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렁농 인문학 농부의 호미일기] “이 폭염 또한 지나가리니”
[아시아엔=심범섭 ‘산으로 간 인문학농부’] 산골짜기 농사는 뙈기밭 농사다. 손바닥 만한 작은 밭들이 산비탈과 도랑을 따라 가며 앉고 서고 누우며 널려있다. 그래서 씨앗을 뿌리는 것도 형편을 따라 가며 발 가는 대로 이것도 내려놓고 저것도 풀어놓는 맘 가는 대로 하는 농사다.
올해도 나는 마음을 따라 가며 이것 저것 내키는 대로 씨앗들을 풀었다. 그러나 멀리서 보면 뙈기밭들은 그림만 같다. 나는 가끔 ‘어쩌면 이게 하느님의 꽃밭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허기야 그래서 도시에 나간 자식들이 쪼르르 어린 새끼들 데리고 오면 하느님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 꽃밭을 얼른 어린이들의 놀이터로 내어 준다.
애들은 좋아라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노는 게 아니라 말썽꾸러기가 되지만 생각해 보면 그게 정말 노는 것이고 꽃밭이 아닌가.
허기야 그게 농사다. 그렇게 열대여섯 꽃밭이 생명의 종자를 품고 새끼들을 키워내는 게 삶의 꽃이고 열매일 것이다. 나는 그런 꽃들의 향기를 맡으며 계곡 아래 먼 들을 바라본다.
벌써 벼 이삭이 절기를 밟으며 들길을 지나 강 건너 옛 나루터까지 와 있다. 그 너른 들에서 가을 빚어지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 귓전에 쟁쟁하다.
이런 녀석들과 어울려 살아가자면 나도 어느새 녀석들의 잎이 되고 꽃이 되고 열매가 되는 기분이다. 그래서 인석(이 녀석)들의 매력에 넋이 빠진다. 그렇게 넋이 나가면 인간세상으로 향하는 온갖 나의 욕망이 꽃잎의 그늘로 내려 앉으며 흙으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나는 어느새 뙈기밭을 살아가는 생명들이 소근소근 들려주는 이야기를 따라, 나 자신 풀이 되고 나무가 되면서 그들을 따라 그들의 고향으로 가고 싶은 마음에 들뜨기도 한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이내 내 생각의 굴레에서 벗어나 호미를 든다.
농사꾼으로 돌아와 뙈기밭에 들깨를 심는다. 뙈기밭에선 쏟아져 내리는 햇살과 생명들이 뜨거운 사랑에 빠진다. 그렇다. 나는 농사꾼이다. 그냥 그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것이 농사꾼의 분수다.
철 모르는 서울 사람들은 비만 오면 풍년이라지만, “봄 가물 사흘”이라는 말이 있듯이 비는 비를 기다리는 농작물의 마음이다. 많아도 적어도 일러도 늦어도 애를 태우는 게 비다. 어느새 마늘 캔 밭뙈기는 하늘을 바라보며 큰 가물이라고 애를 태운다. 그래도 숲에선 꾀꼬리 뻐꾸기 딱따구리가 좋은 시절이라고 노래를 한다. 그런데 웬 일일까 검은 구름이 둥둥 뜨는가 싶더니 후두둑 후두둑 빗방울을 떨어뜨린다. 빗줄기가 굵어진다. 옳거니 비가 분명하다.
나는 서둘러 들깨 모를 뽑아 마늘 캔 밭부터 들깨 모를 풀고 이어서 여기저기 빈 땅을 찾아 들깨 모를 꽂는다. 좀 늦었지만, 농사라는 게 늘 그렇다. 자연의 걸음을 따라 가는 것이니 어쩌겠는가.
들깨는 들의 장사다. 흙에 던져만 놔도 빗줄기만 보면 너끈히 산다. 그러다 보니 들깨는 제풀에 농사꾼의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살아가야 할 제 땅이 없다. 비 오는 날 던져져 떨어지는 그곳이 들깨가 살아갈 땅이다. 떠돌이 신세다.
비만 오면 휩쓸려가는 개울가의 모래밭이나 자갈밭이 들깨가 살아갈 땅이다. 밭둑 논둑 길섶 등 그런 버려지는 땅이 들깨의 주소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들깨의 전략은 참으로 지혜롭다. 인간의 세상으로 와서 인간에게 쓸모 없다고 버려지는 땅에 삶의 터전을 잡고 그 땅의 주인인 인간의 사랑까지 담뿍 받으며 살아가다니!
나는 들깨가 참으로 부럽다. 자연과 인간세상을 가르지 않고 그 쓸모 없는 틈새에 삶의 대륙을 당당히 개척한 들깨의 지혜로움에 찬사를 보낸다. 그래서 옛 사람들도 들깨에게 ‘들깨는 철을 안다’고 얘기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