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의 아시아 탐구] 절대권력 문턱서 좌절, 터키 에르도안 대통령 다음 선택은?

터키 총선 하루 뒤인 6월8일, 터키 쿠르드계 정당인 인민민주당(HDP) 지지자들이 이스탄불 시내를 행진하고 있다.

터키 총선 하루 뒤인 6월8일, 터키 쿠르드계 정당인 인민민주당(HDP) 지지자들이 이스탄불 시내를 행진하고 있다. <사진=AP/뉴시스>

터키 총선 쿠르드계 약진·야당 연정에 소극적 ‘안개정국’

[아시아엔=알파고 시나씨 터키 지한통신사 특파원] “터키에서 6월7일 실시된 총선은 혁명적이었다.”

터키 국내외에서 한결같이 나오고 있는 분석이다. 터키에서 13년째 집권을 하고 있는 정의개발당(AKP)이 사상 처음으로 패배했다. ‘패배’라는 말이, 1위를 하지 못했다는 것이 아니고 자력으로 내각을 구성할 수 있는 의석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모두 550석 국회에서 258명의 의원과 40%의 지지율을 얻은 AKP가 26% 지지로 제1야당이 된 공화민중당(CHP)에게 패배했다는 평가를 받는 것이다.

그렇다면 AKP가 6월7일 선거일에만 패한 건가, 아니면 그 이전부터 이런 조짐이 있었던 것인가? 사람들은 음주만으로 취하지 않는다. 음주 이외에도 여러 방법이나 수단을 통해 사람들은 취할 수 있다. 그 중에 제일 위험한 것이 ‘힘’이다. 특히 힘에 취한 정치인은 가장 심각한 상태에 빠질 수 있다. 삼권분립 원칙이 하나의 견제와 균형을 위해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삼권분립도 무너진 상황이라면, 그 나라에서 투표함은 독재체제 유지를 위한 도구에 불과한 것이다.

보다 명확하게 따져보자. AKP 혹은 에르도안 대통령은 언제부터 힘에 취한 것인가? 2011년 총선에서 AKP는 49% 지지율로 터키정치사에서 깨뜨릴 수 없는 하나의 기록을 세웠다. 3번의 선거 때마다 자신들의 지지율을 끌어올리면서 정권을 잡은 유일한 정당이 바로 정의개발당이다. 그러나 이러한 분위기는 당시 총리를 역임한 에르도안의 말과 행동을 변하게 만들었다. 에르도안은 자신과 성향이 다른 사람들의 사생활에 개입할 여지가 있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이러한 과정에서 몇 가지 법안도 제정했다. 술 판매를 통제하는 법이 대표적인 예다.

술 판매의 경우 일부 북유럽국가와 비슷한 조치를 내리는 이 법안에 대해 필자는 개인적으로 지지했다. 하지만 AKP가 사회적인 합의를 충분히 이끌어내지 않고 자의대로 법안을 통과시킨 것이 잘못 끼운 첫 번 째 단추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를 계기로 이제까지 AKP를 찍지는 않았어도, AKP를 존중하는 시민들이 급속도로 AKP를 싫어하게 됐다. 심지어 이들은 AKP를 독재정권으로 보기 시작했다.

AKP의 둘째 전환점은 ‘탁심게지 공원’ 사태에 있었다. 반AKP 정서를 가진 청년들이 공원 철거 소식을 듣고서 환경보호 차원에서 시위를 벌였다. 초기 시민단체들이 중심이 됐던 이 시위는 짧은 시간 안에 반정부 시위로 변했다. 에르도안은 시위자들과 대화는커녕 해외 순방길에 올랐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외국에 있는 동안 대통령, 부총리 할 것 없이 집권당 간부들은 시위자들에게 달콤하고 부드러운 말투로 “미안하다”는 뜻에 가까운 발언을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에르도안은 귀국하자마자 자신의 정치적 동지들과 달리 강력 대응에 나섰다.

에르도안의 지시로 경찰은 과잉진압을 통해 시위를 봉쇄하려 했다. 그러자 시위자들도 경찰의 강력 진압에 맞서 과격해지면서 충돌이 일어났다. 전국적으로 2주 가량 지속된 시위 도중 사망자가 나오고 상점들 피해가 컸다. 그런데 에르도안은 외부세력이 개입했기 때문에 문제가 커졌다며, 시위자들을 외부세력의 ‘트로이 목마’라고 몰아부쳤다. 이것이 에르도안의 두번째 실수다.

에르도안은 무분별한 발언을 통해 대통령과 부총리 등 한때 어깨동무하며 열심히 해왔던 정치적 동지들의 명예를 건드리고, 심지어 그들을 억압하면서 정당의 절대적인 1인자로 올라섰다. 그와 동시에 반대파에 대해서는 적으로 간주하면서 터키 사회를 분열시켜 나갔다.

6월7일 이스탄불에서 AKP 지지자들이 아흐멧 다부토울루 APK당 대표 겸 총리의 포스터 옆에서 선거결과를 지켜보고 있다.

6월7일 이스탄불에서 AKP 지지자들이 아흐멧 다부토울루 APK당 대표 겸 총리의 포스터 옆에서 선거결과를 지켜보고 있다. <사진=AP/뉴시스>

귤렌 등 옛 동지 배신과 탄압으로 역풍
이처럼 에르도안이 독재로 치달으면서도 그에게는 ‘U Turn’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이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마지막 큰 실수는 바로 ‘히즈멧운동’을 테러조직으로 혐오하고 탄압한 것이다. 히즈멧운동은 터키의 지도자 가운데 한명인 페툴라 귤렌이 정신적으로 이끌어간 교육운동의 하나다. 이 운동을 통해 터키를 비롯해 전세계에 수천개의 학교와 학원이 개설됐다.

에르도안은 2013년 말 느닷없이 터키내 학원들을 없앤다고 선언했다. 그 당시까지 히즈멧운동 봉사자들은 에르도안의 민주화정책을 지지하고, 굳이 비판을 할 경우에도 건설적인 제안을 하면서 에르도안을 감싸왔다.

그러나 이 일을 계기로 히즈멧운동 봉사자들은 말 그대로 에르도안 비판에 앞장서기 시작했다. 바로 그런 시점에 에르도안 정부의 장관 4명과 에르도안 아들의 비리에 대한 수사가 시작됐다. 물론 에르도안 역시 이같은 수사방침에 대해 미리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검찰과 국가정보국이 에르도안에게 사전 보고했기 때문이다. 수사가 시작되자마자, 에르도안은 사건 담당 수사 검찰 및 경찰을 배척한 채 “이번 비리수사는 정부에 대한 쿠데타 시도”라고 몰아부쳤다.

에르도안 총리는 학원폐지와 비리 장관들 및 아들에 대한 수사를 한 묶음으로 매도하면서 수사경찰들을 히즈멧운동 봉사자라고 호도했다. 그는 “히즈멧운동이 외부세력을 통해 나에게 쿠데타를 하려고 한다”며 비리논란을 덮어버리려 했다.

에르도안은 이를 통해 두가지를 노렸다. 비리수사를 덮는 동시에 히즈멧운동을 ‘평행정부’라고 공격하면서 이 운동과 관계 있는 기관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 했다. 왜냐하면 에르도안은 정권 유지를 위해 우파의 지속적인 지지를 이끌어야 했기 때문이다.

에르도안은 친정부 재벌을 통해 대부분의 우파언론을 인수, 장악했다. 하지만 발매부수와 영향력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자만신문사와 계열사들이 우파에게 영향을 미치면서도 정부를 비판하는 것에 대해 에르도안은 못마땅해왔다. 자만신문사는 에르도안 정부에 의해 수차례 압수수색을 당하고 <사만욜루> 방송사 회장은 아직도 불법 수감중이다. 사만욜루 방송사 회장에게 무죄판결을 내린 판사 3명도 국가반역죄로 구속됐다.

에르도안은 애초 히즈멧운동 봉사자들에게 덮어씌운 ‘평행국가’란 죄목을 나중엔 터키의 여타 ‘反AKP 세력’에게 사용했다. 즉 에르도안은 자신의 권력에 위협적인 시민단체나 노조, 또는 고위급 공무원들을 ‘평행국가’라고 규정하면서 제거해 나갔다. 히즈멧운동과 아무 상관이 없는 수많은 경찰, 검찰, 판사, 고위급 공무원에 대해 희망퇴직을 시키거나 원거리 파견 명령을 내렸다.

그렇다면 터키국민들은 에르도안에게 지난 2년간 지지를 보내거나 그의 불법행위에 대해 참아왔는가? 에르도안 정부는 초기 7~8년간 매우 성공적으로 국정을 펼쳤다. 경제성장률은 10%에 이르렀고, 언론자유나 민주화 측면에서 개방적이고 발전을 이뤄냈다. AKP정부는 짧은 기간에 터키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경제와 정치의 급성장은 국민들의 신뢰를 얻기에 충분했다.

국민들은 AKP의 대안정당이 없는데다, AKP를 몰아내고 싶지 않았으며, AKP 스스로 이러한 잘못을 고치길 바랬던 것이다. 이를 반영이라도 하듯, 작년 대선 때는 터키 국민들은 에르도안이 대통령이 되기 위해 필요한 51%를 웃도는 51.5%의 지지를 보냈다. 당시 터키 국민들은 “에르도안 총리, 이제 제발 정신 차리고 국정을 예전처럼 잘 해라! 안 그러면 우리의 지지가 곧 당신을 떠날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주었다. 그러나 에르도안은 대선 결과를 놓고 “국민들이 나를 절대적인 지도자로 보고 있구나!” 하며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했다.

에르도안은 대선 승리로, 아직 내각중심제로 운영되는 터키의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대통령이 되고서도 변한 것은 하나도 없이, 오히려 강하게 밀고 나갔다. 지난 1년간 터키 언론은 역사상 보기 힘든 압력과 구속을 받았다. 2014년 거의 1천명의 기자가 해직됐다. 수많은 기자가 교도소에 있거나 재판을 받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정부 화물차가 시리아 반군에게 무기를 배송했다”는 기사를 쓴 기자에 대해 생방송에 출연해 “기자는 자신의 기사에 책임을 져야 해! 내가 그를 내버려 둘 것 같은가?” 하는 식으로 협박을 해댔다.

에르도안의 또 다른 큰 잘못은 중립을 지키지 못한 것이다. 에르도안은 대통령 취임 때 “정당들 간에 중립을 지키겠다”는 선서를 했다. 그런 그가 총선에서 AKP당 선거운동에 앞장섰다. 에르도안이 대통령으로서 총선에 임하면서 행한 다음 두 가지 발언은 터키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그는 “대통령으로서 중립을 지켜야 하지 않습니까?”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내가 선거운동을 할 때 어느 정당에 투표하라고 하나요? 아니잖아요!”
국민을 바보로 보지 않았다면 나올 수 없는 발언이다. 또 하나는 “대통령으로서 왜 선거운동에 나서는 겁니까?”란 질문에 “지금 사람들이 다 광장에 모여 있는데, 그들을 그렇게 그냥 두고 있을 수가 있나?”라고 답했다.

AKP당 대표이자 터키 총리인 아흐멧 다부토울루를 겨냥해 무능한 정치인으로 만들려는 의도된 답변이었다. 위와 같은 에르도안의 모습은 전통적인 AKP 지지자들조차 지치게 만들고 마침내 그에게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이는 바로 에르도안에 대한 터키 국민의 심판으로 나타났다.

AKP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그래도 AKP는 여전히 터키의 제1당이다. AKP는 두개의 선택을 할 것이다. 하나는 AKP의 유력 정치인들이 에르도안을 대통령실에 가둬놓고 정치에 개입하지 못하게 만들면서 중단됐던 비리수사를 어느 정도 진행해 일부 장관들을 재판에 회부하는 것이다. 그럴 경우 잃어버린 민심을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AKP 안에 이제까지 조용히 누적돼온 反에르도안 정서가 드러나면서 AKP가 친에르도안파와 반에르도안파로 갈라질 것이다. 즉 에르도안은 불과 얼마 전까지도 동지였던 정치인들에게 배신당하며 버려질 수도 있다. 그럴 경우 AKP당은 건재할지라도 에르도안 개인적으로는 정치적인 치명상을 입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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