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의 화폐 탐구] 이라크 화폐 디나르서 후세인 사라져
이슬람 대표사원 바위돔 대신 저장탑·대추야자·천문관측기구…‘원조 이슬람국가’ 강조
[아시아엔=알파고 시나씨 터키 지한통신사 한국특파원] 2005년 여름 터키에 갔을 때 고모부와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한국에서 1년 동안 어학연수를 마친 후 고향으로 돌아가니 친척들과 할 얘기가 많았다. 고모부는 얼마 전 아르메니아와 이라크에 다녀와, 필자에게 그 지역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필자가 한국화폐를 모은다고 하자, 고모부께서 “그래? 그럼 너에게 쿠르디스탄 화폐를 주마”라고 해서 반갑고 놀랐다. 고모부가 ‘50 이라크 디나르’를 꺼내며, “알파고 잘 보거라. 이게 쿠르디스탄 화폐야. 어때?” 라고 물으셨다. 필자는 이때 처음 이라크 디나르를 접하게 됐다.
쿠르디스탄과 이라크의 상관 관계를 설명하기 전에 먼저 ‘디나르’(dinar)에 관해 말하고 싶다. 국제무역업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디나르’라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아랍국가 화폐단위이다. 디나르는 현재 이라크는 물론이고 튀니지, 리비야, 쿠웨이트, 바흐레인, 요르단과 알제리에서 화폐단위로 쓰인다. 예전에는 예멘과 수단에서도 쓰인 적이 있다. 그러나 발칸반도에 있는 아랍국가도, 이슬람국가도 아닌 세르비아 역시 화폐단위로 ‘디나르‘를 쓰고 있다. 화폐역사를 되짚어 보니 세르비아뿐 아니라 어지간한 발칸반도 국가들에서도 최근까지 디나르가 화폐로 쓰였다는 것을 알게 됐다. 참 신기한 일이다. 원래 중동문화권에 속해 있던 ‘디나르’가 어떻게 이들 나라에서도 통용되는지 궁금했다.
아랍 디나르, 로마공화정에서 기원
필자는 일반적인 관점에서 디나르의 뿌리를 찾아 출발했다. 8세기 무렵 ‘디나르’를 화폐로 쓰기 시작한 이슬람왕조들이 이 화폐단위를 이후에도 유지해 왔다. 14세기말에서 20세기 초까지 500년 넘게 오스만제국의 통치를 받은 발칸반도에 이 화폐가 유입된 것은 매우 당연했다. 그러나 조금 더 찾아보니 프랑스를 포함해,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에서도 ‘디나르’가 쓰인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디나르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연구하고 싶은 욕심이 들었다.
아랍국가 화폐의 상징이 된 디나르는 사실 아랍어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디나르’라는 단어의 기원은 ‘데나리우스’다. 데나리우스는 로마공화정이 기원전 211년 무렵 발행한 은화다. 그 당시 발발한 제2차 포에니전쟁 관련 문헌들에 이 화폐단위가 언급됐다. 한니발전쟁이라고도 불리는 제2차 포에니전쟁에서 승리한 로마는 정전조약을 맺으면서 카르타고에 2만디나르의 배상금을 요구했다고 전해진다. 중세시대를 지나며 디나르는 라틴어에서는 ‘돈’, 아랍어에서는 ‘동전’이나 ‘금으로 된 동전’을 의미하게 된다. 이라크 화폐 이야기를 하다가 로마공화정 역사까지 올라가면서 글이 길어졌다. 하지만 아랍국가의 화폐를 설명할 때 디나르의 기원을 알아야 하는 것은 필수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쿠르디스탄과 이라크는 무슨 상관관계가 있을까? 2003년 3월20일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면서 이라크는 수많은 변화를 겪었다. 오래전부터 자치권 확보를 투쟁해 온 이라크 내 쿠르드족은, 이라크 대통령 사담 후세인이 몰락하면서 이라크 북부에서 ‘쿠르디스탄’이라는 자치구를 설립했다. 이라크 내에서 거의 독립국가처럼 움직이고 있는 ‘쿠르디스탄’에서는 이라크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이라크 디나르’를 쓰고 있다.
2003년 후세인 독재체제 붕괴는 정치체제뿐만 아니라 화폐제도까지 변화시켰다. 이라크 중앙은행이 2003년 새로 발행한 화폐와, 그 이전에 쓰이던 화폐는 두가지 차이점이 있다. 하나는 화폐 앞면의 사담 후세인 초상화가 삭제된 것이며 또 하나는 ‘바위돔’(Dome of the Rock)이라고도 불리는 마스지드 쿱밧 아스-사크라(Kubbet es Sakhra)가 사라진 것이다. 사담 후세인 사진이 없어진 것은 이해하기 쉬운데, 바위돔 사진이 없어진 것은 어떤 의미일까? 현존하는 이슬람 건물들 중 가장 오래 된 바위돔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2003년 이전 이라크 화폐에서 볼 수 있던 바위돔은 현재 이란과 사우디 화폐에도 있다. 이슬람세계의 주도 국가는 이란과 사우디로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다. 이라크가 화폐에 바위돔을 넣은 것은 이를 통해 자신도 이들 두 나라와 같은 반열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다. 하지만 바위돔이 사라진 것은 이라크가 ‘평범한 이슬람국가’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는 셈이다.
현재 이라크·에서 통용되는 ‘50이라크디나르’ 앞면에 있는 건물들이 바스라의 유명한 저장탑(貯藏塔)들이다. 1980년대말 발발한 이란-이라크전쟁 때 중요한 역할을 한 이 저장탑은 당시 바스라가 얼마나 굉장한 무역도시였는지 보여주고 있다. 50디나르 뒷면에 보이는 나무는 대추야자다. 중동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사막과 대추야자다. 흔히 대추야자와 대추나무를 혼동하는 경우가 있는데 대추야자는 종려과, 대추나무는 갈매나무과에 속하는 것으로 전혀 다른 종이다.
250디나르 이라크 천문발달 드러내
50디나르 보다 고액권인 250디나르를 보면 떠오르는 것이 바로 천문학이다. 250디나르 앞면에는 과거 천문관측 기구였던 ‘아스트롤라베’, 뒷면엔 사마라사원이 보인다. 사마라사원은 9세기 중엽 아바스왕조가 건립할 당시 가장 큰 규모의 이슬람사원이었다고 한다. 15만명이 동시에 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고 하니 그 규모를 짐작할 만하다. 이 사원은 칭기스 칸의 손자 훌라구 칸의 침략으로 탑 부분만 현재까지 남아있다.
이 탑을 자세히 보면 지금 이라크 영토에 존재했던 기원전 바벨왕국의 탑들과 비슷한 점들이 발견된다. 이는 사라진 사마라사원과 현존하는 탑이 당시 종교집회 장소 겸 학자들의 천문연구에 이용됐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