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 3박4일 방문기] 류큐민족의 볼거리·먹거리···장수촌·산호초·오리온 맥주
[아시아엔=박명윤 <아시아엔> ‘보건영양’ 논설위원] 동양의 하와이, 남국의 파라다이스 등으로 불리는 오키나와(Okinawa)를 2월 22~25일 3박4일 일정으로 다녀왔다. 필자는 몇년 전 브래들리 윌콕스(내과의사), 크레이그 윌콕스(의학·인류학자), 마코토 스즈키(노인병 학자) 등 3인이 공동으로 집필한 <오키나와 프로그램>(The Okinawa Program)을 읽고 오키나와 장수촌인 오기미(大宣味, Ogimi Village)를 직접 방문할 계획을 세워 이번에 실천하게 되었다.
인천국제공항에서 오키나와 나하(Naha) 국제공항까지는 1시간 50분 정도 걸렸다. 일행은 우리가족 8명과 4명 가족, 그리고 2명 가족 총 14명이었으며, 연령은 10대 청소년부터 70대까지 다양했다. 필자가 77세로 최고 연장자였다. 지난해 2월 호주와 뉴질랜드 방문 시에는 우리가족 5명과 신혼부부 2쌍, 그리고 중년부부 3쌍 등 15명이 10일 동안 즐거운 여행을 한 바 있다.
혹자는 여행을 추억을 남기기 위하여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것이라고 했다. 즐겁고 뜻있는 여행의 필수조건으로 일정, 날씨 그리고 구성원이라고 본다. 이번 여행일정은 3박4일 중 하루는 자유여행을 할 수 있어 좋았다. 오키나와 체류 동안 기온은 13-25도, 날씨는 흐리고 비가 가끔 내려서 아열대지역인 오키나와의 뜨거운 햇볕은 체험하지 못하여 아쉬웠다.
그러나 오키나와는 태풍이 지나가는 길목에 있어 태풍이 오면 관광은 취소되고 호텔방에서 지내다가 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투어 가이드(서경화 실장)는 일본에서 공부하고 15년 경력을 가진 중년여성으로 풍부한 지식과 경험으로 우리 일행에게 일본역사 등 유익한 정보를 많이 제공해 주었다.
여행 일정은 2월 22일(1일차) 12시 정오경에 아시아나항공(OZ172)편으로 오키나와 나하국제공항에 도착하여 가이드 안내로 오키나와 역사, 문화, 자연을 체험할 수 있는 오키나와 월드와 전통춤 공연관람, 옥천 종유석(鐘乳石)동굴을 관찰했다. 아메리칸 빌리지를 한바퀴 돌아본 후 저녁식사(야키니쿠, 고기 뷔페)를 마치고 베셀(Vessel)호텔에서 숙박을 했다.
2일차인 23일에는 트로피컬 테마파크, 오키나와 EXPO 해양공원(추라우미수족관)과 돌고래쇼 관람, 높이 200m의 석회암 절벽 위 만좌모(만인이 앉아도 충분한 잔디벌판), 코끼리 모양의 절벽 등을 구경했다. 오후에는 2억년전 석회암층이 융기하여 생긴 세계 최북단의 열대 카르스트지형이며 류큐신화(神話)의 성지인 대석림산 관광으로 짜여져 있었다.
필자는 다이세키린잔(大石林山) 관광을 대신하여 장수촌(長壽村) 오기미(大宣味) 마을을 방문했다. 저녁에는 나하 국제거리(國際通)에 위치한 식당에서 저녁식사 후 네스트(Nest)호텔에서 숙박했다. 이튿날은 자유여행 스케줄로 짜져 있어 저녁에 우리가족은 호텔 인근 일본식 술집에서 일본 가희(歌姬)의 악기연주와 노래를 감상하면서 오키나와 명품 ‘오리온(Orion)’ 맥주와 안주를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3일차는 자유일정인 관계로 필자와 아내는 둘째딸 내외와 함께 오키나와 박물관을 방문하여 고대 류큐왕국의 유물들을 살펴보았다. 점심은 필자와 사위는 박물관 직원이 소개해 준 일본전통(傳統)식당에서 삶은 오키나와 재래돼지족발 정식(定食, 980엔)과 생선지느러미 돈까스 정식(1180엔)을 먹었다. 오후에는 나하국제거리에 위치한 전통시장을 구경했으며, 저녁 만찬은 오키나와에서 유명한 스테이크 전문점(Han’s Steak House)에서 먹었다.
4일차 마지막 날은 오전에 류큐왕국의 역사를 볼 수 있는 슈리성 공원(Shurijo Castle Park)을 방문하여 옛 왕궁을 둘러보았다. 슈리조(Shurijo)는 14세기 말에 창건된 중국과 일본의 문화도 혼합되어 있는 오키나와의 독자적인 성(城)이다. 오키나와 전투에서 소실되었지만 1992년 11월 3일에 정전(正殿)을 비롯한 일부가 복원되었다.
슈리성 관람 후 비행장으로 가는 길에 면세점에서 몇 가지 물품을 구입했다. 오후 1시 아시아나항공(OZ171)편으로 나하국제공항을 출발하여 오후 3시20분경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철도’를 이용하여 DMC역에서 내려 택시로 집에 돌아와서 즐겁고 유익한 오키나와 여정(旅程)을 마무리했다.
오키나와는 일본 쿠슈(九州) 남단으로부터 약 685km 떨어진 최남단에 위치해 있으며, 57개 섬으로 이루어진 오키나와현(縣)에서 가장 크고 중심이 되는 섬이다. 오키나와현에 거주하는 총 인구의 약 88%가 오키나와에 거주하고 있으며, 130만 인구 중 100세 이상 노인이 400명이 넘는다. 아름다운 산호초(珊瑚礁)가 있는 에메랄드 빛깔의 바다의 해안으로 관광지로 유명하다.
오키나와 관광은 세 가지 키워드로 분류할 수 있다고 한다. 즉, 독립국이었던 ‘류큐 왕국(琉球王國)’의 문화, 미군정(美軍政) 시기를 거치면서 남아있는 미국문화의 영향, 그리고 추라우미 수족관(水族館, Churaumi Aquarium))으로 대표되는 바다와 아열대풍경 등이다. 오키나와(沖繩)가 일본 영토가 된지 오래 되었으나 지명(地名) 등이 류큐어(琉球語)로 된 것이 많다.
오키나와는 600년 전 독립국가인 ‘류큐왕국’이 존재했던 곳이다. 류큐왕국(Kingdom of Ryukyu)은 12세기부터 몇 개의 집단이 세력을 다투다가 1429년 등장한 통일왕국으로 오키나와의 중심지인 나하(那覇)의 동부에 위치한 슈리(首里)를 도읍으로 삼았다. ‘류큐’는 현재 ‘오키나와’의 옛 지명이다.
류큐왕국은 12세기부터 17세기 초까지 동남아와 동북아 국가 사이에서 중계무역을 하면서 발전했다. 그러나 1609년 당시 가고시마(鹿兒島) 지방의 영주(領主) 시마즈에 의해 정복되었다. 그리고 1879년 일본 메이지(明治)정부에 의해 43번째 현(縣)인 ‘오키나와현(沖繩縣, Okinawa Prefecture)’이 됐다.
오키나와는 1945년 4월 1일 미군(美軍)이 상륙하여 3개월간 제2차 세계대전의 마지막 대전투를 벌인 격전지(激戰地)였으며, 사망자 20여만명 중 주민이 9만4천명에 이르렀다. 이후에 오키나와는 미군에 의해 점령되어 군정(軍政) 통치를 받았다. 1971년 미국과 일본 사이에 오키나와 반환협정이 조인되고, 1972년 5월 15일에 발효되어 26년 만에 오키나와는 일본으로 복귀되었다. 그러나 지형학적 위치로 미군기지는 계속 남아 일본 내 미군기지의 74.8%가 일본 국토의 0.6%에 불과한 오키나와에 집중돼 있다.
류큐왕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으나, 오키나와에는 찬란했던 류큐왕국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으며, 도읍지였던 슈리(首里)에는 많은 유적들이 남아 있다. 특히 슈리성 정전(首里城正殿)은 국왕이 업무를 보던 곳으로 중국과 일본의 양식이 함께 공존하는 특이한 유적이다. 오키나와 사람들은 일본이라는 현재의 국적보다 류큐왕국의 후예(後裔)라는 사실에 더 자부심을 느낀다고 한다.
슈리성(城)의 정문인 슈레이문(守禮門)은 중국의 영향을 받았지만 류큐왕국의 독창적인 기법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유적으로 꼽힌다. 이러한 유적들은 구수쿠의 유적과 함께 2000년 유네스코(UNESCO)에 의해 ‘구수쿠 유적 및 류큐왕국 유적(Gusuku Sites and Related Properties of the Kingdom of Ryukyu)’의 명칭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구수쿠 유적은 오키나와 남쪽지역의 섬들에 남아 있는 10여 개의 옛 성(城)을 말한다.
오키나와는 류큐왕국의 유산, 독특한 문화, 남국의 자연풍경 등 볼거리가 많아 1년에 5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방문하고 있다. 오키나와현(縣) 주민 대부분은 류큐(琉球)민족으로 일본 본토 야마토(大和)민족과 구분되는 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일본 본토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특이한 성씨(姓氏)들도 많다. 토질이 물이 잘 빠지는 석회암(石灰巖)인 관계로 벼농사보다는 사탕수수 농사가 위주이다. 소득수준은 일본에서 가장 낮아 전국 평균의 70%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