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헌의 직필] ‘집권 3년차’의 지혜···”김기춘 실장부터 바꿔야”

엘리자베스 여왕과 대처 수상은 다같이 1927년생으로 동갑이다. 우아한 여왕과 사자 같은 수상은 성격은 물과 불처럼 달랐지만, 각자의 역할분담은 절묘했다. 여왕은 아버지와 같은 처칠이나 맥밀란과 같은 보수당 원로보다는 ‘철의 여인’ 대처에게는 긴장이 더 되겠지만 시종 정중하고 은은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매주 국정보고에서는 조용히 듣기만 하고 오랜 재위에서 갖고 있는 조언만 하였다.

지금까지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행태와 통치역량을 기정(旣定)으로 하고 보다 나은 정부 구성과 운영방법을 안출(案出)해보자. 박 대통령은 기자회견도 수줍어한다. 이래서는 대처와 같이 매주 국회에 나가 야당과 여론을 상대로 사자후와 같은 웅변으로 설득하고 논파하며,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는 정치를 하기는 어렵다. 그녀는 아버지와 같이 소주와 막걸리를 들이키며 기자, 정치인들과 대좌하지도 않는다. 혈육을 불러 정을 나누기도 어렵다. 간혹 어린 조카를 안아보는 데서 위안을 받을 뿐이다. 퇴근하면 알아보는 공관의 바둑이는 그저 바둑이일 뿐이다. 이 모두가 온 국민의 걱정거리다.

비서실장은 이러한 대통령이 푸근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인사를 골라야 한다. 청와대 비서실을 소 정부로 만들고 이들을 빈틈없이 통솔할 왕 실장을 고를 일이 아니다. 비서실은 국정총괄본부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국정을 통할하는 대통령의 비서다. 이를 혼동하여서는 안 된다. 비서실(staff)과 내각(line)의 기능과 역할을 분명히 하는 것이 통치술의 기본이다.

총리가 대통령의 분신(alter ego)이 되어서는 안 되며, 될 수도 없다. 총리를 고르는 것은 내각책임제 하에서 수상을 의회에서 선출하는 것과 같다는 엄중한 자세로 골라야 한다. 보수, 진보를 가릴 것 없다. 남과 여를 가릴 것 없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릴 것 없다. 연령도 불혹이면 된다. 이렇게 되면 대상은 훨씬 넓어질 것이다. 총리는 내각을 통할하는, 즉 참모장 역할을 수행하여야 되기 때문에 국정에 익숙해야 한다. 그래서 국무회의나 차관회의에서 국정 전반이 논의되는 것을 경험한 사람이 바람직하다. 법관, 교수 등 처음으로 국무회의에 참석하는 사람에게서는 이를 기대하기 어렵다. 김대중, 노무현 등 좌파정부 10년, 이명박 정부 5년 도합 15년간 지난 정부에서 등용되었던 인사는 제외하고서 대통령이 바라는, 마치 황희 정승 같은 인재를 구할 수 있을까?

장관은 한 분야(department)를 책임지며 그 분야에서 대통령의 대리(deputy)이다. 대통령과 장관 사이에는 대화(dialogue)가 오가야 된다. 어떻게 얼굴조차 마주치지 않는 비대면 보고로 숙성한(deliberate) 국정 구상과 추진, 조정과 확인이 가능할 것인가?

정치, 경제, 외교, 모두 상대가 있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인사는 오직 대통령의 재량(裁量)이다. 인사를 통하여 민심을 담은 대통령의 뜻이 나타난다. 역대 대통령이 국면전환용 개각으로 정국을 돌파하고 민심을 수람(收攬)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대통령의 인사가 발표될 때마다 어안이 벙벙하게 만드는 것(有口無言)은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인사가 반드시 필요한데 이를 외면하는 것은 국민을 우습게 아는 참람(僭濫)한 행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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