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의 화폐 탐구] 달러도 울고 갈 쿠웨이트 화폐가치

0.25 디나르 앞면

0.25 KD가 한국 돈 1,000원…20 KD가 최고 화폐단위

만해문학상을 받은 수아드 알 사바 쿠웨이트 공주를 만나러 생애 처음 아랍 국가로 가는 길이었다. 왕족 초대로 쿠웨이트에 와서 큰 대접을 받았기 때문인지 몇 일 동안은 손을 주머니에 넣어 돈을 꺼낼 기회가 전혀 없었다.

쿠웨이트를 떠나기 전날 밤 쇼핑하러 백화점에 갔는데 마침 쿠웨이트 화폐가 없어 환전소에 들렀다. 100달러를 직원에게 주고 약 27 쿠웨이트 디나르의 돈을 받았다. 돈을 받은 뒤 아무리 세어 보아도 왠지 바가지를 쓴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문의했고 직원이 환율표를 제시한 다음에야 상황이 이해됐다. 쇼핑을 끝내고 거스름돈을 받을 때 더욱 놀랄 일이 생겼다. 4.5 디나르의 물건을 사기 위해 주인에게 5 디나르를 건넸는데 거스름돈 0.5 디나르를 동전이 아니라 지폐로 받은 것이다.

0.5 디나르 짜리 지폐를 받는 순간 왠지 가짜 지폐를 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전 세계 화폐를 10년간 수집하면서 많은 돈을 접해봤다. 지폐 위에 수많은 “0”이 있는 돈을 본 적이 있었지만 0.25나 0.5처럼 숫자 앞이 0으로 돼 있는 화폐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전 세계 화폐들 중에 제일 환율이 높은 돈은 ‘쿠웨이트 디나르’다. 현재 쓰이는 쿠웨이트 디나르는 1994년 발행됐고 총 6 종류다. 0.25, 0.5, 1, 5, 10 그리고 20 디나르가 있다. 제일 작은 돈인 1/4 디나르는 한국 돈으로 거의 1,000원에 해당된다.

예전 쿠웨이트 돈에는 국왕의 초상화가 있었으나 새로 나온 돈에는 의미 있는 상징들이 새겨져 있다. 0.25 디나르 돈 위에는 두 가지 상징이 새겨져 있다. 하나는 선박이고, 또 다른 하나는 상자다. 쿠웨이트 국장에 나와 있는 선박은 아랍어로 ‘다우(Dhow)’라고 불리며 아랍 상인들이 전통적으로 사용했던 배이다.

오래 전부터 무역으로 돈을 벌어온 항구 도시국가 쿠웨이트가 국장에 다우를 사용한 것에는 깊은 의미가 있다. 0.25 디나르 돈 위에 보이는 상자는 다우에서 귀중한 물품들을 보관한 쿠웨이트 의 전통적인 상자다. 돈의 뒤쪽에는 놀고 있는 쿠웨이트 여자들이 보인다. 쿠웨이트는 일반 생활에서 제일 많이 쓰이는 돈에 여자 그림을 새겨 놓음으로써 다른 아랍 국가들보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보다 앞선 국가임을 드러낸다.

0.25 디나르 뒷면
5 디나르 뒷면

0.5 디나르 가장 많이 유통

0.5 디나르는 쿠웨이트에서 제일 많이 쓰이는 돈 중 하나다. 앞면에 보이는 고급스러운 포트는 주로 커피 대접을 할 때 쓰인다. 쿠웨이트가 이 물품을 돈에 그려 놓은 이유는 바로 커피 때문이다. 흔히 커피는 유럽이나 남미에서 건너온 문화로 알려져 있다. 혹자는 커피를 에티오피아 음식문화로 알기도 한다. 사실 커피는 아랍 문화에서 왔다. 최초로 커피를 생산한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지 않고 그 씨를 먹었다. 그러나 아랍 사람들이 이슬람 탄생 후 음주를 그만두면서 독한 음료를 찾기 시작했고 이는 커피문화의 기원이 됐다. 오스만 제국이 아라비아 반도를 흡수하며 커피문화를 받아들였고 1699년 비엔나를 정복하는 도중 커피 음용 문화가 유럽으로 넘어 갔다. 유럽에서는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게 불과 300년도 안 된다.

5 디나르 앞면

지폐 속 커피 포트 오른쪽에 보이는 가게들은 외환 환전소들이다. 지폐 속 쿠웨이트의 환전소는 무역으로 먹고 사는 무역국가의 특성을 나타낸다. 0.5 디나르의 뒤쪽에는 대리석으로 만든 구슬을 갖고 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대리석은 중동 지역에서 로마 제국시대부터 건물을 지을 때 쓰였다. 구슬은 쿠웨이트는 물론 필자의 조국인 터키를 포함한 이슬람 문화권에서 아이들이 제일 많이 갖고 노는 장난감이다.

필자가 수집한 화폐를 본 한국인들은 5 디나르 짜리를 보고는 “아이고, 0 디나르다! 진짜 신기해”라고 말한다. 사실 0으로 보이는 숫자는 아랍글자로 5여서 많은 사람이 헷갈려 한다. 쿠웨이트는 화폐 앞면에 자국의 전통적인 도구를 새겨 넣는다. 그래서 쿠웨이트의 5 디나르에는 전통적 도구인 숫돌을 그렸다.

그리고 5 디나르의 맨우측에 보이는 탑은 ‘해방타워’다. 각 국의 화폐에서 나타는 탑에는 나름의 의미가 있다. 1990년대 통신탑 건설이 시작됐고, 탑은 사담 후세인의 침공에도 거의 공격받지 않았다. 이라크군이 쿠웨이트에서 철수한 뒤에도 탑건설은 계속됐고, 1993년에 완공됐다. 쿠웨이트는 이라크의 침략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해 이 통신탑의 이름을 해방타워로 정했다.

5 디나르를 뒤집어 보면 아랍권 산유국의 화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유공장이 눈에 띈다. 쿠웨이트도 다른 아랍국가들처럼 자국 경제 대부분을 석유 생산에 의존한다. 쿠웨이트는 하루 200만 갤런 이상의 석유를 생산해 전 세계 석유 생산량의 거의 10%를 점한다. 쿠웨이트는 국가 재산이 대한민국 국가 재산의 8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300만 명도 안되는 인구를 고려하면 쿠웨이트 국민들은 상대적으로 한국인보다 훨씬 더 부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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