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 칼럼] “나는 내게 묻고 또 묻는다”
안시팀 코치 연수, 축구인생에 결정적 교훈 줘
다시 유월이 돌아왔다. 11년 전 이맘 때 한국과 일본을 후끈 달군 월드컵 열기가 아직도 생생하다. 월드컵 본선에 4회나 출전한 것도, 평생 스승 히딩크 감독을 만난 것도 크나큰 행운이다. 최근 K리그 30돌을 맞아 ‘전설의 11인’에 뽑힌 것도 과분하기만 하다.
지난 5개월 동안 러시아 안지 마하치칼라팀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작년 말 프로구단 감독을 마다하고 히딩크 감독의 부름을 받았을 때, 망설임이 전혀 없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결심하고 주문처럼 외웠다. “배우자. 배워야 한다. 배우지 않으면 제대로 나갈 수 없다.”
안지팀에 있는 동안 새벽부터 시작해 밤 늦게 끝나는 일과는 내게 알알이 보배와 같았다. 30년 이상 축구를 하면서 다섯 달이라는 ‘오랜 기간’ 체계적으로 공부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시즌엔 시합하고, 대표팀에 소집되면 다시 훈련하고, 쳇바퀴 도는 시간이었다.
축구는 과연 무엇이며, 왜 내가 축구를 하고, 내 인생에서 축구는 무엇인지, 그리고 축구공은 왜 둥글며 그라운드에는 왜 11명 만 들어갈 수 있는지…. 이런 생각을 해본 것이 그 언제이던가.
그런데 지난 5개월 내게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동료와 팬은 내게 어떤 존재이며, 감독과 코칭 스탭, 구단의 역할은 무엇인지?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물음을 내 자신에게 던질 수 있는 시간이었다. 감사하게 생각한다.
나는 히딩크 감독의 배려와 지도로 러시아리그와 함께 2012~2013 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리그를 경험했다. 유로파리그는 챔피언스리그 바로 아래 단계지만 수준이 보통이 아니다. 유로파리그를 통해 축구지도자 경험도 쌓을 수 있었다. 특히 독일과 잉글랜드 원정을 다니면서 선진 클럽의 팀 운영에 대해서도 많이 배웠다.
언젠가 산악인 엄홍길 대장과 이런 대화를 한 적이 있다. “대장님은 산에 오르며 대원들과 대화를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겠어요? 축구감독은 그라운드 안으로 들어갈 수 없어서 소통도 안 되고 답답할 때가 많아요.”
그런데 이번에 내 얘기가 절반쯤은 틀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경기장 밖에서도 얼마든지 그라운드의 선수들과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을. ‘이심전심’ 바로 그것이다. 거스 히딩크 감독은 그걸 일러주기 위해서 나를 안지팀에 부른 것 같다. 말보다 느낌과 행동으로 가르치고 배우는 게 진짜 교육이란 걸 내게 알려주려고 나를 부른 것 같다.
이제 곧 거취를 결정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선택을 피하거나 미루지 않을 것이다. 한국축구를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행복을 위해 무엇이 최선의 선택인지 내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을 것이다.
*이 글은 <매거진 N> 2013년 7월 창간호에 실린 칼럼입니다. 현재 홍명보 감독은 당시에 이어 두번째로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