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의 아시아 탐구] 수묵화에 눈 뜨게 한 ‘불국설경’
한국 전통예술 세계화 가능성 보여줘
나는 통신사에 취직한 뒤부터 통역이나 번역 일은 하지 않기로 했다. 다른 일을 하게 되면 기자 업무의 성실성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존경하는 교수님들이 말로 부탁하시면 이 원칙을 어길 때가 있다. 그래서 얼마 전 소산 박대성 작가의 작품소개서 번역을 맡게 됐다. 제대로 번역하기 위해 우선 박 작가에 대한 정보를 인터넷에서 찾아본 뒤 작품들을 구글 이미지로 봤다.
나는 대학시절 서예 동아리에서 활동하며 ‘세우(世友)’라는 호를 받기도 했다. 그래서 먹물향이 낯설지 않지만 수묵화 전시를 즐겨 다니는 편은 아니었다. 스페인 출신 화가 살바도르 달리와 같은 초현실주의 그림들을 좋아한다. 터키 전통그림 민야튜르(Minyat?r)보다 서양화에 더 관심이 있다. 그러나 이번 번역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됐다. 소산의 작품들을 감상하면서 수묵화에 대한 느낌이 달라졌고,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한국 전통방식으로 표현한 터키 ‘카파도키아’
신라 문화를 담은 박 작가의 작품에선 한국이 보인다. 현대와 전통이 함께 있다. 그의 ‘불국설경’이란 작품을 보면 흑백만으로 얼마나 많은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흑백을 쓰는 그의 기술을 통해 다른 색깔들이 감정을 표현하는 데 필수는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소산의 작품에서 눈에 띈 또 다른 점은 상상력과 진실성의 조화다. 불국사나 경주 풍경을 그린 작품들을 보면, 경상북도 어딘가를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소산의 정신세계 어딘가의 어떤 풍경이다. 사실이면서도 상상인 그의 작품들을 보는 우리는 현실과 이상 세계 사이를 오가게 된다. 눈을 뜨고 지구에 돌아다니면서도 눈을 감고 앨리스의 이상한 나라로 가게 된다. 이런 신비스러운 장면은 1980년대 말 태어난 우리 세대에게도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전통미술 작가들과 소산의 또 다른 차이는 국제적인 면에도 있다. 그는 예전에 터키의 유명한 역사유적지 중 하나인 카파도키아를 방문해 몇몇 작품에 담았다. 동양의 전통미술 방식으로 서양·중동을 표현한 것이다. 해금이나 가야금으로 모차르트 곡을 연주하는 사람을 아직 못 봐서 그런지, 박 작가의 그런 작품들은 너무나 훌륭해 보였다.
내가 여기서 소산의 작품을 예술적으로 평가하니, 많은 예술가들이 “무식한 놈이 소산 작품에 대해 뭘 안다고 평가를 하고 있네! 아이고 세상에”라고 하실 지 모르겠다. 그런 말씀은 넓은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예술적 배경이 부족하면서도 이 글을 쓰는 것은 한국 전통미술을 외국에 소개하는 데 있어 한 가지 전략을 보여 주고 싶기 때문이다.
첫 눈에 반하게 하려면
일부 동양 전통 미술이나 예술은 서양이나 중동 사람들에게 재미없어 보일 수 있다. 사실 대학 시절 서예 동아리에 들어간 것은 외국인으로서 다른 동아리보다 사람들과 더 쉽게 친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다. 처음엔 붓으로 글쓰기가 너무 지겹고 서예 전시회 구경도 즐겁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서예에 빠지게 되었다.
이런 환경에 있지 못한, 예술에 관심 있는 다른 외국인들은 한국의 미를 즐기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날 수도 있으니 정말 아쉬운 일이다. 한국인들의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하다. 사람을 첫 눈에 반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소산 같은 작가들이 주목 받는다. 현대화와 국제화에 신경 쓰는 그의 창의적인 예술전략 덕분에 많은 외국인들이 수묵화에 관심을 가질 수 있다.
그는 한국은 물론 동양의 전통 예술을 해외에 알리는 데 있어 신용카드 같은 사람이다. 모든 한국 전통 예술이 현대화와 국제화를 거쳐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서양인이나 중동 사람들은 그런 작품을 먼저 흥미롭게 본다. 이번 ‘이스탄불·경주 세계문화엑스포2013’에서 개인전을 연 소산 덕분에 더 많은 터키 사람들이 한국 전통 예술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잠깐~ 터키 유머> 어이없는 테멜 아저씨 이야기(19부)
①
테멜이 어린 시절, 엄마에게 자신이 어떻게 태어났냐고 물었다. 어린 테멜에게 엄마는 이렇게 설명했다. “아빠와 엄마 자기 전에 베개 아래 사탕을 놓았는데, 일어나 봤더니 네가 태어났단다.”
이런 설명을 들은 테멜이 똑같이 실험해 보려고 자기 전에 베게 아래 사탕을 놓고 잤다. 다음날 아침 테멜이 일어나보니 침대 여기저기 개미가 있었다. 이를 보고 놀란 테멜은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하지? 이불을 흔들어 버릴까? 아, 못 하겠어! 아빠로서 못 할 일이야.”
②
테멜과 두르순이 돈을 모아 함께 차 한 대를 샀다. 둘이 도로를 가다가 갑자기 빨간 신호가 들어와 차를 세웠다. 테멜이 두르순에게 “야 봐, 이 빨간 신호등이 얼마나 예뻐!”라고 했더니 갑자기 노란 신호로 바뀌었다. 그러자 두르순이 “아니야, 이 노란 신호가 제일 예뻐”라고 했다. 다시 신호가 녹색으로 바뀌자 테멜이, “나에게 최고는 이 녹색이야. 제일 예뻐”라고 했다.
잠시 시간이 흘러 다시 또 신호가 빨간색으로 바뀌자 테멜은 이렇게 말했다. “야 두르순, 이제 가자. 이 색깔 아까도 봤어”
③
감옥에서 일하고 있는 테멜이 어느 날 기자 한 명에게 감옥을 구경시켜줬다. 어떤 방에서 큰 소리가 나오자 기자가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테멜은 “여기는 전기의자 방이에요. 여기서 사람들을 사형시켜요”라고 답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목소리가 크냐고 기자가 다시 묻자 테멜이 하는 말. “아, 지금 전기가 없어서 초로 하려고요.”
④
테멜이 어느 날 보물상자를 발견했다. 안전문제가 걱정된 테멜은 그 보물 상자를 먼 곳으로 가져가 땅을 파서 묻었다. 그리고 혹시 다음에 왔을 때 어딘지 모를까봐 이렇게 적힌 쪽지를 써 붙였다. “테멜은 여기에 보물 상자를 묻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날 돈이 없던 테멜이 금을 팔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 보물상자를 찾으러 갔다. 상자가 묻혀 있던 그 자리에는 테멜이 쓴 쪽지 대신 다른 쪽지가 있었다. “두르순은 여기서 보물 상자를 가져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