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헌의 직필] 정명훈을 위한 변명

마에스트로 정명훈의 재능과 세계적 명성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같은 음악의 본고장이 아니고 세계적 명성을 이룬 아시아인은 인도의 주빈 메터, 일본의 오자와 세이지 정도인데 정명훈은 이들과 겨루는 지휘자다. 그에 대한 투자는 보람이 있는 것이었다. 우리가 그를 가진 것은 자랑스럽다.

안타깝게도, 서울시향 음악감독으로서 정명훈에 대한 내외의 눈은 차가운 것 같다. 온 국민이 빈곤에 허덕이던 1950년대 여섯 살에 이미 시향과 협연을 하고, 줄리아드에서 공부한 것은 보통 사람으로 상상도 못할 혜택이었다. 대성한 그가 서울시향 음악감독으로 받은 보수는 변호사들이 전관예우로 받는 수십억과는 다르며, 어느 면에선 마땅한 것이다. 서울시에서 정명훈이 받은 보수와 대우에 대해서 감사를 하느니 뭐니 하는 것은, 그 자체로 안타깝다.

아쉬운 것은 정명훈이 이 막대한 보수와 대우를 후배들을 성원하는데 나눴다면 ‘음악인 마에스트로’ 정명훈은 ‘인간으로서도 마에스트로’가 되었을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밖에서 오래 자란 그가 한국사회의 관습과 상식에 익숙하지 못한 것도 안타깝다.

人之常情인지 모르나 우리 한국사람은 특히 사람이 한번 무너지면 아예 짓이겨버리는 습성이 있다. 하이에나와 같이 무리지어 뜯어먹는 것이다. ‘땅콩 회항’ 조현아에 대해서는 그렇다치자. 그러나 우리의 정명훈에 대해서는 갑남을녀처럼 꼬치꼬치 캐지 말고 예술가의 유별난 성향으로 받아들여주는 것은 어떨까?

베토벤은 악성이다. 특히 그의 아홉 교향곡은 인류에 대한 불후의 선물이다. 9번 운명교향곡을 초연할 때 그의 청력은 거의 제로였다. 작곡가로서 영예를 위하여 그가 지휘봉을 들었지만 그의 옆에는 실제 지휘하는 사람이 따로 있었다. 연주가 끝나고 청중들의 우레와 같은 기립박수가 쏟아지는 것도 몰랐던 그는 실제 지휘자가 뒤로 돌아서게 해서야 고개를 숙여 청중에 답하였다. 말년에 이르러 베토벤의 기행은 비서를 의심하고 내치는 정도에 이르렀다. 그러나 비엔나는 그를 포용했다. 베토벤의 장례는 국장으로 치러졌다.

우리가 정명훈에게서 취하는 것은 덕(德)이 아니라 재(才)다. 그러나 그가 그만큼 유별난 음악인들을 거느리는 음악감독으로 대성하기 위해서도 상식인으로서 균형을 갖추고 포용력을 갖추는 것은 필수다. 그는 개인 연주자가 아니라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있다. 리더는 才만이 아니라 德을 갖추어야 함은 동서고금에 일치한다. 우리는 이래서 한 차원 높은 음악인 정명훈을 갖고 싶다. 정명화, 정경화와 더불어 한국이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자랑스러운 음악가정을 만들어 나가는 것은 이들뿐이 아니라, 국민의 따뜻한 성원이 바탕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자.

각계에서 성장하고 있는 인재들을 어른스럽게 바라보면서 후원하는 사회를 이루어 나가자. 이것이 선진화된 사회이고 성숙한 사회다. 대통령도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것과 같다. 악기 하나하나를 점검하면서도 전체로서 조화를 이루게 해야 한다.모처럼 배출한 마에스트로를 포용하는 母胎가 되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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