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에게 듣다②>“어린 시절 약골, 피나는 기술훈련으로 극복했다”

아시아엔은 오는 11월11일 창간 3돌을 맞습니다. 그동안 독자들께서 보내주신 성원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아시아엔은 창간 1년만에 네이버와 검색제휴를 맺었습니다. 하지만 제휴 이전 기사는 검색되지 않고 있어, 그 이전 발행된 아시아엔 콘텐츠 가운데 일부를 다시 내기로 했습니다. 독자 여러분께 좋은 정보가 되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편집자>

축구는 좋아해야 잘한다. 유소년 축구 확대해야

우리나라 축구는 2002년 한일월드컵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이전에는 축구를 잘하는 한정된 선수들만을 집중적으로 키웠던 엘리트 축구였다면 이후는 축구를 생활 속에서 즐기다가 재능을 발휘해 선수가 되기도 하는 유소년 축구팀으로 변하고 있다. 그 현장을 중심에서 겪었던 홍 감독은 아직도 바뀌어야 할 게 많다고 말한다.

-축구 강국은 클럽 축구(유소년 축구)가 많다?
“영국은 클럽축구를 한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엘리트축구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지금까지 엘리트가 끌어온 것도 사실이다. 지금은 클럽에 대한 인식도 많이 변했고, 학부모나 아이들도 점차 바뀌어가고 있다.”

-축구를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다르지 않나.
“축구를 좋아하고 잘하는 아이들이 많다. 학원 감독들이 클럽에서 잘하는 애들을 뽑아 가기도 하는데, 그러면 더 좋은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것이다. 초등학교는 클럽이 좀 형성돼 있는데 중고등학교는 클럽이 없다. 고등학교에서 잘하는 선수들은 프로 팀밑에 있는 경우가 많다. 부모들도 축구를 시키려면 프로산하 팀으로 보내려고 하고, 그곳에서 스카우트 오는 걸 반가워한다.”

-엘리트 축구의 문제는 무엇인가.
“학원스포츠(학교 축구부) 감독들이 클럽(학교 외 축구부)에서 온 선수들을 배제시키는 면이 있다. 놀면서 하는 축구는 전문적으로 하는 선수들과 상대가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학교수업 끝나고 일주일에 두세 번 축구 하는 클럽 선수들에게 학원 축구가 때로는 질 수도 있는 건데 그걸 두려워하는 면도 있다. 그렇지만 요즘은 클럽 선수들과 학원 선수들이 함께 간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우리나라 축구가 더 발전하려면?
“한국은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 발전하고 있다. 프로축구의 경우 승부가 중요하다. 하지만 승부를 놓치지 않기 위해 다른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경우도 있다. 분야별로 전문화돼 있지 않고 성적위주로 평가를 받는 것이 내가 경험해 본 외국하고 차이가 난다. 모든 사람들의 의식이 다 바뀌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대표이사가 들어와도 직원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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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홍명보장학재단>

“축구 말라” 주변 만류에 오기로 버텨

홍명보 감독은 처음부터 축구 선수를 꿈꿔왔을까? 축구를 좋아했지만 포기할 뻔했다. 지금의 홍명보를 만든 것은 체구가 작았던 어린 시절의 콤플렉스를 극복한 의지였다.

-어떻게 축구를 하게 됐나?
“축구를 본격적으로 배운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이다. 학교에 축구부가 없다가 4학년 때 창단됐다. 점심때나 방과 후에 축구하며 놀았던 친구들이 다 축구부에 들어갔다. 그런데 난 못 들어갔다. 부모님이 반대했다. 공부도 잘하는 편이었고 운동이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축구하는 친구들이 부러워서 학원 가는 대신 축구하는 걸 구경만 했다. 1년 뒤인 5학년 때 축구부에 들어갔다.”

-처음부터 축구를 잘했나?
“중학교에 가서 심한 고통을 겪었다. 키가 아주 작았다. 초등학교 축구와 다르더라. 초등학교에서는 에이스라고 생각했는데 중학교에 가니까 체력이 필요하고 체격이 우선이 돼야 했다. 첫 번째 연습경기에서 내가 제외됐다. 자존심이 상해서 눈물이 나려고 했다. 중학교 2학년 때까지 계속 그랬다. ‘너는 축구는 잘하는데 몸이 너무 약해’ 그런 말을 듣는 아이였다.”

-축구에 적합하지 않은 몸?
“중학생 당시 효창운동장에서 축구를 했는데, 부모님이 찾아와서 경기를 보다가 주위에서 ‘저 아이는 너무 작다’ 이런 얘기를 들으셨다고 했다. 하지만 내게 속상하다는 얘기는 하지 않으셨다. 또 경기 중에 누가 툭 밀어서 넘어졌는데 쇄골이 부러져서 한 달 간 학교에 못나간 적이 있다. 그 정도로 몸이 약했다. 담임교사가 부모 면담을 하면서 ‘몸도 너무 약하고 공부도 잘하고 있으니 축구를 그만 시켜라’고 얘기하는 것을 들었다. 그때 바로 ‘아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축구를 한 번 해봐야겠구나’ 하는 오기가 생겼다.”

-약한 몸을 어떻게 극복했나.
“주위에서 다들 안 된다고만 했다. 키가 안 크고 체격이 안 되는 건 나의 의지하고는 상관없었다. 그래서 다른 애들이 체력훈련하고 그럴 때 나는 기술훈련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그게 나중에 성인이 돼서 국가대표로 은퇴할 때까지 나의 가장 큰 무기가 됐다. 신체야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적으로 해결되는 거지만 기술은 어렸을 때 익히지 않으면 안 되는 거였다. 몸이 약하니까 다른 사람들하고 똑같이 뛸 수는 없지만 그 시간에 기술훈련을 할 수 있었던 게 무기였다.”?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는 ‘받은 것 돌려주는 일’

어린 홍명보는 시련을 극복하고 국가대표 선수가 됐고, 한일월드컵에서 주장으로서 활약을 펼치며 대한민국 역사 사상 첫 월드컵 4강 진출 쾌거를 이뤄냈다. 이제 올림픽대표팀을 이끄는 사령관으로서 올림픽 진출의 꿈을 꾸고 있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축구 감독을 10년 하겠나? 못한다. 내 인생의 마지막까지 할 일은 장학재단을 통해서 사회활동을 하는 것이다. 장학재단을 만든 것은 2002년 월드컵이 계기가 됐다. 월드컵 현장에 있었고 더군다나 주장이었는데, 축구를 모르는 사람들도 와서 성원해주는 것을 보고, 축구를 끝내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내 가진 걸 사회에 환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홍 감독은 스포츠 분야 뿐 아니라 기부 활동에 있어서도 단연 국가대표급이다. ‘홍명보장학재단’은 2002년부터 전국의 중고교 축구선수 중 장학생을 선발해 장학금을 수여하고 있다. 지금까지 홍 감독이 사회에 기부한 액수는 15억 원이 넘는다. 기부에 대한 철학을 물었다.

“기부에 대해 계획을 세워놓고 있지는 않다. 기회가 된다면 할 수 있는 것이다. 받는 즐거움도 있겠지만 도와주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재단을 통해 사회에 환원하는 일을 하는 것이 스포츠인 중에서는 1세대에 속하는데 다른 선수들이 함께 하는 걸 보면 뿌듯하다.”

이러한 나눔의 정신은 자식들에게도 그대로 전해지고 있다. 선수들을 지휘하는 홍 감독은 자식을 어떻게 가르칠까.

‘아들이 축구하면 말리고 싶어, 관계자들 부담주고 싶지 않아’

-아들과 함께 축구하는 아버지인가?
“초등학교 5학년인 둘째 아들이 ‘방과 후 축구교실’을 하는데, 토요일에 아빠와 함께 하는 시간이 있다고 해서 나갔다. 아들이 처음에는 ‘나와서 망신당하지 말고 축구 연습하고 나오라’고 하더라(웃음). 교육청에 축구로 ‘재능기부’ 등록이 돼 있다. 아빠와 아이 10명씩 왔었는데 아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자식 교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나?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을 잘하지 못했다. 성격도 그렇다. 외국에서 살아본 경험이 없었다면 그렇게(아들과 축구) 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혼하자마자 2개월 있다가 일본으로 이적했고 아이들이 7~8살까지 외국에서 같이 살았다. 친구도 친척도 없이 가족밖에 없었다. 미국에서 아침에 아이들 학교 데려다주고 그러면서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이 몸에 많이 뱄다. 사회생활이 아무리 중요해도 아이들이 필요하다고 하면 참여한다.”

-아이들에게 나눔을 가르친다.
“아이들이 신문에서 내가 다른 사람에게 기부했다는 것을 보고는 ‘왜 다른 사람에게는 주면서 나는 뭘 안 사주냐’고 하더라. ‘너는 이걸 갖지 않아도 다른 걸 갖고 있기 때문에 괜찮아. 지금도 충분해’라고 했다. 방앗간을 하셨던 아버지는 어릴 때 항상 친구들과 나눠먹으라고 가르치셨다. 또 그렇게 갖고 싶던 자전거도 끝내 사주지 않으셨다. 꼭 그 영향인지는 몰라도 아이들에게도 무의식적으로 나눔을 가르치게 된다.”

-아이들이 축구 선수를 한다고 한다면?
“축구를 한다면 말릴 수는 없지만 선수를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내 아이가 축구 선수를 한다면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 공부를 하거나 음악을 하거나 미술을 하더라도 다 뒷받침해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축구를 한 입장에서 아이가 축구 선수를 하겠다면 나를 아는 축구 관계자들은 신경이 쓰일 텐데 그들 모두를 부담스럽게 하고 싶지는 않다.”

-아이들 교육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이들이 성적이 안 나오거나 이런 것은 전혀 문제가 안 된다. 내가 아이들을 호되게 혼내는 것은 거짓말을 했을 때다.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정직을 배워야 한다. 요즘 학부모들은 ‘내 자식이 최고다’ 그러는데, 아이들이 잘못한 것과 잘한 것을 명확하게 구분해서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늘의 마지막 질문, 이제 시작하는 AsiaN에게 보내는 메시지?
“모두가 내 일같이 즐겁게 하면 절대 망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