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의 화폐 탐구] 키르기스 화폐 이슬람선 드물게 여걸 초상화

50솜 앞면
50솜 뒷면

[아시아 화폐탐구 키르기스 솜(KGS)] 50솜 지폐 앞면 등장…러시아 침략 항거한 키르기스스탄 영웅

2011년 12월쯤 필자는 중앙아시아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국가 중 하나인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에 출장을 다녀왔다. 출장 떠나기 전, 두 국가의 화폐를 모을 수 있다는 기대에 가슴이 설렜다. 필자는 대전에서 유학 도중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 친구들에게 화폐를 한 장씩 받아 모은 적이 있었는데, 이번 현지방문을 통해 지저분한 화폐가 아닌 깨끗한 화폐를 수집할 수 있어 기분이 좋았다.

카자흐스탄 이곳 저곳 문화적 현장을 탐방하고 며칠을 보낸 후, 옛 수도인 아스타나(Astana)에서 출발해 키르기스스탄 수도 비슈케크(Bishkek)로 이동했다. 아침밥을 빨리 먹고 바로 환전 센터로 가서 새로운 화폐를 받았다, 그러나 새 화폐는 필자가 이미 모았던 것과는 달랐다. 알고 보니 키르기스스탄이 2009년부터 새로운 화폐들을 발행했기 때문이었다.

키르기스스탄의 화폐 단위는 솜(KGS) 혹은 섬이라고 한다. 솜은 예전에 카자흐스탄, 현재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쓰는 화폐 단위이다. 과거 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은 소련의 화폐 단위인 루블레를 솜이라고 했었다. ‘솜(KGS)’은 우랄-알타이 투르크족의 고유 언어로 순(純)하다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발음도 비슷하고 의미도 똑같아서 필자가 보기에 한국인들이 키르기스스탄 화폐를 솜이 아닌, 순이라고 해도 무방할 듯 하다.

중앙아시아 민주주의 천국으로 불리는 키르기스스탄에 혁명이 발발했다. 민주화 열망으로 혁명은 계속됐고 국가경제도 어려워졌다. 특히 2008년 일어난 지진, 2010년 4월 발생한 반정부 시위, 그리고 같은 해 여름 키르기스스탄 내 거주하는 소수 민족(우즈베키스탄인)과의 충돌이 경제를 악화시켰고, 키르기스스탄 화폐 솜의 가치를 떨어뜨렸다. 2009년 새로 발행된 화폐에는 1솜이 없고, 20솜이 제일 작은 단위이다. 그리고 거의 100달러에 해당하는 5000솜이 화폐 중 제일 큰 단위로 새롭게 출시됐다.

키르기스스탄 화폐의 앞면에는 주로 역사적으로 유명한 인물이 소개되어 있고, 뒷면에는 역사적 의미를 가진 장소가 실린다. 이 인물들과 역사 유적지들을 보면서 키르기스스탄의 역사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인식할 수 있다. 즉, 솜 앞면을 차지하는 인물들의 개인사를 통해, 키르기스스탄 민족의 역사를 엿볼 수 있다.

키르키스스탄 화폐 중 큰 단위에 속하는 1000솜과 5000솜에는 가장 오래된 인물과 가장 최근에 실존했던 인물이 나와있다. 1000솜 앞면에 있는 유수프 발라사긴(Jusup Balasagyn)은 11세기에 살았던 유명한 학자이다. 키르기스스탄 사람들은 학자 유수프를 그가 태어난 도시 이름 발라사긴을 붙여 함께 부르고 있지만, 외국에서는 ‘유수프 하스 하집(Yusuf Has Hacip)’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정치학과 우주학을 열심히 연구한 학자 유수프는라는 명작을 남겼다. 정치를 다룬 이 책은 마키아벨리가 쓴과 비슷한 배경에서 쓰여졌다. 그러나 정치 사상과 방법 등 내용적인 측면에 있어 다른 점이 많다.

터키 사람들이 ‘터키인’이라고 하는 유수프 하스 하집은 동시에 키르기스 사람들에게는 ‘키르기스인’이다. 그리고 카자흐스탄이나, 아제리바이잔 사람들에게도 그가 어느나라 사람인지 물어 보면, 한결같이 자기네 민족이라고 답할 것 같다. 매년 이 나라들은 유수프 하스 하집 같은 동일성이 있는 인물들을 주제로 많은 학술적인 회의를 가진다. 아마 돌궐족의 후손인 이 민족들이 이러한 인물들 덕분에 문화교류를 활발히 해올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000솜 앞면
1000솜 뒷면

1000솜 뒷면에 보이는 산은 술레이만 산(Sulaiman Mountain)이다. 이 산은 중국의 유명한 톈산 산맥(Tian Shan)중 일부분이다. 현재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에 등록된 장소로 키르기스스탄에서는 유일하다.

5000솜 앞면에 있는 사람은 유명한 영화감독이자, 배우 수이멘쿨 촉모로브 (Suimenkul Chokmorov)다. 소련시대에 태어난 그는 레닌그라드 예술대를 졸업하고, 배우 활동을 해 왔다. 특히 키르기스스탄에 관한 많은 영화를 찍은 그는 연기활동을 벌이다 1992년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의 별세는 키르기스스탄 사람들 마음을 아프게 만들었다.

5000솜 앞면에 가장 현대적인 인물이 나오듯 뒷면에도 현대적인 모습이 그려져 있다. 5000솜 뒷면에 보이는 곳은 알라-토오 광장(Ala-Too Square)이다. 1984년 완성된 이 광장에는 원래 레닌의 큰 동상이 있었으나 2003년 작은 도시로 옮겨졌다. 1991년에 이곳에서 독립선언을 자축한 키르기스스탄 사람들이 많은 혁명을 목격하기도 했고 이는 지금도 전개되고 있다. 알라-토오 광장은 현대 키르기스스탄 정치의 산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고액권 5000솜 화폐엔 민족배우 얼굴

키르기스스탄 화폐에는 보통 이슬람권 나라에서 보기 드문 여자 초상화가 있다. 50솜 앞면에 나타나있는 인물이 키르기스스탄 여걸 쿠르만잔 다트카(Kurmancan Datka)다. 장군이나 지도자를 의미하는 다트카 명칭을 가진 쿠르만잔은 알타이 계곡의 키르기스스탄 사람들을 약 30년간 통치했다. 당시 주변 키르기스스탄 사람들이 큰 피해를 받으며 러시아제국 지배를 받은 반면, 알타이 계곡에 있는 키르기스스탄인들은 30년 뒤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고, 비교적 상당히 적은 피해를 입었다. 군인 남편이 사망하고 난 후, 총을 잘 쓰는 용감한 청년들을 모집한 쿠르만잔은 1000명이 넘는 부대를 설치하고 자국 국민을 러시아로부터 지켜냈다. 그녀는 현대의 이슬람식 페미니즘이 모범으로 삼은 인물들 중 한 명이다.

50솜의 앞면과 뒷면엔 탑이 보인다. 그 탑은 한국의 숭례문처럼 키르기스스탄의 상징적인 건축물이다. 부라나 미나렛(Burana Tower)이라는 탑은 9~10세기 실크로드에서 감시용도로 사용됐다. 유수프 하스 하집의 고향 발라사긴에 가면 부라나 탑을 볼 수 있다.

키르기스스탄 인구 중 86%가 무슬림이라서 많은 사람들이 50솜 뒷면에 보이는 부라나 미나렛 탑을 이슬람 모스크로 착각하기도 한다. 사실 이 건축물은 키르기스스탄의 우즈겐(Uzgen)이라는 작은 도시에 있는 영묘이다. 이 영묘에는 역대 카라한 칸국 왕조들의 무덤이 있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