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션 한국사 ④] ‘동해영웅 이사부’ 독도 지켜낸 민족 히어로 부활
<동북아역사재단-아시아엔(The AsiaN) 공동기획>
존 로널드 톨킨(Tolkien)이 쓴 <반지의 제왕>은 북유럽에서 민간에 전해지는 옛 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인간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계와 다른 존재들을 창조해낸 현대 판타지 소설의 바이블로 통한다. 민간에 전해지는 신화나 아득한 역사기록은 소설가의 상상력을 자극하면서 위대한 창작물로 재탄생하곤 하는 가장 화려한 소재다.
나의 첫 장편소설 <동해영웅 이사부>는 신라장수 이사부의 우산국 점령역사를 전면적으로 다룬 소설이다. 이 소설 역시 역사책에 비친 단 몇 줄의 기록에 근거해 창작된 작품이다.
이 소설을 쓰기 시작한 첫 번째 동기는 ‘독도’를 놓고 끊임없이 도발을 해오는 일본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이었다.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며 한도 끝도 없이 도발하는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보면서 정말 답답했다. 일본이 도발을 할 적마다 연례행사 치르듯 궐기대회나 규탄대회를 열고, 혈서를 쓰며 분노를 한두 차례 표출하면 그뿐, ‘조용한 외교’ 방침에 밀려 그냥 묻고 지나가 버리고 마는 우리의 현실은 더욱 안타까웠다.
그러다가 문득, 일본의 전략이 무엇인지를 헤아리게 되었다. 저들은 한사코 일본 어린이들에게 ‘다케시마(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가르치려고 한다. 저들의 집요한 음모가 2세, 3세들의 뇌리에 거짓의 씨앗을 심어 야욕을 대물림하려는 것임을 알게 된 것이다.
그 무서운 깨달음이 이 소설을 시작하게 했다. 소설을 통해 국민들에게 독도가 왜 우리 땅인지를 알게 하고 신념으로 이끌어가는 일을 유도하겠다는 생각이었다. 문화예술은 진실을 신념으로 인도하는 가장 강력한 기제임을 나는 굳게 믿는다.
‘다케시마는 일본 땅’ 집요한 영토 야욕 분쇄
두 번째 동기는 우산국 정벌과 관련한 역사기록이 갖고 있는 판타지로서의 매력이었다. 고려시대 김부식(金富軾)이 편찬한 <삼국사기>(1145)의 <신라본기>와 일연(一然)이 쓴 <삼국유사>(1231)의 기록은 간단하다.
삼국사기의 내용은 이렇다. -우산국은 명주의 정 동쪽 바다에 있는 섬인데, 울릉도라고도 한다. 지방은 1백 리인데, 그들은 지세가 험한 것을 믿고 항복하지 않았었다. 하슬라주 군주 이사부는 “우산 사람들이 우둔하고도 사나우므로, 위세로 다루기는 어려우며, 계략으로 항복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곧 나무로 허수아비 사자를 만들어 병선에 나누어 싣고, 우산국의 해안에 도착하였다. 이사부는 거짓말로 “너희들이 만약 항복하지 않는다면 이 맹수를 풀어 너희들을 밟아 죽이도록 하겠다.”고 말하였다. 우산국의 백성들이 두려워하여 곧 항복하였다.-
창작과정은 녹록치 않았다. 충분하지 않은 역사기록을 보완하기 위해 이사부가 활약했던 시대의 전후 삼국의 고대사, 왜국과의 마찰기록 등에 대한 역사공부를 시작했다. 아울러 현지답사를 통해 동해안과 울릉도 현지에 구전돼 내려오는 전설들을 폭넓게 채집했다. 남은 것은 작가적 상상력 발휘였다. 꼬박 10년이 걸렸다.
소설은 통견원문술(通見遠聞術/멀리서도 보고 듣는 신통력)을 쓰는 이사부와, 교령술(交靈術/외부의 귀신이나 정령, 동물 등과 영적으로 의사소통을 하거나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는 능력)을 구사하는 우해의 대결구도로 펼쳐진다. 지장(智將)으로서 적을 속이는 위계에 능한 이사부와, 대마도 정벌에 나서 도주(島主)의 항복을 받아내어 셋째 딸을 데리고 와서 왕비를 삼았다는 걸출한 장수 우해의 캐릭터를 떠받치기 위한 설정이었다.
목우사자는 그냥 나무조각품이 아니라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처럼 불을 토하는 모습을 보이는 병장기로 만들었다. 적어도 그 정도는 돼야, 울릉도 사람들이 나무로 깎은 사자를 보고 겁이 나서 항복했다는 다소 황당한 역사에 설득력이 더해지지 않겠느냐는 유추가 작용했다.
짧은 역사기록 보완 위해 전설채집, 상상력 가미
이사부의 애인으로 등장한, 해변 마을 산단화(山茶花)라는 처녀가 육지로 침투했던 우해에게 잡혀가면서 소설은 초반부터 긴장국면으로 치닫는다. 소설 말미에 독도(우산도) 동섬 꼭대기에서 왜인무사들의 칼을 맞아 처참하게 절명하는 산단화의 모습은 이 소설의 클라이맥스이자 작가가 만들어낸 가장 화려한 허구다.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구호를 천만 번 외치는 것보다 더 깊은 잔영을 남기고 싶었다.
역사에 아주 없는 것을 쓰지도 않으면서, 숭숭 구멍 난 기록들을 작가의 무궁한 상상력으로 꽉꽉 채워 넣는다는 차원에서 역사소설은 아주 훌륭한 팩션(Faction) 창작물이다.
<동해영웅 이사부>는 출간 이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로 선정된 데 이어, 2015년 광복 70주년 기념공연을 목표로 오페라가 만들어지고 있다. 일본이 ‘동해’를 ‘동해’라 부르지 않고 독도에 대한 침탈 흉계를 완전히 내려놓지 않는 한, 이사부는 나의 영원한 숙제다. 아니, 그는 우리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영원한 히어로다.
간혹, <동해영웅 이사부>에 살짝 가미된 판타지 요소들을 문제 삼는 일부 독자들에게 나는 묻는다. 톨킨(Tolkien)이 쓴 황당한 ‘반지의 제왕’ 스토리는 아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면서 굳이 우리 전설 속에서 찾아낸 씨앗을 싹 틔워낸 작은 토종 픽션에 갸우뚱하는 그 가치관이 참 이상하지 않느냐고. 어쩌면 그런 이중적 잣대야 말로 천박한 문화사대주의의 서글픈 잔영 아니겠느냐고···.
어릴 적 할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 듣던 그 많던 신기한 이야기들이야말로 21세기 대한민국의 문화융성을 위한 가장 위대한 자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