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의 화폐 탐구] 일본 지폐에 들어간 인물들 공통점은?

JPY_Banknotes

노구치 히데요 등 메이지유신 이후 근대 일본 이끈 사람들 모델로

[아시아엔=알파고 시나씨 터키 <지한통신사> 서울특파원, <누구를 기억할 것인가>(화폐 인물로 읽는 근대투쟁사) 저자] 세계의 화폐에 대해 글을 쓸 때 제일 많이 고민되는 게 있다.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포괄적이고 정확하게 설명하는데 적합한 지폐를 골라내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일본화폐에 대해서라면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일본화폐에는 세 종류의 지폐만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1000엔, 5000엔, 10000엔 짜리 등 3개뿐이다.

일본화폐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전에 언급할 게 몇 가지 있다. 일단 한국은 일본과 이웃나라이자, 왕래를 많이 하는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인 중에 일본화폐가 2004년대 새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드물다. 일본사람 중에도 한류 팬이 아니라면 한국화폐도 2006년 대폭 바뀐 점을 잘 모르기는 마찬가지다.

미국화폐 중에 눈에 잘 안 띄는 2달러 짜리가 있듯이 일본화폐 중에도 외국인이 본 적이 없을 정도로 희귀한 것으로 2000엔 짜리가 있다. 일본 중앙은행은 2000년, 새천년을 맞는 첫해에 오키나와에서 G8정상회의가 열리는 것을 기념해 2000엔권을 발행했다. 이 화폐 뒷면에는 오키나와현을 대표하는 나하시 소재 슈레이 성문이 담겨있다. 또 앞면에는 <겐지 이야기>를 쓴 여성작가 무라사키 시키부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다.

현대 일본을 이해하려면 1000엔, 5000엔, 10000엔에 담긴 인물들을 알면 도움이 된다. 왜냐하면 현대 일본은 메이지유신 시대에서 비롯됐으며 이들 3명 모두 메이지시대를 대표하는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본정신을 이해하려면 이들 지폐의 뒷면에 있는 건축이나 풍경 등에 담긴 메시지를 알아야 한다.

1000엔권 앞면에 담긴 인물은 지금 일본의 의과대학교 학생들의 롤모델이자 대선배인 노구치 히데요(1876~1928) 선생이다. 노구치는 세균학자로 일본에서뿐 아니라 세계 세균학계에서 플레밍같은 인물이다. 그는 동양의학에서 서양의학으로 전환하던 시기에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미국 록펠러연구소에서 근무하던 1913년, 매독 병원체인 스피로헤타균을 발견했다. 그는 교토대 의학박사, 도쿄대 이학박사 등의 학위와 브라운대와 예일대에서 각각 명예이학박사, 파리대 명예의학박사를 받았다.

그는 산마르코스대 명예교수로도 이름을 날리다 황열병을 공부하러 갔던 아프리카 가나의 수도 아크라에서 바로 그 황열병에 걸려 숨졌다.

1000엔의 뒷면을 보면 벚꽃과 후지산 그리고 모토스호수가 그려져 있다. 일본을 대표하는 후지산은 주변의 5개 호수와 함께 국립공원을 이루고 있다. 모토스호수 역시 그 가운데 하나다. 산악 신앙의 대상이자 수많은 예술작품의 소재로 등장하는 후지산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을 것 같다. 1000원권에 등장하는 후지산과 함께 벚꽃에 오히려 관심이 간다. 벚꽃은 3월 중순~4월초 일본 곳곳에서 피며 축제의 주인공이 된다. 벚꽃이 일본인들에게 갖는 의미는 상상보다 훨씬 많다. 개화 지속기간이 7~10일에 불과한 벚꽃을 보면서 일본인들은 새해를 맞는 다짐과 동시에 생과 사의 엄숙함을 느낀다고 한다.

5000엔권 앞면에 보이는 사람은 1000엔권의 노구치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고 메이지 유신시대에 대표적인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인 히구치 이치요(1872년 5월 2일~1896년 11월 23일)다. 히구치는 일본 근대소설의 개척자로 직업 소설가였다. 도쿄 출생의 그의 본명은 히구치 나쓰코, 호적상 이름은 히구치 나쓰였다. 남녀차별이 극심했던 시기에 뛰어난 모습을 보여준 극소수의 선각자로 일본을 대표하는 여류소설가다. 24살 나이에 요절한 그의 작품들은 일본 현대소설에 매우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런 만큼 일본 화폐에 모델로 최초로 등장했다고 해도 그리 놀랄만한 일은 아니라는 평가다.

5000엔권의 뒤에 보이는 꽃은 일본어로 ‘카키츠바타’라는 제비붓꽃이다. 그러나 5000엔권을 디자인한 사람들이 우리에게 소개하고 싶은 것이 하나의 식물이 아니다. 그 대신 300여년 전 일본을 대표하던 화가이자 서예가로 일본 역사상 10대 화가로 꼽히는 오가타 고린의 작품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그의 작품들은 오늘날까지 수많은 도자기와 파티션 등의 도안으로 사용되고 있다.

일본의 최고액 화폐인 10000엔권의 앞면에 소개된 인물은 게이오대학 설립자 후쿠자와 유키치다. 잘 알다시피 게이오대학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최고 명문사학이다. 이 대학 설립자인 후쿠자와는 현대일본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사상가로 그의 정신을 잇는 후학들의 교육과 철학이 오늘날 일본을 이끈 정신적 원동력이 되고 있다.

일본화폐 가운데 최고액권인 10000엔의 뒷면에는 봉황이 그려져 있다. 일본인들은 장수와 절의 문화적 중요성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10000엔 지폐에 교토의 우지시에 있는 뵤도인(平等院) 봉황당의 지붕 상에 장식되어 있는 ‘봉황’을 디자인해 새겨 놓았다. 또 10엔 동전에는 뵤도인 봉황당을 그려넣은 것을 봐도 일본이 봉황을 얼마나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뵤도인은 원래 헤이안시대인 998년 후지와라노 미치나가의 시골별장으로 세워진 후 1052년 후지와라노 요리미치에 의해 불교사원으로 바뀌었다. 절의 가장 유명한 건물은 봉황당(鳳凰堂)으로 1053년 세워져 지금은 교토의 최고 명승으로 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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