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엔 르포] 작년 7월 쿠데타 이후 삼엄해진 터키 이스탄불공항서 14시간 억류
[아시아엔=터키 이스탄불/이신석 <아시아엔> 분쟁지역 전문기자] “뭐가 문제냐?” 에르도안 대통령의 입지가 강화된 지난해 7월 쿠데타 진압 이후의 터키는 거침 없었다.
단지 이스탄불공항에서 환승을 하는 것일 뿐, 터키에 입국하려는 시도도, 의도도 없었는데, 공항경찰은 나를 체포했다. 그리고는 어느 조사실로 끌고 간다. 지난 1월29일 생긴 일이다.
공항경찰들은 권총을 권총집의 버튼을 풀러놓았다. 언제라도 테러와 같은 위험에 만반의 대비를 하고 있었다. 긴급상황 시 권총집의 버튼에 걸려 권총이 빼어지지 않아 대처가 늦은 상황이 번번히 보고되자 이를 실전 상황에 맞춘 듯하다.
방에 들어서자 파란 비닐장갑을 끼고 청바지를 입고 있던 조사관이 나를 쳐다본다. 단단한 체구에 배는 약간 나와 있었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그는 역시 권총집의 버튼은 일부러 풀러 놓고 심드렁한 표정도, 고압적인 자세도 아니다. 다만 “너에게 문제가 조금이라도 발견되면 즉각적으로 권총을 빼어들어 폭력을 가하겠다”는 경고도 없이 즉각 조치를 취하겠다는 모습이다. 긴장감이 그의 앉은 자세에서 그대로 느껴졌다.
이런 모습은 순응하지 않으면 즉각 폭력을 가하겠다는 미국경찰이나 치안이 불안한 나라의 공권력과는 차원이 다르다. 전쟁을 하고 있는 나라의 군인과 경찰의 모습은 사전 경고는 알아듣지도 못할 짧은 시간에 끝내버리거나 생략한다. 따라서 그들과의 대면은 절대 순응과 그들의 질문에 즉답을 하지 않으면 심각한 상황에 부딪히게 되는 것이다.
여긴 잘 치장된 공항이지만 한 나라의 국경임을 잊지 말아야 하며, IS와 더불어 쿠르드 PKK의 심각한 테러에 의해 수많은 목숨이 날아간 곳이다. 군사용어로 말하면 최전방인 셈이다.
그런 면에서 조사관에 불응 하는 태도는 그들의 폭력에 의해 심각한 상해를 입거나 심지어는 죽음에 직면할 수도 있다. 설령 상해와 죽음을 면한다 하여도 훗날 법적인 처벌을 고스란히 받아야 한다.
몇 시간 지난 후에 알았지만 그의 모습에 겁을 먹은 여러명의 아프리카인들과 중앙아시아인들이 순순히 서류에 서명을 하고 밀폐된 방안에 ‘스스로’ 갇히는 모습이 연달아 눈에 띄었다.
이럴 때 기자는 짖꿎어진다. 그리고는 입술을 깨물고 나에게 말해준다.
“나보다 작은 몸집의 네가 공권력에 기대어 절대권력인 권총을 언제든지 꺼내어 들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겠지만, 네가 격투기를 연마했든, 혹은 투쟁심이 강하든 넌 그저 힘 없는 국가의 여행자들을 대상으로 폭력을 휘두르는 ‘양아치’에 불과해. 너라는 정도의 폭력 따위에 물러날 내가 아니다.”
그의 첫인사가 나왔다. “What’s the problem?”
나는 이렇게 답해줬다. “What problem?”
그가 건방지다고 느꼈는지 앉은 자세에서 눈을 치켜뜨며 매섭게 쏘아 본다. 그런 걸로 보아 그의 영어 첫 질문이 상대방에게 얼마나 겁박을 주며 버릇없는 질문이었으며 내 대답이 얼마나 도전적인지 알고 있나 보다. 그럼 처음부터 그런 식의 영어는 구사하지 말았어야지.
열심히 그는 서류에 뭔가를 적더니 나더러 싸인을 하라고 한다.
“What?”
나는 이런 류의 인간에게는 이런 식의 영어가 적당하다고 느끼는 답과 동시에 질문을 던졌다. 그는 싸인할 필요없다고 화를 내며 일어나더니 내 손가방을 뒤진다.
몸 수색을 하면서 스마트폰 어딨냐고 다그친다
“없어! 강도 당해서.”
그는 자신을 놀리는 걸로 느꼈는지, 어디에서 비행기를 타고 왔냐고 묻는다.
“Tehran Iran!”
이렇게 대답하자 시아파 무슬림국가는 자신들의 적국이라 생각하는지 눈빛이 놀라고 더 거칠어진다. 그리고는 옆에 같이 있던 정복경찰이 화들짝 놀라 다가와 나를 둘러싼다.
터키 대통령 에르도안은 쿠데타의 책임을 자신의 정치적 숙적인 귤렌에게 넘기고, 많은 이들을 투옥하고 파면시켜서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터키 인권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내가 이란 방문 중 이란 친구들은 “현재 이란은 에르도안의 정적 귤렌을 지지하고 있다”고 내게 말한 걸 기억한다.
공항경찰들은 더 이상 나하고 신경전 벌일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감방 책임자에게 나를 인계시킨다. 나는 감방 속에 밀쳐 넣어졌다.
필자는 지난해 12월15부터 2017년 1월30일까지 45일간 무슬림에게조차 잊혀진, 쉬라즈(Shiraz) 이란 시아파 최대 성지인 성인 이맘레자(Imam Reza)의 묘지가 있는 마샤드(Mashhad)시까지 이르는 약 2000km의 순례길에 올랐다.
10여년 넘게 분쟁지역을 찾아 숱한 위험에 처하며 꿈을 잃은 아이들에게 사랑을 전해온 필자는 IS로 넘어간 것으로 알려진 한국인 김군을 찾기 위해 시리아 국경 1400km 구간을 샅샅이 뒤졌다. 물론 아직은 ‘현재진행형’이다.
나는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쿠르드 거주지역과 앗시리아인 거주지에서 김군을 찾을 것이다.
나는 2016년 2월 터키 동부 하카리 지역에서 집과 부모를 잃은 아이들에게 내 맘과 정성을 쏟으며, 한편으로 김군을 찾던 도중 터키 정부 합동수사팀에 체포돼 “테러리스트를 도와준다”는 누명을 쓰고 터키정부로부터 추방된 바 있다. 불과 11달 전 얘기다.
나는 카라반을 따라가지 않으면 결코 건너지 못하는 사막 구간을 제외하고 이맘레자에 이르러 무슬림이 되었다. 그곳의 환경은 내가 그동안 분쟁지역을 다니며 겪은 어떤 곳보다 혹독했다.
분쟁지역에서 만나는 무슬림들은 필자가 무슬림이 아니라서 안타까와 했다. 그래서 나는 무슬림이 되었다. 이는 그들과 내가 형제가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며 동시에 두 세계, 즉 이슬람권과 비이슬람권을 넘나드는 자격이 주어진 것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감사의 표시였다.
나는 이를 통해 이슬람세계에 대한 더욱 내밀한 속살을 <아시아엔> 독자들에게 전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나의 개인적인 성취뿐 아니라 문명과 문화에 대한 공감대를 넓힐 수 있는 더할 나위 없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