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의 화폐 탐구] 네팔국민 하나로 묶은 ‘에베레스트’
화폐마다 종교적 상징·야생동물 담아…
[아시아엔=알파고 시나씨 터키 지한통신사 특파원] 네팔의 화폐단위는 인도, 파키스탄, 스리랑카 등 주변국가들과 같은 루피이다. 필자가 네팔 화폐를 처음 수집한 것은 2005년 봄이다. 한국어 어학당 3급반에서 공부할 때 1급반에 네팔 친구가 있었다. 그 때는 친구한테 받은 화폐가 앞으로 얼마나 귀중하게 될지 전혀 몰랐다. 그 당시 수집한 2루피는 현재 네팔에서 거의 보기 힘들어졌다. 네팔 라스트라은행이 2001년 이후 발행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화폐 앞면의 국왕 초상화가 네팔 화폐에서 사라졌다는 점이다. 2007년 네팔왕국이 네팔연방민주공화국으로 변하면서 과거의 화폐에서 보이는 네팔의 마지막 왕 갸넨드라 비르 비크람 샤허 데브의 초상화가 없어졌다.
네팔 화폐에 대해서 논하기 전에 갸넨드라 왕에 대해 알아보자. 갸넨드라 왕은 네팔왕국의 시작이자 끝이기 때문이다. 네팔에는 ‘라나 가문’ 시기가 있었다. 이 기간에는 네팔의 국왕이 있어도, 라나 가문 출신 총리가 국가를 다스렸다. 네팔 역사에서 라나 시기를 독재시절이라고도 한다. 거의 100년 넘게 라나 가문 출신 9명이 네팔 왕가와 눈치싸움을 벌이며 나라를 통치했다. 이는 갸넨드라 왕이 1950년대 3살때 왕위에 오르면서 사라졌다.
1950년 12월 갸넨드라 왕의 할아버지인 트립후완 왕이 라나 가문 출신 모함 샴세르 총리에 의해 인도로 망명가는 등 왕가 모두 인도로 쫓겨갔다. 3살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갸넨드라를 왕위에 즉위시킨 모함 샴세르 총리는 이제 모든 문제가 술술 풀릴 걸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바람과 달리 전국적인 시위가 발발했다. 어린 왕을 받아들이지 못한 네팔 국민들이 격렬한 시위를 벌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트립후완 왕과 협상하려던 모함 샴세르 총리는 트립후완 왕이 복위 후 “라나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라나 정권이 붕괴된 것이다. 이 사건으로 오늘날의 네팔 왕국이 수립되었다.
할아버지가 인도로 망명 가고 3살 때 왕에 즉위한 갸넨드라는 2001년 매우 비극적인 사건으로 또다시 왕위에 올랐다. 바로 ‘왕실 대학살 사건’이다. 2001년 6월 부친에게 화가 난 디펜드라 왕세자가 만취상태에서 MP5K 한 자루와 M16 소총을 갖고 나라얀히티 왕궁에서 진행된 만찬회장에 들어왔다. 그는 아버지인 비렌드라 왕을 비롯해 9명을 살해한 뒤 자살을 기도했다. 중상을 입은 디펜드라 왕세자는 3일 동안 왕위에 앉았다가 곧 사망했다. 조카가 죽고, 왕위를 계승할 사람이 없자 갸넨드라는 50년만에 왕위에 다시 올랐다.
당시는 마오이스트 게릴라가 일으킨 내전이 상당히 진전돼 국가는 크게 불안정했다. 더구나 왕실 대학살로 왕실은 국민들 신뢰를 거의 잃은 상태였다. 이러한 난국에 더 이상 대응하지 못한 갸넨드라 왕이 2007년말 정권을 잃고, 2008년 네팔 연방민주공화국이 수립됐다.
다시 화폐 이야기로 돌아가면, 2007년 500루피가 재발행됐을 때는 지폐 앞면에 갸넨드라 왕의 초상화는 안 보였다. 그렇다면 그 초상화를 대신한 것이 무엇일까? 예전엔 국왕이 네팔 국민을 대표했지만 네팔은 더 이상 왕정국가가 아니었다. 그러면 네팔을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 답은 너무나 자명하다. 바로 떠오르는 에베레스트 산이다.
공화국 수립 이후 화폐서 국왕 사라져…
2008년대 공식적으로 정치체제가 바뀌면서 네팔 화폐들은 갸넨드라 왕의 초상화가 사라진 채 발행되었다. 이후 2012년에 와서 네팔 라스트라은행이 모든 화폐들을 조금씩 보완해 재발행했다. 네팔 화폐 앞면에는 항상 종교적인 상징이나 장소가 있고, 뒷면에는 동물이 있다.
네팔 화폐 5루피의 앞면을 보면 사원이 보인다. 그 사원은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 가면서 필수적으로 들르는 곳인 덜발광장에 위치한 탈레주 사원이다. 1564년 지어진 이 사원은 가장 오래되고 예쁜 사원의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탈레주 사원은 힌두교에서 너무나 신성한 곳이여서, 왕정 시절에도 왕족 이외에는 출입이 금지된 구역이었다. 현재에도 네팔의 일반인들은 들어갈 수 없다는 것으로 필자는 알고 있다.
핑크 색깔 5루피 뒷면을 보면 풀을 먹고 있는 야크 2마리가 그려져 있다. 야크는 주로 히말리야 산맥 주변에 사는데 털이 긴 소의 일종이다. 야크는 원래 수컷을 의미하며, 암컷은 나크라고 한다.
10루피에는 종교적인 상징이 담겨 있다. 화폐 앞면엔 힌두교신 비쉬누가 상상의 새 ‘가루다’에 올라타 있는 모습이 보인다. 사실 이 그림은 창구 나라얀이라는 사원에 있는 동상이다. 창구 나라얀 사원은 네팔에서 제일 오래된 사원으로 알려져 있다. 네팔인들에 따르면 이 사원은 AD 300년 무렵 건축됐다고 한다.
10루피 뒷면을 보면 여타 네팔 화폐들과 다른 특성이 보인다. 네팔 화폐 뒷면에는 주로 산을 배경으로 동물 사진이 있다. 그러나 10루피 뒷면은 숲을 배경으로 검정 영양 3마리가 그려져 있다. 인도 지역에선 과거 국왕들이 검정 영양 사냥을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귀족들이 검정 영양을 사냥하기 위해 치타를 키우기도 했다. 특히 무굴제국 제3대 황제 악바르는 검정 영양 사냥을 너무 좋아해 치타를 1000마리나 키웠다는 전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