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에게 듣다①> “한국축구, 뛰는 것보다 보는 게 중요”

아시아엔은 오는 11월11일 창간 3돌을 맞아 독자들께서 보내주신 성원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아시아엔은 창간 1년만에 네이버와 검색제휴를 맺었습니다. 하지만 제휴 이전 기사는 검색되지 않고 있어, 그 이전에 발행된 아시아엔 콘텐츠 가운데 일부를 다시 내기로 했습니다.?독자 여러분께 좋은 정보가 되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편집자>?

<사진=홍명보장학재단>

2002년 한일월드컵 때 명승부차기로 한국의 4강행을 결정지었던 대표팀 주장 홍명보.

그가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10년 전 신화를 재현하기 위해 대한민국 올림픽대표팀 감독으로 나섰다. 그는 월드컵 무대에 4회 연속 올랐지만 선수로서 올림픽 본선에는 한 번도 출전하지 못했다. 홍 감독은 “최고와 최선 중에서 선택한다면 최선”이라고 했다. 그는 그러나 “결과로 평가받는 승부세계에서 실패하고 싶지는 않다”고도 했다. 홍명보 감독은 선수들에게 영화를 보여주는가 하면 “뛰지만 말고 주위를 둘러보면서 경기에 임하라”고 말한다.

홍 감독의 리더십을 듣기 위해 11월1일 저녁 민어회로 제법 유명한 서초동 유선식당에서 만났다. 인터뷰는 AsiaN 이상기 대표와 차재준 이사, 민경찬 부국장, 이상현 부장 등이 동석하며 방담형식으로 진행됐다. 밤 10시께 엄홍길 대장이 합류하면서 인근 카페로 옮겨 새벽 1시30분 무렵 끝났다. 홍 감독은 감기 기운이 심하다며 음주는 자제했다. AsiaN은 창간특집으로 홍 감독 인터뷰를 2번에 나눠 싣는다.

선수들 시야·소통 넓혀 효과적 움직임 이끄는 게 내 리더십

-올림픽 예선전을 치르고 있는데 각오는.
“올림픽에 나가기까지 과정이 쉽지 않지만 주어진 목표이므로 이 일을 잘 완수하고 싶은 마음이다. 결과가 좋지 않으면 그 안에 있었던 과정도 모두 좋지 않은 걸로 평가받게 된다. 모든 것을 결과로만 평가받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있지만 우리 사회는 실패를 허용하지 않는 사회이고, 그 안에 나도 있다. 만일 실패를 하더라도 ‘정말 후회없이 했다’고 생각하고 싶다.”

-감독으로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감독이 선수들에게 ‘이렇게 저렇게 해라’ 하면 선수들의 생각은 바꿀 수 있다. 하지만 진짜 훌륭한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마음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마음을 바꾼다는 것은 굉장히 힘든 거다. 그것을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선수들의 마음을 어떻게 바꾸나.
“그동안 선수들이 해오지 않았던 것들, 무언가 갖고 있는 스트레스, 이런 것들을 자꾸 끌어내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커뮤니케이션이다. 감독이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주제를 주고 선수들의 서로 다른 생각들을 많이 끌어 모은다. 선수들이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새로운 경험일 수 있다.”

홍 감독은 선수들을 부를 때 ‘야’ ‘너’ 같은 반말 대신 ‘여러분’ 따위 표현을 되도록 쓴다고 했다.

-운동선수들은 거칠게 다뤄질 것이라는 이미지가 있는데, 홍 감독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이런 건 어디서 배워온 것인가?
“국가대표팀 코치를 하면서 외국인 지도자들한테 배웠다. 그들은 선수들에 대해 신경을 많이 쓰고 존중해준다. 선수들이 무슨 문제가 있는지 사소한 것까지 논의한다. 그냥 우리는 감독이 ‘하라면 해’ 이렇게 들어 왔는데, 하다못해 아침에 일어나서 누군가 눈이 빨간 것을 보면 ‘어제 잠을 못잤냐’, ‘집안에 무슨 문제가 있냐’ 이렇게 얘기하는 것을 보고 많이 배웠다.”

‘우리처럼 뛰면 이기지 못할 팀 없어’, 그러나 그렇게 뛰니까 지는 것

-의사소통을 하면 관계는 좋아지겠지만 실력과도 연결이 되나?
“당연하다. 제일 중요한 것은 실력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실력을 향상시키면서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부분까지 주다보니 더 큰 효과를 나타낼 수 있었던 것 같다. 훈련 자체도 그동안 해오지 않은 방법을 사용했다. 이전에는 ‘뛰어, 더 많이 뛰어’ 했는데 나는 ‘더 많이 뛰지 말고 눈으로 좀 봐봐’, ‘시야를 좀 넓혀봐’ 그렇게 얘기했다.”

-더 많이 뛰지 말라는 감독도 있나?
“외국인 감독이 그러더라. ‘한국선수들은 불필요하게 너무 많이 뛴다. 뛰지 말아야 할 때도 뛴다’라고. 우리는 월드컵같은 경기에 나가기 전에 훈련을 어마어마하게 한다. 한 달은 매일 운동장을 뛰는 건데, 그 정도의 훈련량이면 다른 나라는 우리나라를 이길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항상 체력저하가 문제로 지적이 된다. 왜 후반 15분만 되면 우리는 못 뛰고 그때 골을 먹고 그러는가. 불필요한 움직임이 너무 많다는 거다. 경기 중에 효과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뛰지 않고 무엇을 보아야 하나?
“선수들에게 뛰지 말라고 가르치니까 나보고 이상한 감독이라고 하더라. 이런 감독이 어디 있냐고. 지금까진 그냥 뛰기만 하면 감독한테 칭찬을 들었는데, 안 뛰면 뭘 해야 하냐고. 감독한테 칭찬 들으려면 뭘 해야 하냐고 해서 ‘봐야 한다’고 했다. 정확하게 보고 정확하게 판단을 해야 한다. 내가 원하는 것은 그런 거다.”

-개인기랑 팀워크랑 어디에 더 비중을 두나?
“기본적으로 팀워크에 비중을 많이 둔다. 지금 우리 사회에 소통이 가장 큰 화두인데, 외국에 살 때 보니 그들은 커뮤니케이션이 당연한 거였다. 우리는 지금도 그걸 못하고 있다. 아랫사람이 윗사람한테 얘기 못하고 이런 게 답답했다. 싫고 좋고의 문제가 아니라 일을 하는데 있어 소통이 안 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아직도 소통이 화두라는 것이 답답한 면이 있다.”

경기 중 감독역할은 선수교체와 책임질 일 뿐

홍 감독은 지난 2008년 엄홍길 산악대장과 함께 당시 11살이던 아들을 데리고 4100m 에베레스트에 오른 적이 있다. 대표팀 감독으로서 소통의 리더십을 얘기한 그는 엄 대장의 리더십을 예로 들었다.

“엄홍길 대장은 산에 올라갈 때부터 내려올 때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확인하고 이끌어온다. 이게 됐는지 안됐는지 꼼꼼히 체크한다. 축구감독은 그렇지 않다. 제일 중요한 순간에 축구감독은 힘이 없다. 경기에 나갔을 때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선수교체밖에 없다. 엄 대장 같은 경우 하산 50m가 남았을 때 더욱 집중해서 대원들을 끌고 내려온다. 대원들도 대장을 보고 내려온다. 축구는 아무리 연습을 길게 해도 시합에 들어가면, 감독이 누가 어떻다고 아무리 떠들어도 관중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는다. 전반전이 끝나고 15분 쉬는 시간에 얘기하는 것이 전부다. 제일 중요한 순간에 감독의 역할은 없다.”

홍 감독은 정작 실전에서 감독은 하는 일이 없다고 했지만 감독이 정말로 중요한 순간이 있었다. 그것은 경기에 나가지 않는 선수들을 관리하는 일이었다. 감독의 리더십이 비로소 발휘되는 순간이다.

“시합 전에 훈련이 잘 돼야 한다. 시합 당시 감독이 역할을 안 해도 선수들이 스스로 알아서 잘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감독은 책임만 있다. 특히 졌을 때 책임을 지는 것이다. 평소 연습에서 감독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선수가 20명이 넘는데 똑같지 않다. 잘하는 사람도 있고 못하는 사람도 있다. 여자친구 문제 있는 사람, 가정에 문제 있는 사람, 이런 것들을 하나로 모은다는 것이 힘든 거다. 선수 중 경기에 나가는 11명은 신경 쓰지 않는다. 그들은 경기에 나가니 본인이 컨디션을 조절하면 되는데, 내가 가장 민감한 건 경기에 못나가는 나머지 10여 명이다. 이들은 내가 굉장히 특별하게 신경 쓴다. 이들이 팀 분위기를 망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출전 못하고 벤치 지키는 선수부터 챙겨라

-경기에 나가지 않는 선수를 챙겨야 할 이유는 뭔가?
“2002년 월드컵 당시 주장이었는데 당연히 경기에 나갈 줄 알았던 선수가 나가지 않자 팀 분위기가 충격적이었다. 23명 모두 잘하는 선수들인데, 경기에서 뛰는 선수들만 언론에서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주장으로서 힘들었다. 그래서 밥 먹을 때 경기에 못 뛰는 선수들 불러서 내 앞에서 먹게 하고, 불만 들어주고, 해결해줄 수 있는 것은 해결해주고,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은 코치한테 얘기해줬다. 그러니까 이들이 ‘내가 이 집단에서 떨어져 있는 선수가 아니고 내가 일원이구나’ 하는 거다. 그때 배웠다. 선수들이 자존심이 세서 ‘너만 올라가? 오늘 경기에서 떨어져도 상관없다’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 걸 묶을 수 있는 게 감독이다. 감독의 역할은 굉장히 중요하다. 내리 지다가 어느 날 감독이 바뀌어서 이기기도 하는 것이 바로 감독의 역할이다.”

홍 감독은 선수들을 풀어줘야 할 때를 잘 안다. 이를 테면 해외로 훈련을 떠나기 전날 이전 여느 감독과는 달리 운동을 하루 쉰다. 마지막 날 부상이라도 당하면 그동안의 훈련이 모두 헛수고가 되기 때문이다. 훈련 전날 영화를 보여준 적도 있다. 처음에는 선수들이 이해를 못했지만 ‘국가대표’ 영화를 보며 선수들은 즐거워했다.

-우리 사회 리더들에게 필요한 소양은 무엇일까?
“리더라는 것은 이론이 아닌 현장의 경험이 중요하다. 감동이 있어야 한다. 엄홍길 대장의 경우 어려운 상황에서 이겨내는 리더십이 있다. 리더는 솔선수범해야 한다”

-솔선수범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닐 것 같다.
“맞다. 감독이 먼저 해버리면 선수나 코치들이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스무 살짜리 선수들을 처음 만났을 때 시범을 보이지는 않는다. 선수가 패스를 했는데 실수를 했다고 하자. 멈춰서 ‘왜 패스미스 했냐, 이쪽으로 해봐’ 하면서 직접 시범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감독이 완벽하게 시범을 보였을 때 선수가 받아들이는 느낌이 있을 거다. 그래서 시범을 잘 안 보인다. 지금은 나도 운동을 안 한지 오래됐기 때문에 시범을 보여도 실수가 많이 나오니깐 상관없을 지도 모르겠다(웃음). 이제 그들은 잘하고 나는 퇴보하는 셈이다.”

‘베스트 11’은 없다, 단지 선발출장한 것 뿐

홍 감독은 선수들이 기를 펼 수 있도록 돕는다. 선수들이 주눅들까봐 시범도 보이지 않고 대외적으로 선수들에 대해 평가하지도 않는다.

-감독이 선수들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다?
“감독으로서 절대적인 철학은 언론에 우리 선수들에 대해 평가하지 않는 것이다. 선수들이 감독 인터뷰에 굉장히 민감하다. 그 선수들도 보겠지만 다른 선수들도 본다. 그러면 똑같은 포지션에 있는 선수는 감독의 평가에 따라 실망감을 가질 수 있고 기쁨을 가질 수도 있다.”

-그래서 베스트11을 미리 보여주지 않는 것인가.
“‘All for One, One for All'(하나를 위한 모두, 모두를 위한 하나)은 우리 팀의 운용 원칙이다. 국가대표팀과 올림픽대표 선수들은 성격이 다르다. 팀이 첫 훈련을 할 때 베스트 선수들을 공개하는데, 나는 공개하지 않는다. 선수가 바뀌고 또 바뀌는 거다. 우리 팀에서 ‘베스트 11’이란 말은 쓰지 않는다. 선발출장은 있지만 베스트11은 없다. 다만 오늘 먼저 나가는 거다. 팀을 위한 하나의 퍼즐을 계속 맞춰 나가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