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의 아시아 탐구] 지금 꾸는 꿈, 진짜 자신의 꿈인가요?

강원도 영월 미디어기자박물관(관장 고명진)에서 열린 ‘2013 길 위의 인문학’ 프로그램에 평창군 드림스타트 학생과 학부모 35명이 참가해 1일기자 체험과 신문만들기를 했다. <사진=뉴시스>

“꿈이 나를 좇아다니도록 꿈을 좇아라”

꿈을 얘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바로 이 문장이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알다시피 이 말은 마틴 루터 킹이 1963년 미국 워싱턴에서 했던 연설이다. 킹 목사는 이 연설에서 흑인과 백인의 평등과 공존을 외쳤다. 오랫동안 평등을 위해 투쟁해 온 킹 목사의 이 유명한 연설을 왜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한 마디로 요약하는지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다. 꿈이 왜 이 영웅에게 중요했을까? 자유를 위해 자기 인생을 희생한 사람에게 꿈은 대체 무슨 의미인가?

꿈꾸는 것은 예배처럼 거룩한 행위

얼마 전 페툴라 귤렌(Fethullah G?len, 이슬람 종교지도자) 선생의 책을 읽으면서 다시 ‘꿈’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2013년 만해대상 평화상을 수상한 그는 꿈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꿈꾸고 상상하는 것은 가만히 있음에도 예배를 드리는 것과 같이 거룩한 행위이다.” 꿈 자체가 어떻게 때로는 예배를 대신한다는 것일까? 도대체 꿈이 무엇인가? 왜 훌륭한 인물들은 자꾸만 꿈을 강조하는가?

아직도 꿈을 제대로 묘사하긴 어렵지만 이제는 감을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꿈이라는 뇌의 마법 같은 움직임은 우리가 한계를 벗어날 수 있게 해준다. 꿈을 통해 우리는 말 그대로 자유를 느낄 수 있다. 꿈이 없다면 자유도 없는 것이다. “나에게 꿈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나는 자유인이다”라는 메시지를 준다. 자유를 위해 평생 투쟁해 온 킹 목사가 자유와 꿈을 같은 맥락에서 쓴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렇다면 꿈은 오직 자유만 가져오는 것인가? 꿈은 미래를 거시적으로 경험하고 싶은 욕구다. 우리가 꿈꾸고 상상할 때마다 인생이라는 벽에 사다리 하나를 놓는 것이다. 꿈은 우리 손으로 우리의 미래를 설계해 주는 수단이다. 우리에게 꿈이 없다면 자유는커녕 삶도 없다. 그래서 마리안 엔더슨은 “자신의 꿈을 포기한다면, 삶도 포기하라!”는 명언을 남겼다.

위에서 말한 이야기들은 모두 잘 알고 있는 내용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강조하는 것은 걱정되는 점이 있어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을 다음 세대들도 그렇게 느끼고 있는가? 지금 청년들은 꿈의 중요성을 어느 정도나 알고 있을까?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무슨 소리야? 우리 아이들은 모두 자기 나름대로 꿈을 갖고 있어!”라고 말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필자는 세미나에 참석할 때마다 초중고생이나 청년들을 만나면 오래 대화를 나눠보려고 애쓴다. 꿈을 물어 보면 다들 대답한다. “난 연아 언니처럼 피겨스케이팅 선수가 되고 싶어” “난 태환이 형처럼 유명한 수영선수가 될 거야!” “나도 유엔 사무총장이 될 수 있어!” 물론 이렇게 큰 꿈을 가지고 있는 것은 자랑스럽다. 하지만 과연 이 꿈은 그들의 꿈인가? 아니면 오아시스인가?

피겨퀸 김연아 선수가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열린 ‘김연아 팬미팅’에서 팬들과 즐거운 시간을 갖고 있다. <사진=뉴시스>

연습도 안하면서 박태환처럼 되고 싶다고?

꿈은 우리의 마음을 보여 주기도 한다. 마음이 넓으면 큰 꿈을 꾼다. 바르바르 셰르에 따르면 ‘꿈은 우리가 누구인가를 알려주는 거울’이라고 했다. 즉 꿈은 우리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이런 맥락에서 꿈이라고 정한 목표들이 진짜 우리가 가야할 길인지 아니면 남이 하니까 좋아 보여서 하고 싶은 것인지를 고려해 봐야 한다. 다른 사람의 꿈을 훔치는 것은 꿈을 가진 게 아니고,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본 것과 같기 때문이다.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은 모두 성격도 상황도 다르다. 우리에게 알맞은 꿈, 즉 ‘나의 꿈’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박태환 선수처럼 되고 싶다는 학생에게 “몇 시간이나 수영하냐”고 물어 봤다. 그랬더니 존경스러운 답변이 나왔다. “3시간” 그러나 이어지는 답변에 놀랐다. “3시간이요, 한 달에….” 한 달에 3시간 수영한다는 학생이 박태환 같은 선수가 되고 싶다는 게 현실적인 꿈인가?

꿈은 하나의 모의고사다. 하나의 실험장소라고 할 수 있다. 삶이라는 잔디밭에 떨어진 씨앗들이다. 잔디밭과 씨앗을 위해 조금이라도 행동을 해야 땅에 떨어진 씨앗에서 싹이 자란다. 꿈과 행동이 맞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꿈의 현실성이 아니라 행동의 현실성이다. 우리는 항상 꿈을 좇아야 한다. 어느 날 우리의 힘이 부족해지고 더 이상 좇아다니지 못하게 되면 그 때 꿈이 우리를 좇아다니게 될 테니까.

결론적으로 교육에서 꿈을 가르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다. 우리의 미래는 우리 청년들이고, 청년들의 미래는 그들의 꿈이라면, 우리는 미래를 위해 그들에게 꿈을 꾸도록 가르쳐야 한다. 다른 사람의 꿈을 도둑질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꿈을 상상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꿈을 가진 사람으로서 책임감을 느끼고 꿈을 따라 움직이도록 해야 한다. 꿈에 깊이 빠져있을수록 책임감이 커지고, 책임감이 커지면 목표에 도달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어이없는 테멜 아저씨 이야기(23부)


테멜은 부인 파티메가 요즘 귀가 잘 안 들린다고 하자 병원을 찾아갔다. 의사는 파티메가 어느 정도 거리에서부터 안 들리는 것이냐고 물었다. 테멜이 모른다고 하자 의사는 테멜에게 일단 그 거리를 재보라고 했다. 집에 돌아온 테멜은 부엌에서 요리하고 있는 파티메를 봤다. 5m쯤 떨어진 곳에서 테멜이 파티메에게 “무슨 음식을 만들고 있냐”고 묻자 파티메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테멜은 3m 거리에서 다시 같은 질문을 던졌고, 이번 역시 파티메에게 답을 듣지 못했다. 두 번이나 실패한 테멜은 이번에 1m 거리에서 똑같이 물었는데 파티메는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테멜은 이제 파디메 귀에다 대고 “무슨 음식을 만드냐”고 또 물었다. 그러자 파티메가 뒤돌아보며 성난 얼굴로 이렇게 소리쳤다. “야, 몇 번이나 말해야 돼? 생선구이라고!”


도로건설회사에서 일하는 테멜은 도로 페인트칠 작업을 맡게 됐다. 첫째 날 50m 도로에 페인트칠을 한 테멜은 다음 날 똑같은 거리를 작업하지 못하고 30m 정도만 작업했다. 매일매일 테멜의 작업구간은 짧아져 갔다. 15m, 8m. 그러던 어느 날 과장이 와서 테멜에게 “왜 이렇게 일을 못하냐”고 물었다. 그러자 테멜은 이유를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대답했다. “과장님, 저도 이해 못하겠어요. 처음에는 페인트통이 가까워서 그런지 작업을 많이 했는데, 작업을 하면 할수록 페인트통과 거리가 멀어져서 왔다갔다하는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트럭에 짐을 가득 싣고 다른 도시로 가던 테멜과 두르순은 어떤 터널 앞에 도착했다. 터널 입구에는 이런 경고판이 붙어 있었다. “최대 높이 4미터, 높이 초과 차량 통행금지” 두르순은 어쩔 수 없이 트럭을 세웠다. 차가 멈추자 테멜이 창문을 열고 주변을 살펴봤다. 테멜은 급한 목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야, 출발하자! 주변에 경찰도 없고 아무도 없어!”


테멜과 부인 파티메가 두르순 집에 저녁 초대를 받았다. 두 가족이 함께 저녁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비가 세차게 쏟아졌다. 창문에서 비가 내리는 것을 본 두르순의 부인이 파티메에게 오늘 밤 자기네 집에서 자고 가라고 제의했고, 파티메와 테멜은 그러겠다고 했다. 디저트를 먹고 나서 두 가족이 잠자리를 준비하려는데 테멜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모두 테멜이 화장실에 있는 줄 알고 신경 쓰지 않고 있었는데 갑자기 문에서 ‘똑똑’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어보니 쫄딱 비에 젖은 테멜이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얼른 집에 가서 잠옷을 가지고 오느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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