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현대사 6대 사건 ⑤] 중일 역사왜곡, 사소한 부분도 가벼이 여기면 안돼

<동북아역사재단-아시아엔(The AsiaN) 공동기획>

[아시아엔=송기용 머니투데이 산업부장, 전 베이징특파원] 한국은 인접 두 개의 가장 중요한 주변국 즉 중국과 일본의 역사왜곡에 줄곧 시달려왔다. ‘역사왜곡’을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하면 대부분 일본과 중국이 관련돼 나타난다.

한국에 대한 이들 두 나라의 역사왜곡의 뿌리가 깊고 광범위하다는 얘기다. 2차대전 패전국인 일본은 국가재건에 주력하느라, 또 어정쩡한 승전국으로 국가형태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중국 역시 과거사에 대해 제대로 신경쓸 겨를이 없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세계 최상위권의 경제 및 군사강국으로 도약하면서 이들 국가의 역사왜곡이 본격화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갈수록 심화되는 역사왜곡은 중국의 경우 동북공정으로, 일본은 독도 영유권 주장과 일본군’위안부’ 문제 등에 집중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교과서에서까지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먼저 일본의 역사왜곡을 살펴보자.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 되는 해 올해 지난 4월 7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이 “독도가 일본 고유영토”라는 주장을 담은 2015년판 <외교청서>(외교백서)를 각의(국무회의)에 보고했다.

외무성이 작성한 외교청서는 “독도에 대해 역사적 사실에 비춰보거나 국제법상으로도 명백한 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기술했다. 올해 외교청서는 또 한국 부분에서 작년 청서에는 포함됐던 “자유민주주의, 기본적 인권 등 기본적인 가치와 이익을 공유한다”는 표현을 삭제했다. 다만 “한국이 가장 중요한 이웃국가”라는 표현은 유지했다. 외교청서는 국제정세의 추이 및 일본의 외교활동 전망을 담은 보고서로, 1957년부터 매년 발행되고 있다.
일본은 앞서 지난 4월 6일 독도 영유권 주장을 대폭 강화한 중학교교과서 검정결과를 발표했다.

독도 영유권 주장과 관련해 2013년 6월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에 흥미로운 글이 실렸다. 미 해군분석센터 선임고문 제임스 클래드(James Clad)와 어틀랜틱카운슬의 펠로우 로버트 매닝(Robert Manning)이 공동 집필한 기고문이다. 이들은 “일본이 독도를 한국에 돌려주라”며 “독도는 이미 한국이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들의 주장은 반환이라는 말은 ‘부정확한 표현’이고, 일본이 영유권 주장을 포기하고 한국의 주권을 인정하라는 권고를 한 것이다.

미국은 그동안 한일 간의 독도를 둘러싼 영유권 분쟁에 대해 중립을 지켜왔고, 현재도 그 입장에는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정부와 민간을 떠나서 일본에게 독도를 한국에 넘겨주라고 공개 제안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클래드와 매닝은 미 정부의 주요 공직자가 아니고, 문제의 기고문이 미국의 입장을 직접 반영한 것이라 보기도 어렵지만, 두 필자가 미 정부기관과 정부와 밀접히 연계된 민간 싱크탱크에 각각 재직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눈여겨 볼 만하다. 미 정부기관 재직자는 보통 외부 기고, 특히 외국 언론에 기고할 때 상부 허가를 받아야 하고, 글 내용에 관해서도 정부 정책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 범위 안에서만 허용 받는 것이 관례다. 따라서 당시 기고문은 일본에 지적 자극을 주고 한국에게는 환심을 얻으려는 미국 일각의 비공식 제스처라고 볼 여지도 있다.

당시 기고문은 ‘아베 신조가 노벨 평화상을 받는 법’(How Shinzo Abe could win the Nobel Peace Prize)’이라는 제목으로 이런 내용을 담고 있다.

“아베 총리는 태평양 지역에 내셔널리즘의 망령들을 다시 불러내고 있다. 과거 일본의 역사적 행위에 대한 수정주의적 태도를 보여 주변국들의 우려를 사고 있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은 일부 자국 학자들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으며 18세기 일본 지도들조차 독도는 한국 영토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작은 섬 독도는 일본의 경제·정치·전략적 가치가 거의 없는 대신 지정학적인 골칫거리일 뿐이다. 아베 총리가 독도를 포기하는 대담한 행보를 취한다면 사다트의 이스라엘 방문이나 닉슨의 중국 방문처럼 일본의 평판을 극적으로 개선하고 지역을 긍정적으로 완전히 탈바꿈할 수 있으며 유력한 노벨평화상 후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들 미국인 필자들은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중국의 센가쿠/댜오위다오 요구나 러시아의 북방영토 점령에 대한 일본의 반론보다 훨씬 더 취약하고 타당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또 독도는 한국인들에게 ‘감정적 쟁점’인데 반해 일본인들에게는 타케시마가 센카쿠열도나 북방영토만큼 중요하지 않다고 지적하고 있다.

필자들은 일본의 독도 포기를 공론화하면서 이런 “대담한 조처”는 “의심할 여지없는 우호적 행동”으로 엄청난 “충격효과”를 불러일으킬 “웅장한 몸짓”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해 한국(정부나 시민단체 또는 국민)이 어떤 입장을 지녀야 할지 시사하는 바가 많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역시 일본의 대표적인 역사왜곡 사례다. 일본 우파는 위안부 문제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한국과 중국, 동남아시아 여성들을 성노예로 만든 ‘위안부’ 이슈는 일본의 극우 정치인에게 치명적 약점이기 때문이다. 일본이 재무장에 나서면 한국·중국 등 주변국이 가장 먼저 떠올릴 피해가 ‘위안부’ 문제다. 일본의 극우세력은 일본 바깥 세계에서 여성인권이 얼마나 주요한 이슈로 다뤄지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일본이 위안부 문제를 부정하면 할수록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이미지는 나빠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애써 눈감고 있는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일본의 역사왜곡의 가장 상징적인 주제다. 일본은 나치 범죄를 끝까지 추적해 처벌하는 독일과 대조적이다. 물론 과거사를 자발적으로 반성하는 나라는 드물다. 미국도 베트남전의 양민학살에 대해 반성하지 않았다. 독일은 특수한 사례다. 국경을 맞댄 프랑스 등 주변국이나 나치 범죄를 적극 비판한 동독과의 관계 때문에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독일 정치인들은 나치에 대한 비판이 유럽에서 독일의 위상을 높이는 효과적 방법이라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았다. 하지만 일본은 전후 미국의 비호를 받았기 때문에 주변 국가에 신경 쓸 필요가 별로 없었다.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1927년 일본에서 태어난 대표적인 일본통인 김용운 교수 등 일각의 다음과 같은 제안은 용기 있고 나름대로 합리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대국적 견지에서 일본 체면도 살려주고 한국인의 정서도 감안하면서 일본에 외교적 압박을 가하기 위해 주한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을 다른 공원 등에 옮기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

1990년 중반 총리를 지낸 이수성 전 서울대 총장의 다음과 같은 주장은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한 비유 가운데 가장 압권이 아닌가 한다.

“독도문제와 관련한 일본 주장에 대해선 이렇게 말하면 된다. ‘차라리 대한민국 전체를 당신들 땅이라고 우겨라.’ 중국에서 만주사변을 일으켜 지배하던 일본이 중국땅도 모두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다름 없는 것이다. 독도는 엄연히 역사적으로나 실체적으로 한국 땅인데 이를 자기네 영토라고 하는데 대해선 강경 대응해야 한다. 최근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일본의 억지주장도 결코 정당하지 않은 것이다.”
중국의 역사왜곡은 동북공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조금 오래된 일이지만, 세계일보는 2012년 6월 14일자로 다음과 같은 기사를 보도했다. “중국이 지난 5일 길이를 늘여 발표한 장성(長城, 만리장성) 유적에 고구려 천리장성(千里長城)과 발해 장성인 목단강변장(牡丹江邊墻)이 포함된 사실이 중국 국가문물국 문건에서 확인됐다. 중국은 ‘장성보호공정(長城保護工程)’으로 명명한 장성 프로젝트를 2015년까지 마무리하기로 한 사실도 새롭게 드러났다.”

세계일보가 당시 입수한 중국 국가문물국(우리나라의 문화재청에 해당), 지린·헤이룽장성 정부와 각 성 산하 문물관리국 등의 문건에 따르면 총 길이를 늘여 발표한 장성 유적에는 지린성에 있는 천리장성과 노변강토장성(老邊崗土長城), 헤이룽장성에 있는 목단강변장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중국 정부의 공식 문건에서 중국 장성에 고구려·발해 장성을 포함한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지린성에서 공식 확인된 고구려·발해 장성은 7세기에 축조된 천리장성의 일부로 여겨지는 노변강토장성 외에 연변지구장성, 퉁화(通化)의 한(漢)장성 등 모두 3곳이다. 헤이룽장성에서는 국내 학계가 발해 장성으로 파악하고 있는 목단강변장 외에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 때의 금대장성(金代長城)도 포함되어 있다.

중국은 고구려·발해 장성을 모두 ‘중국의 장성’에 포함시키는 작업을 2000년대 들어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다. 이른바 ‘동북공정’ 연장선상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이들 장성 지역을 중국의 고유영역으로 만들기 위해 추진하는 대표적인 중국판 역사왜곡 프로젝트인 것이다.

이같은 일련의 중국 측 움직임은 중국이 자국 영토의 범위를 확장하려는 외교적 압박의 사전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특히 동북공정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북한과도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인들은 백두산을 오를 때 중국을 통해 가야 한다. 북한이 우리 겨레의 영지를 맥없이 중국에 넘겨 버린 때문이다. 북한이 중국의 ‘동북 4성’ 중 하나가 되지 않도록 한국이 나서야 하는 이유도 바로 동북공정 왜곡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과제의 하나가 되고 있다.

앞서 이수성 전 총리의 동북공정에 대한 입장을 다시 들어보자, 이 전 총리는 동북공정에 대해 자신의 역사인식에 근거해 분명한 입장을 제시했다. “만주지역이 고구려와 발해 영토였으나 1천년 전 신라가 당나라를 끌어들이는 바람에 중국에 내주게 됐다. 그 이후 거기 정착한 고구려 유민과 발해 유민 대부분이 중국화했다. 그래서 중국이 그곳을 자신들의 역사라고 주장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중국이 주변국 일부 영토에 대해서도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는 건 적절치 않다.”

이와 관련해 작년 여름 생각할 만한 일이 벌어졌다. 한류스타 전지현과 김수현이 중국 생수 광고 모델에 발탁되고 스스로 이를 포기한 것이다. 이들은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인기를 타고 중국 헝다그룹이 세계 생수시장 공략을 위해 야심차게 내놓은 백두산(중국명 창바이산) 광천수 헝다빙촨(恒大氷泉)의 광고 모델로 뽑혀 중국과 한국에서 촬영을 마쳤다. 전지현이 중국에서 촬영한 광고는 세계적인 감독 첸카이거가 연출했다.

그런데 생수가 ‘동북공정논란’의 중심에 서면서 이들은 사과의 뜻을 밝히고 계약해지를 한 것이다. 헝다빙촨 생수병에 원산지 표기가 백두산의 중국명인 ‘창바이산’(長白山)으로 된 것을 일부에서 문제삼았기 때문이다. 칭바이산이란 명칭자체가 중국의 동북공정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후 촬영까지 마친 상태인데다 당시 광고 모델 계약금이 업계 최고 대우인 1년 계약에 10억원선으로 알려져 소송 등을 우려해 광고는 결국 나갔지만, 이 사건이 우리 사회에 던진 메시지는 결코 작지 않았던 것이다. 일부에선 백두산 이름을 중국식으로 창바이산으로 하는 것이 문제될 게 없다는 주장도 한다.

하지만, 역사왜곡은 사소한 부분에서 점차 확대된다는 점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난 20여년의 중국과 일본의 역사왜곡사가 바로 산 증거이기 때문이다.

본 칼럼은 필자의 개인의견으로, 본지 및 동 기획보도 협찬 기관인 동북아역사재단의 견해와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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