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의 아시아 탐구] 터키 사위가 한국장인에게 사랑받는 법
[아시아엔=알파고 시나씨 터키 <지한통신> 서울특파원] 외국인이 한국인과 결혼하면 제일 신경이 쓰이는 시기는 명절이나 어르신들의 생신이다. 특히 장인이나 장모 혹은 시어머니, 시아버지의 생신이라면 마치 대학생들이 중간고사나 기말고사를 맞는 것과 유사하다. 지난 1년간 효자로 열심히 살아왔는데, 생신 때 하이라이트를 장식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직 신혼 초인 외국인 사위나 며느리는 한국문화를 충분히 받아들이지 못했으니 모든 행동이 눈에 쉽게 띄기 마련이다.
얼마 전 장인어른의 생신이었다. 작년 봄 한국인과 결혼한 필자도 같은 생각으로 생신날 저녁 자리를 하나의 시험 장소로 여겼다. 그러나 애초부터 실수를 저질렀다. 언론사 특파원이다 보니, 긴급한 일이 생기기도 한다. 그래서 이번에도 저녁 자리에 15분 정도 지각했다. 90분 축구경기에서 15분 안에 첫 골을 먹게 된 것과 같다.
그리고 음식 문제 때문에 필자가 늘 죄송한 마음이었다. ‘할라 음식’이 아니면 고기를 못 먹으니까 가족모임은 주로 해산물과 국수 또는 뷔페에서만 식사를 하는 우리가 이번에는 칼국수집을 찾아갔다.
저녁 자리에는 한 가지 불편한 것이 더 있었다. 한국의 전통문화로서 보통 장인 생신 때는 같이 한잔 술도 마시고 그래야 되는데, 필자는 술을 안 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의 ‘수비’에는 또 구멍이 생기게 되었다. 사실은 아내도 애초 결혼을 할까 말까 생각할 때는 술 문제로 고민을 많이 했었다. 장녀인 아내 입장에서 친정 아버지가 사위와 같이 술을 마시지 않는다면 아버지께 큰 실례를 끼친 것이 아닐까 했다.
아무리 축구경기가 0-3로 시작했어도, 필자는 전반전 막판에 뛰면서 분위기를 싹 바꿨다. 일단은 음료수를 마실 때 전통적인 한국 문화대로 몸을 돌리고 마시면서 식구들에게 살짝 미소를 주었다. 이후엔 늘 써왔던 방식대로 전반전을 잘 마무리했다. 딸이 셋을 둔 장인어른은?지하철 1호선 기관사신데,?집에서는 정치나 경제 이야기는 거의 안 하신다.
필자는 특파원이다 보니 늘 한국정치에 대해 관찰하고 있다. 그래서 어느 자리에서든 장인을 뵈게 되면 곧바로 정치 이야기를 꺼낸다. 장인이 외국인이면서도 사위인 필자와 정치 이야기를 하는 게 너무나 좋아 보인다. 왜냐하면 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는 장모와 처제들만 있으니 장인은 가족들과 깊은 정치 이야기를 할 기회가 없으시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러한 정치 관련 대화는 필자에게도 많은 도움이 된다.
국회에서 통과되는 법들이 사회에서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직접 들을 수 있고, 아무 걱정 없이 마음 편하게 논의할 수 있는 유익하기 때문이다.
장인 생신의 전반전을 잘 마무리하고 나서 이제 후반전에서 대히트를 쳐야 할 차례였다. 저녁 음식을 먹고 나서 필자가 “아버님의 생신이 이렇게 끝나면 너무 아쉽다. 이제 카페에 가서 2차 디저트 합시다!” 하면서 후반전을 시작했다. 밖에 나가서 괜찮은 카페를 알아보려고 했는데, 아내와 장모님은 그냥 문이 열려 있는 한 커피숍으로 옮겼다. 그때 바로 내가 나서 “오늘 아버님 생신인데, 조금 더 괜찮은 카페 가시죠!” 하고 제의했다. 괜찮아 보이는 카페에 들어가 장인어른의 취미 이야기를 이어갔다.
장인이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등산 애호가이다. 패러글라이딩도 좀 하시는 편이다. 그래서 바로 그림과 패러글라이딩 중심으로 이야기를 했다. 나는 “패러글라이딩 하러 가실 때 저도 데리고 가 달라”고 부탁드렸다. 사실은 필자도 늘 패러글라이딩을 하고 싶었다. 이런 이야기을 나눌 때 항상 느끼는 점은, 장인의 취미와 필자의 취향이 비슷해서 대화를 나눌 자리가 충분히 생기고, 같이 뭐든 할 수 있는 아이템이 많다.
필자가 열정적으로 장인의 취미 중심으로 이야기하다 보니 장인어른도 필자가 예전에 썼던 글이나 출연했던 프로그램들을 가지고 대화를 여셨다. 때로는 칭찬하시고, 때로는 “자넨 외국인이라서 이런 점을 좀 조심하게!” 라고 건설적인 비평을 해주신다. 다음에는 필자가 전문적으로 공부한 적이 있는 역사를 주제로 이야기도 길게 했다.
시간이 흐르다 보니 이제 깔끔하게 장인어른 ‘생신 작품’을 마무리해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끝으로 장인께 새로 생긴 SNS 하나를 가르쳐 드리고 이번 ‘생신 작전’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요즈음 유럽에서 유명한 ‘periscope’라는 생중계 방송 앱을 장인어른께 보여드렸다. 장인어른은 취미생활을 풍부하게 하시는 편이라서, 그림 그릴 때나 패러글라이딩 하실 때 휴대폰으로 생중계 방송을 하시면 많은 팬이 생기지 않을까 싶었다. 말로 설명이 안 되니까 바로 거기서 장인어른과 같이 잠시 periscope로 생방송을 하면서 설명해 드렸다.
이 글을 읽으신 분들은 착각하지 마시기 바란다. 필자가 계산적이고 의도적으로 이렇게 했다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필자는 한국인이 아니니까 가끔씩 식구들이 힘들어 하는지 알고 열심히 하는 것뿐이다. 입에서 나온 한 마디에도, 몸에서 나온 한 동작에도 다 진심이 담겨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