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가정’의 이중성···김정은 독재체제 유지의 버팀목?
[아시아엔=서의미 기자] 어린 마크 킴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린다. 춥고 시린 겨울에도 마크와 같은 어린아이들은 김일성 동상을 바라보면서 감정에 북받쳐 가슴을 치며 운다. 이같은 광경은 북한 만수대기념비 앞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지만 제3자인 우리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광경이다.
북한 주민들이 잔학한 김정은 독재정권 아래에서 온갖 핍박과 궁핍, 그리고 고난을 겪고 있음을 이미 온 세상이 잘 아는 사실이며, 또한 독재자 김정은이 얼마나 위험한 인물인가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북한방송을 통해서 보게 되는 것은 북한인들이 김정은에 대하여 열렬한 존경과 사랑을 나타내는 것 같은 광경들이다. 이러한 광경은 우리로 하여금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2006년 1000여명의 북한 백내장 환자들이 아주 훌륭한 네팔 의사를 통해 수술을 받게 되었다. 그들의 백내장 주 원인이 영양실조임에도 불구하고 환자들은 단지 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김정일을 ‘아버지’라 칭송하며 찬양하였다.
2011년 독재자 김정일의 죽음 앞에 어느 누구도 죽은 김정일을 애도하며 통곡하는 시민들을 위로할 수도, 고함을 지르며 오열하는 이들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이러한 북한인들의 모습에 우리의 시선이 고정되었다.
북한주민들은 독재정권을 뒤엎거나 그에 대한 어떤 반란 또는 혁명을 이루기에는 너무 미약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심각할 정도로 김정일 세력에게 세뇌당하고 있다는 사실도 한 원인이었다.
하지만 최근 탈북민들의 증언은 우리에게 사뭇 다른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북한 주민들에게 암시장이 소개된 이후 청년들은 외부 세상에 노출되어 가고 있다. 또 남한이 북한을 향하여 살포한 반(反) 김정은 풍선이 북한 시골 지역에까지 퍼져가고 있다. 지금 많은 북한 주민들은 독재가 아닌 민주주의 국가의 현황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자기와 다른 국가들에 대하여 듣게 되고, 특히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룬 남한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렇다면 북한은 큰 저항에 직면한 것은 아닐까? 김정은이 자신의 정권이 이러한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절대로 잠자코 있을 리가 없다. 탈북 전에 정부기관에서 중간간부급으로 일했던 김광호씨에 의하면, 실제로도 북한인들 가운데 불만이 커져가며 미미하게나마 김정은에 대한 저항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Channel4 News>). 그렇다고 해도 금세 혁명이 일어날 것 같지는 않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이미 많은 것을 알게 된 북한주민들은 그들 특유의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억압적인 독재자에 대한 두려움이 아닌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북한의 가정’과 연관이 있다. ‘가정’은 수년간 고통으로 점철된 가족과 가족 사이에 형성된 네트워크를 말한다. 북한사회는 가정을 통해 자신들이 보호를 받는 동시에 감시를 받고 있다는 생각을 느끼게끔 하는 공동체다.
김일성에서 시작된 독재정권이 이처럼 효과적으로 운용될 수 있었던 것은 정부가 북한 주민들 한 사람 한 사람을 관찰해서가 아니라 각 ‘가정’이 서로를 지원하면서, 김일성-김정일 주체사상의 패러다임을 확산시켜 왔기 때문이다.
현재 서울에서 대학교에 재학 중인 탈북민 고나영씨는 북한에 남아 있는 그녀의 공동체를 그리워하며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가난했지만, 서로 친했고 이웃간에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밥상에 차려진 것은 오로지 밥 한 공기와 국 한 그릇이었지만, 함께 먹고 웃으며 서로를 위로해줬다. 지금도 어머니, 아버지, 언니, 오라버니와 친구들이 그립다.”(<The Telegraph>)
많은 북한 주민들은 그들만의 사회에 의존적이면서도 자신들의 정체성을 주변인들을 통해 형성하며 살아간다. 그러므로 김정은 정권을 향한 반란은, 가족을 배신하는 것과 같으며 자유를 잃더라도 가족은 감히 배반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모양이다.
또 다른 탈북자 마크 킴은 현재 연세대학원에서 국제관계를 전공하고 있다. 그는 15년 전 김일성 동상 앞에 울던 모습이 외신에 보도됐던 바로 그 소년이다. 그는 “이제서야 말하지만 당시 나는 가짜로 울었던 것”이라고 기억한다. 주변에서 하도 울어서 자신도 울어야 할 것만 같아서 울었다는 것이다.
그는 TV방송에 비쳐지는 북한인들은 모두 다 우는 연기를 잘 한다고 본다. 그는 “북한 주민들에겐 북한은 하나의 큰 사회주의적인 가족이며 나라의 붕괴는 삶을 포기하는 것과 동일하다”며 반국가적인 반란에 대하여 회의적이다.
한양대에 재학 중인 탈북민 수경씨(가명) 또한 “북한인들이 크게 저항하지 않을 것이다, 목숨을 걸면서까지 그럴 것 같지는 않다”며 마크 킴과 같은 생각이었다.
그동안 북한을 변화시키기 위해 남한사회에서 여러 가지 노력을 해왔다. 한류드라마를 북한에 몰래 전파시키거나 선전용 전단지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런데 과연 그런 것을 통해 북한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에 대해 회의적인 평가도 많다.
북한 내부에 대한 보다 정확하고 정밀한 분석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당분간은 북한 아이들은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의 동상 앞에 무릎 꿇고 울고 있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