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헌의 직필]독일통일 주역 바이체커 대통령을 기리며

바이체커 전 독일 대통령이 별세했다. 그는 1985년 5월 8일 나치 패망 40주년 기념연설에서 “독일 국민도 나치의 등장에 책임이 있다”며 “과거에 눈감는 사람은 현재도 볼 수 없다”고 역설했다. 또 “독일인은 왜곡 없이 진실을 직시해야 한다”며“반성 없이는 화해도 없다”고 말했다. 이는 당시까지 나치 전범에 대한 일반 국민의 책임을 부정하던 독일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바이체커의 연설은 이후 독일에 과거를 바라보는 기준을 제시했다’고 평가하였다. 이는 독일을 바라보는 서방의 견해를 대변하였다고 할 수 있는데, 부시 대통령이 독일 통일에 적극적, 긍정적으로 돌아서는데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 분명하다.

통일 독일의 초대 대통령이 된?바이체커 대통령은 1990년 10월 3일 독일 통일을 선포하는 연설에서??“통합하는 것은 나눔을 배우는 것”이라면서 통일 후 서독 국민의 고통 분담을 요구했다.

그는 우파인 기독교민주당 소속이었지만, 1984~1994년 두 차례 대통령을 수행하며 국민통합을 이끌어 좌·우파 모두로부터 신망 받는 원로 정치인이었다. 바이체커는 통일 대통령이기도 했다. 1980년대 초 서베를린 시장을 지낼 때 동독 정치인과 교류하며 통일의 기반을 다졌다. 통일 베를린의 첫 시민, 통일 독일의 첫 대통령은 그의 몫이었다.

독일의 최고 지성인 중 하나로 꼽혔던 그는 독일인이 반성해야 할 철학적 근거를 제시하였다. 그는 ‘범죄는 개인적인 것이다’고 했다. 잘못은 추상적, 일반화된 독일 국민 전체가 아니라, 구체적, 개별적 개인의 책임이라고 규정지었다. 범죄자는 흔히 일반화의 가면에 숨는다.

우리는 성노예에 대해 잘 모르는 일본 국민 전체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 전체 등 뒤에 숨어 야료를 부리는 아베 등의 일부 철면피를 용서하지 못하는 것이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둘러싸고 일본 국민 전체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대동아전쟁에서 희생된 수많은 청년도 군국주의 침략전쟁의 피해자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비난하는 것이 이들을 추념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아베 등, 일부 우익은 교활하게 논점을 흐리고 있다. 일본의 과거 참회가 제대로 되려면 독일과 같이 철저한 도덕적 참회가 전제되어야 한다.

프랑코 사후 민주화를 진행하던 와중에 군부 쿠데타가 발생하였다. 카를로스 국왕은 지지를 요구하는 군부에 ‘나를 밟고 가려면 가라‘며 이를 단호히 거부, 국민들에게 정부를 지킬 것을 호소하여 스페인의 민주주의를 지켜내었다. 당시 수상이 얼마 전 별세한 수아레스다.

통일이라는 긴박한 드라마를 가능케 한 독일과 스페인 민주화의 역사는 내각제가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어떤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는가를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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