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의 화폐 탐구] 브루나이는 전 세계에서 가장 단위가 큰 돈을 만들었다
싱가포르달러와 같은 가치…앞면엔 모두 술탄 초상
세계 최고가 화폐인 1만 브루나이달러 지폐 앞면한국에 와서 한국어어학당에 다니면서 각 나라 화폐를 모으기 시작했다. 필리핀, 대만, 중국 등 많은 아시아 국가 화폐를 수집할 기회가 있었다. 2005년 여름 싱가포르에 갔을 때, 출국하기 전 일부 화폐를 남기고 일부를 달러로 바꾸러 환전소에 갔다. 직원 분이 돈을 환전하는데, 말레이시아 사람 같이 보이는 한 손님이 와서 너무나 신기한 돈을 꺼내 주며 바꿔달라고 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종이가 아닌, 플라스틱으로 된 화폐를 봤다. 5 달러라고 찍힌 그 초록색 돈은 술탄국 브루나이 화폐였다.
싱가포르를 돌아다닐 때 브루나이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 싱가포르보다 더 늦게 독립한 말레이 지역 나라였다. 무슨 이유에선지 브루나이 술탄이 말레이시아의 다른 술탄들처럼 연합을 이루지 않고 따로 살기로 한 것이었다. 브루나이는 싱가포르처럼 말레이시아공화국에 들어가지 않아서 그런지 모르지만, 이 두 나라 화폐가치가 똑 같다는 말을 듣고 신기했다. 예를 들면 1싱가포르달러는 1브루나이달러에 해당된다. 브루나이는 다른 옛 영국 식민지국가들처럼 달러를 화폐단위로 쓴다. 그러나 미국달러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브루나이 돈 위에 있는 인물은 역시 이 나라 지도자인 하사날 볼키아 술탄이다. 이슬람 나라들 중 술탄이 통치하는 국가 화폐에 사진이 있는 경우는 드물다. 반면에 동남아 왕정국가 돈에는 주로 그 나라 군주의 사진이 있다. 브루나이도 예외가 아니다.
영국 샌드허스트 왕립 육군사관학교에서 유학한 적이 있는 하사날 볼키아 술탄은 여러 면에서 유명한 사람이다. 1946년 태어나 1961년대 왕세자가 된 그는 1968년 국왕에 즉위했다. 1986년 총리와 국방장관을 겸임한 그는 현재 재정부 장관까지 겸임하고 있다. 2006년 <포브스>가 발표한 ‘역대 최고 부자 리스트’에 술탄 이름이 있었다. 재산이 약 40조 원에 이른다는 술탄은 그 리스트에 11위로 자리잡고 있었다.
브루나이 화폐 중 많이 쓰이는 돈은 1, 5, 10, 50, 100달러짜리다. 그밖에 500, 1000 달러짜리도 있다. 브루나이는 1989년 처음으로 10000달러 화폐를 인쇄해 전 세계에서 가장 단위가 큰 돈을 만들었다. 현재 두 번째로 큰 돈이 스위스의 1000프랑인데, 10000브루나이달러는 1000스위스프랑보다 7배 정도 가치가 높다.
브루나이는 기념화폐를 인쇄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1992년 하사날 볼키아 술탄 취임 25년 기념으로 25달러짜리가 발행됐다. 브루나이는 1967년 화폐가치를 싱가포르와 같게 하기로 협정을 맺었다. 2007년 그 협정 40주년을 기념해 20달러짜리를 발행했다. 그 해 싱가포르 중앙은행도 똑같이 20싱가포르달러 기념화폐를 발행했다.
브루나이는 1996년 처음으로 플라스틱으로 화폐를 인쇄했다. 현재 쓰고 있는 1, 5, 10 달러 지폐는 2011년부터 쓰기 시작한 것이다. 그 해는 술탄의 생일 65주년이었다. 1 달러 지폐 위에 보면 꽃이 있다. 분가 심푸르(Bunga Simpur)라는 브루나이 국화다. 주로 노란 색이다. 지폐 뒤쪽에는 이슬람 사원이 보인다. 브루나이의 상징 격인 오마르 알리 사이푸딘 사원이다. 현 술탄의 아버지 오마르 알리 사이푸딘 3세가 1958년 완성한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이탈리아 건축의 영향을 받은 이 이슬람 사원은 브루나이 관광산업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슬람 사원 옆에 커다란 집이 있는데, 그 집같이 보이는 건물이 하사날 볼키아 술탄 이름으로 된 재단 본부다. 1992년 설립된 술탄 하사날 볼키아 재단은 브루나이에서 기부·봉사활동의 대부분을 맡고 있다.
5 달러 지폐에 보이는 꽃은 사실 향신료의 일종이다. 한국어로 강황, 라틴어로 ‘Curcuma Longa’라고 하는 이 꽃은 보통 4월이나 6월쯤 핀다. 동남아에서 많이 쓰는 향신료 재료다. 브루나이에서도 여러 음식에 들어간다. 지폐 뒤쪽에 보이는 건물은 이슬람 사원이 아니고, 왕궁이다. 약칭 라파우, 원래 ‘The Lapau Diraja’ 라 부르는 브루나이의 정궁이다.
국가 공식행사가 이 궁전에서 열린다. 술탄과 그의 가족이 살고, 술탄이 여기서 국가를 통치한다. 하사날 볼키아 술탄도 1968년 이 곳에서 왕좌에 올랐다. 얼마 전까지 이 건물 안에 의회도 있었는데, 의회는 이제 새로 지은 건물로 이사갔다.
미국달러로 거의 8달러에 해당하는 10브루나이달러 지폐는 나도 지금 갖고 있다. 브루나이 지폐 앞면에는 모두 꽃이 그려져 있다. 10달러 앞면에도 국화과에 속한 꽃이 보인다. 말레이어로 울람 라자(Ulam Raja)라 하는 이 꽃도 내가 알기에 꽃꽂이하는 관상용이 아니라 요리에 많이 쓰인다.
이 꽃으로 만든 향신료는 브루나이,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는 물론 동남아 전역에서 많은 음식에 들어간다. 뒷면에 있는 건물은 이 나라에서 가장 큰 이슬람 사원인 자메 아스르 하사날 볼키아 사원이다. 이 사원은 1992년 하사날 볼키아 술탄 취임 25년을 기념해 건설됐다. 브루나이 사람들은 키아롱 사원(Kiarong Mosque)이라 부른다. 이 사원 역시 현재 브루나이 관광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