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석의 난행難行⑤] 세르비아 거리서 만난 청춘들
<아시아엔> 이신석 분쟁지역 전문기자가 12월 17일 또다시 험난한 취재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이신석 기자는 유럽에서 시작해 아시아로 넘어와 파키스탄과 인도, 미얀마, 태국, 말레이시아 그리고 인도네시아에서 1차로 마무리 될 예정입니다. 지난 10년 이상 분쟁지역을 목숨 걸고 찾아다니며 난민과 램넌트들의 고달픈 삶을 취재해온 이신석 기자는 말합니다. “분명 가서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고 믿기에 또 긴 여정을 시작합니다.” <아시아엔>은 ‘이신석의 難行’이란 타이틀을 붙여 연재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관심과 격려 당부드립니다. <편집자>
[아시아엔=이신석 <아시아엔> ‘분쟁지역’ 전문기자] 강경한 反 난민정책을 쓰고 있는 헝가리에 인접한 세르비아는 비교적 난민들에게 우호적인 편이다. 2015년 이후 유럽연합 국가로 입국하기 위해 세르비아를 통과한 난민 숫자는 1백만명에 육박했다. 지금은 헝가리로 가는 국경이 거의 막힌 거나 다름 없어 세르비아 난민수용소에 있는 사람들이 4천여명에 이른다. 유엔난민기구 통계이니 믿을 만할 것이다. 합법적으로는 유럽연합(EU)에 진입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난민들은 난민수용소에 머물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 헝가리로 들어가려 하거나 보스니아 혹은 다른 루트를 통해 (유럽연합 국가로) 진입하려고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다.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이 지나는 지역은 예로부터 메소포타미아로 불렸으며 현재는 터키, 시리아, 이라크, 이란으로 나뉘어져 있다. 그 나라들에서 수많은 난민이 발생하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의 중앙역 앞에 위치한 카페테리아의 이름이 다름 아닌 ‘메소포타미아’였다. 주인이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다. 난민 청년들에게 물었더니 “메소포타미아 주인은 바로 쿠르드 사람”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카페의 주인은 내가 보기에 두가지 모습을 지닌 사람처럼 보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난민을 대상으로 영업을 하는 장사치 모습이었다. 그는 안경 너머 날카로운 눈매에 차가운 입술을 지녔다. 차를 주문하지 않은 난민은 쫓아내는가 하면 오래 앉아 있으면 추가 주문을 요구하기도 했다. 바깥 유리창에 붙어서 비를 피하며 카페의 와이파이를 이용하는 난민들을 멀리 쫓아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난민들은 그의 요구에 순순히 응하며 자리를 뜨기도 하고 새로운 추가 주문을 하기도 했다. 아마도 그가 어느 정도 인심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라 여겨졌다.
세르비아 종업원들은 몰려드는 주문과 테이블 정리에 정신이 없어 보였다. 나는 종업원들에게 매번 주문때 팁을 주며 환심을 사려고 애썼다. 주인의 뒷배경을 캐기 위해서였다. 날카로운 눈빛의 주인은 나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도 했지만 나는 시종일관 무시로 일관했다.
그와 내가 서로 그러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으리라.
난민 청년들은 주로 터키식 차를 주문하였다. 호리병 같은 잔에 담긴 차 한잔에 한국돈 1000원이다. 그들은 가끔 카푸치노나 아랍식 커피를 시켰으며, 물담배를 주문하는 청년도 있었다.
벽에는 전기 콘센트가 여러 군데 있어서 난민은 지난 밤 방전된 스마트폰과 배터리를 여기저기에 꽂고 충전을 하고 있었다. 콘센트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 손때가 묻어 새까맣게 더럽혀져 있었다.
난민들은 대부분 백팩을 메고 있었다. 하드케이스 캐리어나 큰 배낭은 거의 눈에 띠지 않았다. 카페 손님들은 대부분 남자들이었으며 간혹 부인과 아이를 대동하고 화장실을 사용하러 들어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모습의 무슬림 여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사라지곤 했다.
40대로 보이는, 날카롭고 의심에 찬 눈빛을 한 몇명의 그룹이 있었는데 그들에게서는 묘한 살기까지 느껴졌다. 그들은 범죄와 연관되었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직감도 늘었다. 나는 그들에게 아주 점잖고 선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하지만 내가 무턱대고 약해 보이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을 터였다. 분쟁지역을 십수년 다니면 본능적으로 체득한 덕분이랄까? 하여 나는 때론 강하고 빈틈없는 표정도 만들어 연출해야만 했다.
팔레스타인 출신 난민 청년들은 아직 솜털도 가시지 않은 어린 나이로 보였다. 자신들은 시리아인과 같은 아랍인이기에 이 카페에 앉아 있어도 무난하다는 다소 건방진 표정도 내보였다. 순진하고 어린 눈망울이지만 이미 험한 세상을 온몸으로 체득한 그들은 나와 적당하게 거리 두기를 잊지 않는 영악함도 엿보였다.
굉장히 활발하게 움직이는 몇몇이 눈에 보였는데 그들이 다름 아닌 소그룹을 이끌어가는 ‘대장’으로 보였다. 중년으로 보이는 이들이 젊은이들 사이에 끼여 있었는데 그들은 앞서 있던 중년그룹에 끼지도 못하고 또한 청년들에게도 대우를 받지 못하고 쫓겨나는 모습도 보였다. 그나마 혼자 남아 있던 중년 난민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였다.
두번째 오니 처음보다는 많은 사람들과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 왔다. 난민 취재 10일이 훌쩍 지나가는 12월 말 세르비아의 모습이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