풍겼다. 이런 곳에서 생활하다 보면 건강한 사람도 병에 걸리기 십상이겠다 싶었다.
기자는 이곳에서 IS부대의 병사였다는 청년들을 만났다. 그들은 난민캠프 밖 작은 콘크리트 건물 밑 70cm 높이의 틈에 채 1평도 되지 않는 공간에 4명이 살고 있었다. ‘이런 곳에 사람이 산다니?’
미군, 시리아민주군(SDF), 쿠르드족민병대(YPG)의 연합군이 IS의 수도 라카를 함락시킬 당시 IS 대원들은 콘크리트 밑 지하에 숨어 저항하던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다행히 그들은 착하고 순진했고 무슬림의 예를 다했다. 어디선가 커피와 차를 끓여와 나에게 대접해 주었다. 그처럼 열악한 주거공간에 살면서도 그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융숭한 대접이 아니었을까 싶다.
자신들은 이렇게 살지만 불을 안 피워서 호흡기 질환에 걸리지 않으며 세 개 면이 막혀있어 추운 비바람을 모두 이겨 낼 수 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IS병사로서 저격을 피하기 위한 선택과, 오랜 세월 지하와 엄폐물을 이용하던 그들의 군사적 본능이 이런 기괴한 거처를 선택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부대를 탈출하여 죽음의 바다 에게해를 건너 이곳 히오스까지 왔다고 했다. 가벼운 상처를 치료 없이 방치하다 봉와직염에 걸린 한 청년은 의사가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소독약에만 의존하고 있었다. 이런 상처는 항생제 투여 없이는 낫지 않는다고 알려 주고 지니고 다니는 항생제를 전달했다. 더 심해지기 전에 의사에게 제대로 치료를 받아야 할 텐데, 걱정이 되었다.
그곳에 잠시 머무는 사이 빈대에 물렸는지 정강이가 가려워 긁었더니 벌써 상처가 깊게 생겼다. 그들은 이곳에서 ‘신분증’을 얻기 위해 지루한 시간을 버텨내고 있다고 하는데, 앞으로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 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날이 어둑어둑 해져서 그들과 헤어져 혼자 걷는데, 그리스 청년들이 길을 막았다. “여기는 당신과 상관없으니 다른 길로 돌아가라”는 것이었다. 무슨 일인가 보니 주민들이 난민촌으로 들어가는 도로를 점거하고 트랙터로 막은 채 시위를 하고 있었다. 경찰이 출동한 상태였다. 다음날 그리스인에게 어제 발생한 일을 캐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비알캠프 주변에 사는 주민들은 난민들에 대한 감정이 극도로 안 좋다. 주민들은 난민들이 떠나길 바란다. 난민들이 들어오면서 절도나 강도같은 범죄가 발생하고 환경은 오염돼 주민들이 전염병에 노출되는 등 나쁜 상황이 계속 된다. 그러다 보니 부동산 가격은 계속 떨어진다. 주민들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게다가 며칠 전 난민들이 그리스정교회 성당에 들어가 기물을 파손 하는 등 용서하기 어려운 짓을 해서 주민들 분노가 폭발해 급기야 캠프 앞에서 시위를 하게 됐다는 것이다.
몇년 전만 해도 동양인인 내게 친적하기만 했던 그리스인들이 지금은 난민 취급을 하는 상황으로 바뀌었다. 어떤 이들은 나에게 여권을 보여달라고 하고, 레스토랑이나 카페에 들어서면 적의에 찬 눈빛이나 불친절을 감수해야 한다.
길을 걸을 때는 지나가는 자동차가 필요 이상으로 옆으로 접근해 위협을 하는가 하면 비 오는 날은 고의로 물이 고인 곳을 달려 물벼락을 맞히기도 했다. 급기야는 레스토랑에서 지배인의 무례한 행동에 경찰을 부를까 심각하게 고민까지 해야 했다. 그 상황에서 나는 “한국에서 온 기자입니다”라고 적극 나를 알리기보다 차라기 그냥 난민으로 보이는 것이 낫겠다 싶어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하자라족 난민이 되기로 했다.
테살로니키에서 만난 택시기사는 어이 없게도 필자에게 여권을 보여주지 않으면 승차를 거부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그리고 실제로 호텔 투숙 때 난민에게는 투숙 자체를 거부하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다.
기구한 운명에 처해 난민이 된 약자들에게 못되게 구는 행태는 어딜 가나 있기 마련이지만, 막상 내가 계속 해서 직접 불친절을 당하고 나니 씁쓸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고향을 등지고 좀더 나은 생활을 바라고 온 난민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차가운 차별과 기약없는 기다림뿐이었다. 그들을 반기는 사람들은 그 어디에도 없는 듯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