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헌의 직필] 슈틸리케·정약용·히딩크의 닮은 점?···’실사구시’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조선에서 위대한 누구도 긍정할 인물을 봉정한다고 하면 세종대왕, 이순신과 더불어 정약용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남양주에 가면 정약용의 자취가 정리되어 있다. 강진에도 귀양 시절의 자취가 있다. <목민심서>, <경세유표>,<흠흠신서> 등 ‘1서 2표’는 대표적이다. 이황의 성리학도 절정을 이루었지만, 정약용은 가히 실학의 최고봉이다. 다산을 조선 최고 사회과학자라는 평가가 있는데 외국인들에게 정약용을 쉽게 소개하려면 간단히 ‘조선의 막스 베버’라고 하면 될 것이다. 실사구시, 경세치용, 이용후생을 추구하는 실학은 신유학이다. 한국 축구 대표팀 슈틸리케 감독을 정약용에 비정하는 발상이 반갑다. 그가 실리축구를 추구한다고 하니 얼핏 실학자 정약용이 떠오른 모양인데 어쨌든 스포츠와 실학자를 연계시키는 그 발상이 독특하고 가상하다.

히딩크, 그리운 이름이다. 히딩크의 지휘 아래 한국 축구는 월드컵에서 4강에 들었다. 스포츠에서 이같은 성취는 앞으로 좀처럼 없을 것이다. 김연아는 피겨 스케이팅에서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하였고 양궁도 세계를 제패하는 수훈을 세웠다. 그러나 열한명이 한 팀이 되어 다른 열한명과 싸우는 축구는 스케이팅이나 양궁 같은 개인의 기록경기와 다르다. 축구에서 감독은 수천, 수십만을 통솔하는 군의 지휘관과 같다. 작전의 성패는 결정적 시기와 장소에 예비대를 투입하는 지휘관의 판단과 결심에 달려 있다. 축구는 계속 움직인다. 타이밍이 결정적이다. 선수의 신임을 얻는 것이 결정적이다. “지금까지 해온 대로만 하라”는 것은 “준비된 대로 싸운다”는 것이고, 그 이상 작전의 흐름을 잡는 것은 감독이 책임지겠다는 것을 말한다.

슈틸리케를 영입하기까지 몇 번의 고비가 있었다. 그를 얻은 것은 한국축구로서는 행운이다. 히딩크와 슈틸리케는 새삼 “조직의 성패는 온전히 리더에 달려 있다”는 당연한 명제를 깨우쳐준다. 리더는, 국가에 있어서는 정치가이다. 그런데 축구감독은 수입할 수 있으나 정치가는 수입할 수 없다. 우리가 G20에는 들었으나 G7에 들지 못하고 선진국의 문턱에서 서성거리는 이유는 한마디로, 정치에 있다.

경제가 좀처럼 살아나지 못하고 있는 것도 기업가들의 적극적 투자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노사문제를 선순환적으로 풀지 못하는 3류정치에 책임이 큰데, 이것도 민주화의 과정에서 분출된 에너지를 정치적으로 편가르기 등으로 악용한 것에 기인하는 바 크다. “증세는 없고 복지는 높인다”는 터무니 없는 공약으로 기대만 높여 서민들의 불만만 높이게 만드는 포퓰리즘에 모두들 발목이 잡혀 있다. 국가가 책임져야 할 복지는 반드시 책임지되, 국가에 기대기에 앞서 개인의 자조정신을 높이는 대처와 같은 엄격한 경제·사회정책을 끌고 나갈 정치적 역량은 찾아보기 힘들다. 지금 우리는 저성장의 시대에 있다. 이제 박정희 시대의 고성장의 시대는 갔다. 국가·사회의 전 부면이 여기에 맞추어야 하고, 젊은 세대는 여기에 익숙해져야 한다.

지금 우리의 정치인, 기업인, 언론인들은 다산이 고민하던 문제와 해법을 궁구(窮究)해야 한다. 그가 국민의 어려움을 얼마나 세밀하게 살피고 실질적 대안을 제시하였던가를 보아야 한다. 세계문화유산 수원성은 정조 이산의 웅지를 다산 정약용이 뒷받침한 것이다. 수원성, 남양주 실학박물관, 강진 다산초당을 둘러보며 오늘의 실학을 구상하자. 온고지신은 다른 것이 아니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지 못하는, 아니 국민의 눈높이를 높이지 못하는 정치는 패악(悖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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