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석의 難行④] 난민들의 EU 이주 길목 세르비아서 만난 청춘들

세르비아에서 만난 청년(오른쪽)은 시리아 알레포에서 온 난민이다. 그는 기자(왼쪽)의 사진촬영 요청에 기꺼이 응해줬다. <사진 이신석 기자>
<아시아엔> 이신석 분쟁지역 전문기자가 12월 17일 또다시 험난한 취재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이신석 기자는 유럽에서 시작해 아시아로 넘어와 파키스탄과 인도, 미얀마, 태국, 말레이시아 그리고 인도네시아에서 1차로 마무리 될 예정입니다. 지난 10년 이상 분쟁지역을 목숨 걸고 찾아다니며 난민과 램넌트들의 고달픈 삶을 취재해온 이신석 기자는 말합니다. “분명 가서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고 믿기에 또 긴 여정을 시작합니다.” <아시아엔>은 ‘이신석의 難行’이란 타이틀을 붙여 연재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관심과 격려 당부드립니다. <편집자>

[아시아엔=세르비아 베오그라드 이신석 <아시아엔> 분쟁지역 전문기자] 겨울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지난 12월 22일, 을씨년스러운 날씨에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오전 10시 베오그라드 중앙역 근처 카페가 눈에 들어와 끌리듯 문을 열고 들어섰다.

카페는 ‘메소포타미아’라는 이름과도 맞아 떨어졌다. 상상했던 것과 같은 분위기였다. 기자를 먼저 반긴 것은 실내를 가득 메운 담배와 물담배 연기였다. 비에 젖은 손님들한테서 나는 시궁창 같은 곳에서 나오는 냄새와 땀 냄새 그리고 차 끓이는 냄새와 아라비안커피 냄새가 뒤섞여 나를 잠시 몽환에 빠지게 했다.

앞날이 불안정한 청년들은 어디서나 찾을 수 있다. 하나 난민들 사이에선 더욱 그렇다. <사진 이신석 기자>

실내의 자욱한 연기가 걷히자 수백개 눈동자가 한꺼번에 나를 쳐다보고 있음을 대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낯선 곳에서 만난 낯선이들한테서 적의가 느껴지다니···.

순간 긴장을 했지만 재빨리 상황을 판단하고 나를 쳐다보는 모든 검은 눈동자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른손을 가슴에 얹고 살짝 미소 지으며 정중하게 상체를 굽혀 “마르하반!”(아랍어로 안녕이란 뜻) 하고 인사하자 그들 대부분 내게 미소를 보인다. 그들은 100여명쯤 가득 들어찬 자리에 틈을 만들어주며 여기저기서 앉으라고 권한다.

바로 그들이다. 난민이다. 자리에 앉자마자 차를 큰 사이즈로 시키고 서로 흑신상을 묻기 시작했다. 그들의 의문을 먼저 풀어줘야 했기에 나는 그들 질문에 응해줬다.

-어디서 왔나 ?
=한국에서 왔다.
-김정은의 그 한국인가?
=농담이지? 서울 한국, 즉 남한이다.
-직업은 뭔가 ?
=(망설이다 거짓말을 했다)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친다.

나도 물었다.
-너희들은 다 어디서 왔는가?
=여기는 주로 아라빅(아랍인)이 모인다. 시리아 난민들이 주로 오고 가끔 파키스탄, 팔레스타인 난민도 온다.
-시리아 어디서 왔는가?
=알 아사드 정권에 저항하던 도시 출신이다. 주로 제2의 도시 알레포 또는 이들리브 다라 출신이다.
-누가 너희들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하는가?
=물론 아사드 대통령과 그의 추종무리들, 그리고 그에 협조하는 시아파 이란 헤즈볼라, 러시아 그리고 터키가 우리의 원수다.

잠시 후, 구글 번역기을 이용하며 나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하던 시리아 알레포에서 왔다던 청년이 물었다.

-당신은 혹시 나를 불법적이지만 EU 국가로 넘겨주는 일을 하지 않나?
=아니다. 난 잘 모르겠다.

순간 식은 땀이 흘렀다. 긴장감에 실내를 둘러보았다. 대부분 20대 초반부터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청년들 눈빛은 순진했지만 그들 중 몇몇은 날카롭고 의심스런 눈초리를 내게 보내고 있었다. 중년의 사내들이다. 더 이상 이곳에 머물면 안 되겠다 싶어 다음에 보자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2019년 크리스마스를 앞둔 세르비아 거리.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사진 이신석 기자>

카페 밖으로 나오니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500원 정도의 찻값이 없어 비가 오고 추운 날씨에도 카페에 들어가지 못한 채 옹기종기 모여 있는 난민 여럿이 보였다. 100여명 모여 차 한잔에 몸을 녹이고 모두들 지난밤 닳아버린 스마트폰을 충전하는 게 눈에 띄었다. 이곳이 바로 EU로 들어가기 위해 난민들이 모여 있는 최전선이라고 본능적으로 직감했기 때문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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