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헌의 직필] 빅스 교수 “일 역사왜곡은 일왕 단죄 안한 탓”
일본 역사왜곡의 시작은 일왕을 단죄 안한 ‘도쿄 전범재판’이라는 허버트 빅스 교수 인터뷰가 나왔다. 미국의 일본역사 권위자인 빅스 교수는 하버드대 역사학 박사로 졸업 후 해군에 입대하여 일본에서 근무했고 일본 대학에서도 오래 강의했다.
그것을 이제야 알았냐고 묻고 싶은데, 이는 미국인이 일본을 알고 있는 수준이 이 정도라는 것을 반증한다. 미군이 일본에 진주하였을 때 군정 책임자들의 일본에 대한 지식은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을 읽어본 수준에 불과했다. 우리 정부와 국민이 한·미·일 관계를 다룰 때는 이 역사와 현실을 잘 알아야 한다.
도쿄재판에서 미국이 히로히토 일왕을 기소하지 않은 이유는 연합군 사령관인 맥아더 장군이 히로히토를 적극 보호했기 때문이다. 맥아더는 전후 일본을 미국 통제 하에 두면서 조속히 안정시키기 위해 국가의 상징적인 국가 지도자가 필요했다. 그래서 면죄부를 줬고 이때부터 일본의 역사왜곡이 시작됐다. 일본 우익은 일왕에 대한 비판을 테러로 막아왔다.
일본은 나치 범죄를 끝까지 추적해 처벌하는 독일과 대조적이다. 과거사를 자발적으로 반성하는 나라는 없다. 미국은 베트남전의 양민학살에 대해 반성하지 않았다. 독일은 특수한 사례다. 국경을 맞댄 프랑스 등 주변국이나 나치 범죄를 적극 비판한 동독과의 관계 때문에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독일 정치인들은 나치에 대한 비판이 유럽에서 독일의 위상을 높이는 효과적 방법이라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았다. 하지만 일본은 전후 미국의 비호를 받았기 때문에 주변 국가에 신경 쓸 필요가 별로 없었다.
일본 우파가 위안부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한국과 중국, 동남아시아 여성들을 성노예로 만든 위안부 이슈가 일본의 극우 정치인에게 치명적 약점이기 때문이다. 일본이 재무장에 나서면 한국·중국 등 주변국이 가장 먼저 떠올릴 피해가 위안부 문제다. 하지만 일본의 극우세력은 지금 일본 바깥 세계에서 여성인권이 얼마나 주요한 이슈로 다뤄지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일본이 위안부 문제를 부정하면 할수록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이미지는 나빠질 수밖에 없다.
악화일로에 있는 한·중·일의 관계를 풀기 위해서는 일본의 반성이 선결되어야 한다. 일본이 반세기에 걸친 어두운 과거에서 빠져나와 전쟁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주변국과의 갈등은 해결될 수 없다. 국제적 협력을 통해 일본이 반성하도록 압박해야 한다.
우리부터 역사를 제대로 알고 있는지 반성해야 한다. 불과 40-50년 전의 현대사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아직 살아 있는데도 역사를 왜곡·과장·축소·은폐하는 일이 빈번한 마당에 일본의 현대사를 소상히 알고 있는 사람은 극히 적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우선 일본 전문가들도 분발해야 한다. 특히 일본에서 공부한 사람들은 빅스 교수와 같이 일본역사와 현실을 정확하고 냉철히 꿰뚫고 있는지를 항상 돌이켜 보아야 한다. 미국에서 이러한 반성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그러나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