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산책] ‘원세방세’···”부러질래, 휘어질래?”
인서점아저씨 심범섭의 “굴렁쇠를 품어라”···원세방세(정순훈 저, 썬앰파커스)
이를 어쩐담, 사라고 해야 하나, 사지 말라고 해야 하나! 내가 가끔 “사지도 말고 읽지도 말라”는 엉뚱한 서평을 써서 욕도 먹고 칭찬을 듣기도 했지만 또 그런 나쁜 짓을? 안 돼 절대 안 돼, 음! 근데 이거 뭐야 대체 뭔 소리야! <원세 방세>라니, 중국 무협지 같잖아, 역시, 내 짐작이 맞아! 뙤놈들 노는 얘기야 집어치워! 근데 말이야 이거 뭐야? 몸통은 뙤놈이 분명한데 꼬랑지는 우리동네 녀석들이네! 어쭈 감히 나한테 물어보다니! ‘세상을 어떻게 살 것인가?’라니, 악착같이 살아야 되는 거 아냐? 아니지, 악마같이 살아야 한다고! 그런데 “조화롭게 살아라, 둥글둥글 살아라.” 뭐 거기 까진 받아드리겠는데, 뭐야 날보고 ‘소신대로 살아라” 이건 좀 건방진 거 아냐? 지가 작가면 작가지 말이야!
소신대로 사는 거, 바로 쇠고랑 차는 지름길이라구! 얌마, 정신차려! 여하튼 그런 말은 껍데기니까 지나가자구. 근데 ‘원세와 방세’, 뭔가 있긴 있어. 물귀신 같은 힘이 느껴져요. 음 하루쯤 투자해야겠군! 손해 볼 건 없을 것 같아, 원세와 방세라니 이게 대체 뭔 뜻이야? 진짜 무식하면 문제라니까! 잘난 놈들의 발모가지 그 뭐야 팔로워라나 뭐나 그런 거라도 바지락시럽게 쫓아다녀야 살아가는 이치를 깨친다는 애들의 소리도 있잖아요. 그렇군요, 그렇다면 우리 작가의 말을 따라 중국 영락제 시대, 아니 그 꼬랑지인 남영동 분실로 가서 ‘방세’라는 칼날에 우리의 모강지를 살짝 대보고 소름의 강도를 알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러면 그 건너편에 있는 원세도 알게 되고 조화로운 세상도 알게 될 테니까 말이야
영락제 명나라 연왕은 반란에 성공하자 당시 지식인의 표상이었던 방효유에게 황제 즉위조서 쓸 것을 명했지만, 그는 통곡하며 붓을 내던지고 조서를 쓰지 않았다. 황제는 “명을 거부하면 9족이 멸하는지 알렸다”고 하자 방효유는 “10족이 멸한다 해도 할 수 없는 것은 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댓가는 처절했다. 방효유는 입이 귀 밑까지 찢어지고 대꼬챙이로 혀가 뽑히는 죽음을 당했다. 황제는 그를 설득하는데 실패하자 방효유의 9족인 부계 4대, 모계 3대, 처계 2대와 함께 친구, 제자를 10족으로 간주해 방효유의 눈앞에서 먼저 죽였다. 역사상 전무후무한 10족이 멸하는 참극을 당한 것이다. 방효유의 저서는 읽는 것도 소지하는 것도 금지되었다. 이름도 금기어가 되었다. 그의 신원은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회복되었다. 소신을 갖고 선비처럼 살다가 죽은 방세의 대표적인 사례다.
국가를 지키는 법의 준엄함은 동서고금이 같은 법, 그 시퍼런 서슬은 소신을 겨냥하고 둥글둥글 굴렁쇠 같이 굴러가라고 가르치는 건 아닐까 그래서 일 게야, 이 책을 쓴 정순훈은 혹여 우리가 방세라는 칼날에 다칠까봐 눈치껏 살라고 사랑의 매를 드는 것이겠지요. 오오, 나도 몇 번 방세의 칼맛을 살짝 보았다오. 소름이 쫙 끼치더군. 강조하건대 절대로 민주니 인권이니 뭐니 하면서 잘난 척하지 말라고. 조선의 꿈과 조선의 생각을 그렸던 정도전이도 그 칼날에 꼼짝달싹 못하고 “내 모가지는 길지 않네. 조심해서 자르게” 그렇게 죽어가는 걸 지난번 사극에서 다들 봤잖아! “국민이 대통령”이라던 노무현이 어떻게 됐어! 다 알잖아, 착각하지 말라고.
방세는 그렇다 치고, 원세란 무엇이냐? 어울리라는 거야. 둥글둥글 둥그렇게 어울리는 거 그것이 곧 세상이니 그 그릇에 편안히 담기되 절대로 그릇을 탓하거나 그릇 빚는 이치에 도전하지 말라는 것이지. 그렇게 사노라면 어느새 개울가의 버드나무처럼 쑥쑥 자라고 숲이 이루는 법, 풍년세월은 황희가 되고 황우여가 되고 유승민도 되는가 하면 삼성도 되고 엘지도 될 수 있다는군, 아마 이명박은 원세네 청지기쯤 되는가벼. 그건 그렇고 저자 정순훈이가 이 원세니 방세니 하는 요상한 저울을 우리 격동의 정치 한복판에 세우니 많은 사람이 다치고 좋아하고 욕을 먹는 거 그게 참 가상하구먼 그려. 박정희나 박근혜는 말할 것도 없고 민주 근태니 노무현이니 안희정이니 정청래니 현대니 뭐니 하면서 이 요상한 잣대로 다 재어보고 달아보니 정치판도 그렇고 세상이 꼭 손금같이 환하게 보이더라고. 그게 다 실명이니 진짜 재밌더라구, 이제 작가놈 욕 바가지에다 어쩜 방세 칼날이 덮칠지도 몰라요.
그런데 말이란 게 그렇더라고, 수박이나 양파 같아서 안팎이 사뭇 다르더라고, 원세 방세의 저자 순훈이도 뭔가 속내를 비틀어서 말합디다. 원세 방세는 처세술이 아니라는 거야. 하긴 그래 동서양의 모든 영웅호걸과 우뚝한 지식인이 그렇게 가랑잎 같은 처세술에 의존했겠어? 그네들의 역사적인 성공은 결코 처세라는 잔기술로는 획득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봐. 그들은 자신들의 꿈과 목표를 위해 필경 생사를 걸었을 건 뻔해요. 그들이 성취한 그 위대한 것들은 원세도 아니고 방세도 아니고 그들이 생사를 초월했던 삶과 생명 자체라고 봐요. 그들의 삶과 생명이 피워낸 꽃이고 열매겠지요. 비록 저자가 이 책에서 방세보다는 원세에 힘을 실어주는 듯 인상을 주고 있지만 그건 휘어지고 꺾어지는 고통이 전제되는 것이어서 어느 것이 위이고 아래라기보다는 철학이 현실을 맞아 대응할 때 하나가 되면서 그 안 밖의 두 극단 또는 질과 양으로 이해되는 것이 원세와 방세임을 책의 전편에 보물찾기로 묻어 놓고 있는 것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당신이 만약 세상으로 나가는 길 위에 이 원세나 방세를 처세술로 생각해서 그 지시를 따라 걷고자 한다면, 당신은 성공은커녕 큰 망신과 실패 앞에서 눈물을 흘릴 것이다. 성공이란 무엇인가? 너와 내가 ‘우리’로 어울렸을 때 우리가 주는 선물이다. 세상에 대한 그리고 인간과 인간의 역사에 대한 그 현실에 대한 진정한 꿈과 희망이 어떤 결실을 이뤘을 때 주는 보상이 아니겠는가? 세상과 그 구성원과 역사에 대한 큰 사랑을 일궜을 때 세상이 주는 영광이다. 그 영광을 위해 부러지지 않는 원칙을 가지고 나가되 현실을 받아들이는 물 같은 지혜가 방세와 원세라는 것이다. 모든 이의 꿈과 사랑을 가지고 세상으로 나가 원세와 방세를 날줄과 씨줄로 설계하고 그것으로 공간과 시간을 포획하라. 그러면 우리의 바람 위에 당신은 초대되어 우뚝 설 것이고 세상은 님을 위해 성찬을 준비하리라. 그건 처세를 넘어 철학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근데 이게 뭐여? 왜 이렇게 골치 아프다! 글이 왜 이렇게 딱딱 소리가 나지. 이크, 그 놈의 인문학 때문이여! 내가 그 녀석을 짊어지고 피난을 가느라 이 개고생을 왜 하는지 몰라, 인문학이란 게 대체 뭐여! 성공을 위해 모두가 질주하는 이 시대에 그 놈은 사랑방 손님이라니까, 진짜 재수 없는 친구야, 대문간에 소금 뿌려라! 문간 밖 삼거리로 쫓아버려! 다시는 얼씬거리지 못하게 다리 몽둥이를 분질러 놓을 놈같으니라구! 생각해 보라구! 지금 우리 현실이 악마란 놈도 두들겨 맞고 울고 갈 판에 이 아사리판에 뭔 인간의 정신이고 영혼이고 사랑이야? 그런 정신 나간 소리는 절대 하지 말라고 그런 정신나간 소리는 이 시대를 위해 하는 게 아녜요. 엉뚱한 소리라니까, 그래서 세상이 어떻게 됐냐고! 점잖기로 소문이 자자한 철학님조차 땅바닥에 굴러 떨어져서 천사를 때려잡는 기술이 되얏짜녀!
아무렴! 그래서 우리나라 최초의 사회과학서점으로 문을 연 인서점도 결국 목숨을 건지려고 지금 인문학이란 걸 짊어지고 산으로 피난을 가고 있는 중이잖아? 이젠 도시도 싫고 문명도 싫고, 뭐야 이제 사람들도 다 싫어졌다니까, 그래서 산으로 가서 밭을 일구고 농사를 지으면서 그 논두렁밭두렁에다 책전을 펼쳐놓고 “여봐 책덜 사. 책덜 사라니까!”
하면서 돼먹지도 않은 짓을 한다니까요. 음! 그래도 더러 정신 나간 사람들이 있긴 있더라구! 내가 “지금은 우리 인간의 역사가 벼랑에 이르렀으니 이 걸 계기로 이때를 역사의 반환점으로 삼아 다시 왔던 길로 돌아가자”고 했더니 몇 사람은 “암! 그려! 이제 자본주의나 문명은 우리를 죽이고 말거야!” 하면서 박수를 치더라구, 지금 인서점에서 열흘에 겨우 열권도 못 파는 책을 안타까워하면서 이 산밭 ‘두렁농’에 펼쳐놓은 책을 마구 사더라구요.
정말 놀랬지? 아직도 그런 모자라는 이들이 계시는 줄은···. 놀라지들 말아, 이 깊고 깊은 산골짝 감자밭 뚝에서 어떤 날은 몇 십만원 어치 책을 팔았다니까. 그리고 이 산에서 글쎄 이 철학인지 처센지 그저 그렇구 그런 책을 사가는 바보멍청이들도 있더라니까. 세상은 요지경속이여! 그래서 원세방세를 처세술로 잘 못 알까봐서 “여봐! 내 얘기 듣고가셔! 이 책 원세방세는 절대로 처세술로 읽어서는 안돼! 철학으로 읽어야 하능겨!” 라고 이 촌뜨기 아저씨가 글을 쓰기로 결심하고 이렇게 돼 먹지도 않은 넋두리를 하는거라오. 여튼 잘 덜 읽고 꼭 성공혀! 글고 그 성공은 바로 우리 모두의 성공이 돼야 혀! 다시 말하지만 이젠 안 돼. 앞으로 가기보다 홱 하고 180도 돌아서서 오던 길로 가자고. 암, 뒤로 가야 혀!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그런 성공을 위해서 말이여!
앗 참! 내 정신 좀 봐 내 소개도 못하고 인적찌 떠들었네 그랴! 나는 마려, 어흠! 우리나라 최초의 인문학서점 <인서점>이란 걸 만든 음! 그렇치 일종의 선구자여. 지금은 이 귀신 떠배기 같은 놈을 죽이지 못하구 서리 산으로 피난을 가고 있는 길이야! 인간의 고향은 산이잖아! 사람들이 나를 다 인서점 아저씨라고 불러! 그래서 그냥 아저씨가 되고 말았지만 사실 그 이름이 훨 좋지. 그리구 보니 이 책을 쓴 순훈이가 누군지도 깜빡 잊고 말았구먼. 역시 가방끈이 짧으면 할 수 없다니까, 자세힌 모르지만, 진짜 난놈이랍디다. 언젠간 보안사에 끌려가서 지독하게 혼나고 왔다더니 또 언젠간 해직교수글 관계로 말썽을 부렸는데…그 역시 원세방세의 아래 윗동네를 고루 맛보는 삶의 절차는 비켜가지 못하고 말았다 하니.
그러나 그는 그 후 영광의 문턱에서 서기도 했는데, 벌써 저 지난 시기쯤이여! 대통령 해먹을려고 거푸 두번이나 나섰다가 두번이나 망신살이 뻗친 회창 양반이었지 아마! 그 양반의 그 때 그 화려하기 짝이 없는 연설문을 죄다 이 순훈이가 썼다하니 뭐 사상까지야 말할 수 없겠지만. 글 솜씨 하난 이 아저씨도 곳곳에서 탄복하겠더라구! 곳곳에서 고개가 팍팍 숙여지더라구. 찌질한 서평 끝까지 읽어주느라 고생했어, 고마워!
그리고 이제는 내가 산으로 피난을 갔으니까 이제 인서점아저씨가 아니여! 양수리로 갔으니 놀러들 오라구!
‘산으로 간 인문학’ 농장 ‘두렁농’의 두렁농 머슴아저씨한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