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의 화폐 탐구] 파키스탄 화폐, 형제국가 인도와 ‘닮은 꼴’
모든 지폐 앞면에 영국식민시대 독립투사 무하마드 알리 진나 초상화
10년 전 한국의 충남대로 유학 온 이후 필자의 ‘국제적인 삶’이 시작했다. 대전에서 알고 지내던 룸메이트와 대화 중 그가 화폐수집광이란 사실을 알았다. 그때까지 몇몇 외국인 친구한테 기념으로 화폐를 받았던 필자는 ‘나도 화폐 수집할 수 있겠는데….’ 하는 생각으로 화폐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룸메이트와 또 다른 친구까지 우리 셋은 화폐수집이란 공통의 취미를 갖게 된 것이다. 우리는 서로 자신이 모은 화폐를 나눠갖기 시작했다. 그때 받은 화폐 중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이 5파키스타니 루피였다.
파키스탄 화폐단위는 인도처럼 ‘루피’다. 서로 적대관계를 가진 형제국가인 파키스탄과 인도 화폐의 또 다른 공통점은 양국 지폐 앞면에 국부의 사진이 실린 것이다. 인도 화폐에 마하트마 간디의 초상화가 있듯이 파키스탄 화폐 앞면에 무하마드 알리 진나의 사진이 있다. 무하마드는 파키스탄에서 큰 존경을 받는 인물이다.
무하마드 알리 진나는 원래 인도 문명도시 카라치에서 태어났다. 그는 부친이 자신처럼 사업가가 되기를 원했지만 영국 런던으로 유학 가 법학을 공부해서 짧은 시간에 저명한 변호사가 되었다. 대학 졸업 후 영국에서 잠시 머물던 그는 뭄바이에 돌아와 법조인으로 활동하며 판사가 되었다. 정치에 관심이 있던 그는 뭄바이에서 인도국민회의에 입당하여 마하트마 간디와 함께 인도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무하마드 알리 진나는 이후 인도 내 무슬림 지도자가 되었다.
인도가 독립을 하자, 파키스탄 지역으로 이주해온 무슬림들과 함께 ‘파키스탄 이슬람공화국’을 건설했다. 파키스탄에서는 요즘도 그의 탄생일과 별세일에 기념행사를 열고 있다.
터키인으로 필자가 제일 관심을 갖고 있는 파키스탄 지폐는 5000루피다. 한국 돈으로 거의 5만원에 해당되는 고액의 5000루피 뒷면에 있는 파이살 모스크 건물은 터키사람들에게 큰 의미가 있다. 사우디 국왕이 파키스탄과 함께 수도인 이슬라마바드에 대형 모스크를 건설하기 위해 1969년 국제건축대회를 열었다. 43개국이 참가한 대회에서 터키 건축가 베다트 달러카이가 당선되었다. 달러카이는 원래 그 프로젝트를 터키 수도 앙카라를 위해 준비해 왔다. 전 세계에서 제일 큰 4번째 이슬람 사원인 파이살 모스크에서 7만5천명이 동시에 예배 드릴 수 있다. 건축 스타일상 가장 현대적인 이슬람 사원인 이 모스크의 이름 값에 부응해 건축가인 달러카이는 앙카라 시장에 뽑히기도 했다.
500루피 뒷면에도 이슬람사원 사진이 보인다. 이 사원은 현대적인 파이살 모스크와 달리 전통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다. 1600년대 후반 완공된 바드샤히 모스크는 파키스탄에서 2번째 큰 이슬람사원이다. 바드샤히 모스크는 파키스탄에 두가지 중요한 게 있다.
이 모스크는 1986년까지 300년 넘게 이슬람 세계의 제일 큰 사원이었다. 파키스탄은 이 사원의 사진을 이 나라 화폐에 실으면서 이슬람 세계에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두번째 특징은 바드샤히 모스크는 인도 수도 뉴델리에 있는 최대사원 자마 모스크와 건축 모양으로 유사하다. 그러나 타지마할과 함께 자마 모스크는 샤 자한 황제가, 바드샤히 모스크는 그의 아들인 아우랑제브 황제다. 아직도 파키스탄 인구만큼 무슬림이 살고 있는 인도에 대해 파키스탄이 인도반도의 이슬람 정통이 자신들한테 있다고 주장하지 않을까 싶다.
5루피 과다르 항구, 파키스탄 굴곡사 담아
어느 나라 지폐에 봐도 그 나라의 정치, 경제적인 상황을 느낄 수 있듯 파키스탄의 5루피도 마찬가지이다. 5루피의 뒷면에 과다르 항구 사진이 있다. 이 항구의 역사 자체로도 파키스탄의 정치, 경제적인 설명을 수없이 할 수 있지만 이 글에선 몇까지만 살펴보려 한다. 과다르 항구는 본래 200년간 오만 지배 하에 있었다. 중국이 홍콩을 영국으로부터 반환 받았듯이 파키스탄은 독립 후 미국의 지지로 이 항구를 오만에서 돌려받았다. 그리고 미국과 함께 여기에 많은 투자를 했다. 아랍반도의 지하자원을 중앙아시아로 운송하는 핵심 역할을 하는 이 항구는 미-파동맹의 상징 중 하나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미국이 인도와 더 가까워짐에 따라 파키스탄에 소홀하는 모습이 나타나며 파키스탄 정부는 불안을 느끼고 있다. 특히 과다르 항구가 있는 벨루지스탄 지역 독립 운동에 대해 지지해주지 않는 미국 대신 파키스탄은 새로운 동맹국을 찾는 중이었다. 이때 중국이 나타났다. 2012년부터 과다르 항구 운영권을 중국에 맡긴 파키스탄 정부는 정치, 경제적으로 한숨을 놓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