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의 아시아 탐구] 6·25전쟁을 창의적으로 활용하는 한국

임진각·땅굴·백령도를 관광지로 만들어

내 고향은 터키 동부지역 끝에 있는 으드르(I?dır)다. 이 도시에서 4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이스학 파샤 궁전(?shak Pa?a Sarayı)이 있다. 오스만 제국 시기 동부지역을 지배한 곳이다. 어린 시절 그 궁전으로 소풍을 가곤 했는데, 벽 곳곳에 이런 낙서가 있었다. “알리는 레일라를 사랑한다” “여기 귀신이 있다!” 나이가 들면서 낙서들로 가득한 그 벽이 역사적 가치가 있는 유적지라는 것을 알게 됐다.

작년 여름 한 일본인 친구와 그 궁전을 다시 방문했다. 행복하면서 동시에 슬펐다. 궁전은 문화관광부 관리에 들어가 예전 낙서들은 없어졌고 복구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감동적인 모습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궁전은 무료가 아니었다. 2명이 30리라를 내야 하니 슬펐다. 궁전을 둘러보며 친구에게 “터키 유적지 운영을 한국인에게 맡겨야겠어”라고 말하자 그 친구는 깜짝 놀랐다. 나는 전 세계에서 아마도 가장 위험한 지역인 임진각을 공원으로 만들어 관광지로 활용하는 한국인이 정말 천재적이라고 생각했다.

할아버지의 슬픈 추억을 자산으로

한국인들의 대단한 작업 중 하나는 할아버지의 슬픈 추억으로 관광산업을 하는 것이다. 북한이 파놓은 땅굴을 외국인에게 보여주는 것 역시 고마우면서도 용감한 일이다. 다른 나라들은 위협적인 사건을 숨기려 하지만 한국은 관광지로 만들어 돈도 벌고 보다 더 안전한 이미지를 심어주고 있다. 이런 창의적인 관광산업은 38선에만 있는 게 아니다. 백령도와 연평도도 마찬가지다. 백령도의 아름다운 생태보다 더욱 신기한 것은 바로 11km 앞에 북한이 있다는 사실이다. 만약 아버지가 한국에 오신다면 무조건 모시고 갈 곳 중 하나가 백령도이다.

한국의 창의적 작업은 기억 속의 가장 충격적인 사건을 토대로 활발한 외교사업을 펼치는 데서도 볼 수 있다. 즉 6·25전쟁 참전국들을 형제로 삼아 특별한 관계를 맺는 것이다. 한국의 수많은 재단과 협회가 6·25전쟁 관련 사업을 한다. 일부 단체는 참전용사의 자손들에게 한국에서 장학생으로 유학할 기회도 준다. 한국전쟁기념재단 정보에 따르면, 미국 같은 초강대국에서도 이 장학생 프로그램으로 유학생이 온다. 일부 NGO도 자손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한다.

6·25전쟁 발발과 정전협정 체결 시기가 가까운 것도 어쩌면 행운이다. 매년 6월25일과 7월27일 큰 행사들이 열려 많은 참전국 대사들이 참석한다. 이를 통해 참전국들이 6·25전쟁을 일년에 한달 정도 기억하게 해주고, 그 형제의식이 식지 않고 따뜻하게 만든다.

불행이 행운 되는 ‘역발상’

6·25전쟁이 가장 많이 쓰이는 분야에는 교육도 있다. 학생들은 미술시간에 파란색으로 한반도 그림을 그리며 통일을 꿈꾼다. 한국학생들은 외국에 나가면 분단된 조국을 통일시킨다며 더욱 부지런해진다. 이는 6·25전쟁의 역사적 감정이 지닌 효과이다.

6·25전쟁은 정치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지금 한국 정당들은 대한민국 분단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이념이 갈린다. 하지만 이런 이념 차이는 적어도 터키보다 크지 않다. 대학시절 한국친구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봤다. “한국에서 민족주의적이지 않은 정당이 있니?” 한국엔 공산당, 사회당, 노동당이 없다. 6·25전쟁은 한국의 이념적 간극을 줄여준 사건이다. 단점도 있겠지만 이런 현상의 장점은 이념이 가까워서 정치계가 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정치제도 변화는 터키보다 더 쉬울 수 있다.

가끔은 우리에게 불행한 일로 보이는 것들이 행운이 되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한국인들이 오늘날 이렇게 선진국 수준으로 잘 살게 된 원동력 중 하나는 6·25전쟁이다. 한국인은 할아버지의 슬픈 추억을 많은 행복한 일들로 바꿔가고 있다.

*<잠깐~ 터키 유머> 어이없는 테멜 아저씨 이야기(18부)


테멜이 분실된 주민등록증을 다시 발급 받기 위해 동사무소에 갔다. 공무원이 테멜에게 이름을 물었다. 그러자 테멜은 “이름은 테멜이고, 성은 이시욕”이라고 답했다. 공무원이 계속해서 질문했다. “생일이 언제예요?” 그러자 테멜은 “7월 28일”이라고 답했다. 테멜의 답변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공무원이 다시 물었다. “몇 년인가요?” 테멜은 쿨하게 이렇게 답했다. “매년!”


테멜이 작은 실수로 감옥에 들어가게 됐다. 그 감옥에서 알게 된 친구 한 명이 병에 걸렸다. 병으로 그 친구는 다리 하나를 잘라내게 됐다. 조금 시간이 지난 뒤 이번에는 그 친구의 팔 하나가 잘리게 됐다. 상처가 오염되며 다음에는 다른 다리와 팔도 잘라내게 됐다. 그러자 테멜은 그 친구에게 살짝 미소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모를 줄 알아? 너 이렇게 해서 조금씩 감옥을 탈출하고 있는 거 아니야?”


테멜은 글을 쓸 때마다 장갑을 꼈다. 이러한 모습을 본 사람들이 신기해하며 테멜에게 왜 그러는 거냐고 물었다. 테멜은 조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이렇게 답했다. “다른 사람들이 내 글씨체를 알아보면 안 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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