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말 현재 일본이 영토분쟁 벌이는 지역은?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일본이 타국과 영토문제를 벌이고 있는 곳은 네곳이다. △독도 △센가쿠열도 △북방영토 등이다. 한국과는 독도문제인데 자기들 기록만 살펴보아도 전혀 말이 되지 않는 문제를 트집 잡는다. 중국과는 센가쿠열도가 있다. 이 문제는 앞으로 50년 동안 일본과 중국, 나아가 미국과 한국도 포함하는 문제가 될 수 있다. 러시아와는 북방영토 문제가 있다.
미국과의 오키나와 문제는 1971년 오키나와가 일본에 반환됨으로써 해결됐다. 1945년 패전 이래 일본이 영토를 회복하는데 36년 걸렸다. 그러나 오키나와는 오랫동안 독립된 나라를 유지해왔다. 1429년부터 류큐(琉球)가 있었는데 1879년 일본에 병합되었다. 일본이 조선과 강화도조약을 맺은 것이 1875년이니 이때부터 일본은 주변을 병합하기 시작했다. 오키나와 사람들은 일본과 정서적으로 유대가 없었다. 태평양전쟁 말기에 일본군은 오키나와를 요새화시켰다. 일본군의 저항은 집요하였다. 오키나와 사람의 희생도 막대하였고 일본군은 옥쇄하면서 주민들도 바다에 떨어져 죽을 것을 요구하였다. 오키나와인들이 본토인들과 상당한 위화감이 있는 것이 이 때문이다.
이때의 미 해병대의 격전과 희생은 존 웨인 주연의 영화 <유황도의 모래>에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그 희생이 너무 커서 미국은 이런 식으로 본토를 점령하려다가는 희생자가 100만이 날 것으로 우려해서 원자폭탄을 터뜨려 항복을 받았다. 일본의 오키나와 회복이 구토(舊土)의 회복이라고 하기는 어려운 곡절이 있다. 실은 일본이 대마도를 통치하기 시작한 것도 메이지유신 이후다.
일본은 1951년 연합국과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주권을 회복하였지만 소련과의 강화협정은 맺어지지 않았다. 북방영토를 둘러싼 영토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1885년 러일? 화친조약 이후 일본은 쿠릴 4개섬을 지배해왔다. 1945년 소련군이 이 지역에 진주한 이후 러시아가 지배하고 있다. 소련은 1956년 일본과 국교회복 공동선언에서 “평화조약을 체결한 뒤 시코탄, 하보마이를 반환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본은 4개 섬 모두 반환할 것을 요구하면서 평화조약을 체결하지 않고 있다.
푸틴은 “1956년 국교회복 공동선언을 중시한다”면서 “무조건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인도 조건 및 섬의 주권에 관해 검토해야 한다”는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사토오 수상이 오키나와 회복을 위해 미국 닉슨 대통령과의 협상에 공을 들였듯이 아베가 북방영토 문제에 관해 푸틴과 협상하여 돌파한다면 그것은 정치적으로 큰 득이 될 것이다.
일본은 남중국해에서 센가쿠열도(釣魚島)를 둘러싸고 중국과 대결을 벌이고 있다. 여기에 대한 우리의 입장은 이중적이다. 일본은 우리의 동맹인 미국과 동맹이고, 중국은 우리의 적인 북한의 동맹이니 일본과 중국에 대한 우리의 입장이 같을 수 없다. 더욱 남중국해에서 해양의 자유항행은 유지되어야 한다는 중재재판소의 결정은 문명국이라면 다같이 존중해야 한다. 역사와 지리는 국가전략의 기본이고 외교는 이에 충실한 수단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