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션 한국사 ②] ‘역린’ 시원한 리더십 갈구 민초들 대리만족

<동북아역사재단-아시아엔(The AsiaN) 공동기획>

재위 기간만 51년에 이르는 조선 최장수(83세) 국왕 영조. 자신의 생모가 천민인 무수리 출신이라는 피할 수 없는 콤플렉스를 안고 있다. 숙종의 총애를 받은 숙빈 최씨(영조의 어머니)는 엄격한 심사과정을 통해 뽑힌 궁녀 출신이 아니었다. 숙종 집권기, 양대 붕당 중 하나인 소론은 왕세자(경종, 재위 4년만에 병사)를 밀었고 노론은 숙빈 최씨 소생 왕세제 연잉군(영조)에게 베팅했다. 결과는 노론의 승리.

조선 후기 ‘파워군주’ 영조는 출발부터 노론의 울타리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노론은 호가호위하며 권력을 누렸고, 소론과 친한 사도세자를 눈엣가시로 여겼다. 때마침 사도세자의 살인을 서슴지 않는 일탈과 기행은 노론의 “왕위계승 불가”주장을 뒷받침했다. 결국 사도세자는 삼복더위 뒤주에 갇혀 9일 만에 죽는다.(임오화변, 1762년 영조38년) 이 참극의 현장을 목격한 세손(정조,1752~1800)은 숨죽인 듯 은인자중하며 세손 수업을 받는다. 1776년 영조 승하 25세 때 조선 22대 국왕에 즉위한다.

(( 잠깐, 조선의 붕당정치를 살펴보자. 붕당(朋黨)이라 함은 학문적 · 정치적으로 뜻을 같이 하는 사림 계파. 선조 시대 이후 훈구파를 몰아내고 정권을 잡은 사림파들이 훈구에 대한 처리를 놓고 온건파와 강경파로 나뉜다. 온건파는 서인으로, 강경파는 동인으로 분리된다. 최초의 집권파는 동인. 동인은 다시 서인에 대해 온건한 남인과 강경한 북인으로 갈라진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북인이 정권을 장악했다. 인조반정 이후 서인이 정권을 장악하자, 남인이 이를 견제하는 양상으로 전개된다.

숙종 시대 당파논쟁을 거치며 서인이 주도권을 잡았고 남인을 가혹하게 탄압한다. 서인은 다시 남인 처분을 놓고 강경파인 노론과 온건파인 소론으로 분열된다. 처음에는 소론이 정권을 잡았으나, 영조가 즉위하며 노론이 우세해졌다. 노론의 권력은 점차 국왕 영조도 능가할 정도였다. 사도 세자는 이러한 노론을 견제하고자 소론과 친밀히 지냈으나 결국 노론에게 제거 당한다. 이후 노론은 다시 사도 세자를 동정하는 시파와 이를 무시한 벽파로 나뉘었는데, 벽파가 정권을 잡는다. ))

영화 <역린>속 정조(현빈 분)와 정순왕후(한지민 분) <사진= 뉴시스>

기득권층, 개혁군주 시해 시도 시시각각 추적

이 즈음 주목해야할 인물이 있다. 영조 정비 정성왕후가 죽자 1759년(영조35년) 15세 소녀로 51세 연상인 영조와 결혼하여 왕비로 책봉된 정순왕후(貞純王后, 1745~1805)다. 친정이 노론의 중심가문 경주 김 씨였고, 사도세자 내외가 어머니뻘되는 자기보다 10세 연상인 데서 빚어지는 갈등 때문에 영조가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이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고 전해진다.

(말년의 그녀는 1800년 정조가 갑작스럽게 서거하고 순조가 11세로 즉위하자 신료들의 요청을 받아들이는 형식으로 수렴청정을 실시하였는데, 스스로 여자국왕(女主)으로 칭하고 신하들도 그의 신하임을 맹세하는 등 국왕의 권한과 권위를 행사한다. 정조 장례가 끝나자마자 사도세자에게 동정적이었던 시파 인물들을 대대적으로 숙청한다.)

정조의 취임 일성은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즉 노론세력과의 전면전을 선포한다. 영화 <역린>은 이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 4월 말 개봉한 영화 <역린>은 실제 역사에서 모티브를 따온 팩션(Faction, 팩트(Fact)와 픽션(Fiction)의 합성어) 영화. 정조 1년 1777년 7월 28일에 일어났던 정조 암살 시도 사건인 ‘정유역변’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역변이란 ‘반역으로 인하여 일어나는 변’을 뜻한다.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내몬 노론 영수 홍계희의 손자인 홍상범 등이 주축이 돼 정조를 죽이고 사도세자의 서자인 은전군 이찬을 추대하려고 한 역모 사건이다.

<역린>이 재현한 1777년 7월 28일 ‘정유역변’ 그날 밤의 이야기에 대해서 조선왕조실록은 ‘도둑이 들었다’고 표현했다. 조선왕조실록을 살펴보자.

“밤에도 임금은 존현각(尊賢閣)에 나아가 촛불을 켜고서 책을 펼쳐 놓았다. 곁에 내시 한 사람이 있다가 명을 받고 호위하는 군사들이 숙직하는 것을 보러 나간 뒤, 좌우가 텅 비어 아무도 없었다. 갑자기 발자국 소리가 보장문(寶章門) 동북쪽에서 회랑 위를 따라 은은하게 울려왔다. 기와 조각을 던지고 모래를 던지어 쟁그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임금이 한참 동안 도둑이 들어 시험해 보고 있는가를 살피고, 친히 환시(宦侍)들을 불러 횃불을 들고 수색하도록 지시했다. 기와 조각과 자갈, 모래와 흙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고 마치 사람이 차다가 밟다가 한 것처럼 되어 있었으니 틀림없이 도둑질하려 한 흔적이 있었다.”

영화는 임금의 숙소 존현각 지붕에서 떨어진 기와 조각, 모래와 흙 한 줌에서 살아남으려는 임금, 주군을 살리려 목숨 거는 내관, 임금을 죽이려는 노론의 쿠데타 음모, 그리고 조선 최고의 살수(청부살인 자객)가 얽히고 설킨 팽팽한 스토리라인을 빚어낸다. 여기에 왕과 내관의 오랜 인간적 유대감, 내관과 살수의 형제애, 살수와 궁녀의 러브 스트리를 직조하듯 버무린다.

영화 <역린> 스틸컷 <사진= 뉴시스>

정조 싸고 얽히고 설킨 스토리라인 흥미 더해

금일살주(今日殺主). ‘오늘 임금을 죽이라’는 명을 받은 날쌘 자객들이 정조의 서고이자 침전인 존현각에 침투한다. 미리 역모 사실을 알고 있던 정조는 억울하게 뒤주에서 죽은 사도세자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활시위를 당기고 칼을 휘두른다. 왕의 목을 노리는 칼잡이들과 일합을 불사한다. 용(龍)의 목 아래 거꾸로 난 비늘(역린·왕의 분노를 의미)을 건드리며 젊은 개혁군주 시해를 시도하는 노론 기득권층. 영화 <역린>은 그날 하루 궁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건을 시시각각 추적한다.

현빈이 역할하는 집권 1년차 정조는 노론을 등에 업은 권력자 대왕대비 정순왕후(한지민 분)에게 모욕을 당하는 무력한 왕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자신이 명실상부한 권력을 잡을 때까지는 기다리고 기다릴 줄 아는 긴 호흡의 왕이였다. 심성이 어진 왕의 위기를 붙잡아 준 것은 학문의 깊이였고 심신의 수련이었다. 위태롭지만 부드러웠다. 흔들렸지만 곧은 심지로 스스로를 곧추세웠다. 그리고 가장 치명적이면서 결정적인 시기를 기다렸다. 정조는 중용(中庸) 23장을 신료들에게 연거푸 설파한다. ‘백성의 나라’를 꿈꾸지만 힘이 미약한 스스로를 다잡는 마술적 주문이기도 했다. “차라리 살고 싶지 않았다”고 고백할만큼 불안한 정조가 매달린 기도문이기도 했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 나오고
겉에 배어 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중용 23장)

정유역변을 계기로 정조의 견제 세력인 노론이 일부 제거 된다. 정조는 한꺼번에 서두르지 않았다. 20여명이 죽음을 맞이했고, 20여명이 귀양을 갔다. 은전군 이찬 역시 임금으로 추대받았다는 사실 때문에 죽임을 당한다. 정유역변은 세력이 약했던 정조가 정국을 자기 중심으로 바꾸는 계기가 된다.

정유역변을 무사히 넘긴 영화 속 정조는 노론들의 사주와 후원으로 관리되는 ‘살수 양성소’를 찾아간다. 그들의 수괴 광백(조재현 분)과 마주한다. 광백은 자신의 목에 칼을 들이댄 정조를 향해 “나 하나 죽인다고 세상이 바뀔 것 같냐”고 비아냥댄다. 정조는 그의 목을 단 칼에 벤다. 그리고는 내관 상책 (정재영 분)이 읊었던 중용 23장을 한 번 더 되새긴 뒤 스스로 이렇게 다짐한다. “바뀐다. 온 정성을 다해 하나씩 베어간다면 세상은 바뀐다.”

팩션은 동시대 관객의 소망을 알레고리적으로 만족시켜준다. 불온한 시대 불합리한 현실, 미욱한 우리는 스스로 원하는 바를 역사스토리 시공간 속 누군가를 주인공 삼아 자기편으로 동일시하면서 대리 만족을 한다. 어질고 속 시원한 리더십을 갈구하는 이 시대. 시도하다 좌절된 ‘의문사의 주인공’ 정조 캐릭터는 또 다른 변주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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