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현의 중국이야기] 조선족 ‘붕어빵 사장’ 한광석 이야기

한광석(韓廣石)은 조선족이다. 흑룡강성 칭안현(慶安)출신으로 나이는 마흔 네 살이다. 1996년 처음 한국에 들어온 이후 지금은 안방 드나들 듯한다. 그야말로 그에게 있어서 한국은 어머니의 품같은 따뜻한 곳이다. 고등학생 딸을 외할머니에게 맡기고 내외를 비롯하여 누나 등 온 집안 식구들이 한국 전역에서 ‘활약’하고 있다. 아내는 뷔페에서 먹고 자며 한 달에 170만원을 받는다고 한다. 이들은 주말 부부다.

그는 평택 근처 논 한가운데 있는 비닐하우스에서 기거하며,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붕어빵을 팔고 있다. 포장마차 양 옆에 ‘창업문의’라는 글씨가 한 눈에 들어왔다. 초기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물었다. 기계 임대료 20만원 외에는 한 푼도 들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것도 아는 한국 사람이 무료로 기계를 빌려주고, 위치까지 선정해 주며 차로 기계를 날라주었다고 자랑한다. 붕어빵을 먹으면서 그와 노닥거리다 보니 빵 굽는 현장까지 팥이며, 밀가루 액이며 모든 재료를 운전기사가 직접 차로 배달해 주었다.

토요일은 주민들에게 중국어 가르친다고 일찍 들어가고, 일요일은 교회 간다고 하루 쉰다. 치과 간다고 늦게 나오고, 어깨 물리치료 한다고 낮 1시 쯤 돼서야 가게문을 연다. 그야말로 ‘엿장수 맘대로’이다. 놀 것 다 놀고, 볼일 볼 것 다 보고도 제법 소득을 올린다.

재료비를 제하고 순수하게 남는 돈이 월 250만원 정도라고 들려주었다. 우리의 전직 은행원이나 퇴직 공무원들은 평생 모은 퇴직금을 다 털어 넣고 맨 손으로 나오기 일쑤인데, 한광석은 ‘이국 땅’에서 땡전 한 푼 들이지 않고 돈을 벌고 있는 것이다. 그의 비상한 사교술과 돈 버는 재주가 얄밉기도 하고 부러웠다.

올 겨울은 유난히도 추었다. 그러나 붕어빵을 굽는 그의 표정은 매우 밝다. 밝다 못해 얼굴에 생기가 넘친다. 금붕어처럼 툭 튀어나온 커다란 눈에 자신감이 넘친다. 붕어빵을 파는 재간이 남다르다. 1000원에 세 개짜리를 2000원 어치 사면 덤으로 한 개 더 얹어준다. 어떤 꼬마가 천원을 내밀자 무료로 주었다. 궁금하여 이유를 물었더니 자신에게 중국어를 배우는 학생이라고 한다. 한 팀에 30만원씩 두 팀을 가르친다고 하였다. 이웃 주민들에게는 무료로 중국어를 가르친다.

붕어빵을 팔아서 한 달에 250만원의 순소득이 생기고 중국어를 가르쳐서 60만원, 그의 아내가 번 돈 170만원을 합하면 모두 480만원이다. 비닐하우스에서 먹고 자므로 생활비도 거의 들어가지 않는다. 고된 노동을 하는 아파트 경비가 120만원 남짓하고, 하루 15시간 이상 일하는 마을버스 운전기사가 150만원을 버는 현실을 감안할 때 결코 적지 않은 수입이다.

그러나 그에게도 한 때 화려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사장노릇’을 하던 사람이었다. 처음에 전주에 있는 돼지농장에서 과학적인 돼지사육법을 배웠다. 여기에서 수년 동안 번 돈과 양돈지식을 밑천 삼아 고향에서 양돈장을 마련했다. 전성기 때는 종업원 20명을 두고 돼지 1만 여 마리를 기르는 어엿한 양돈농장 주인이었다. 그러다 3년 전 간이 나빠져 헐값에 처분하고 이 사업을 접었다.

지금은 다시 건강을 되찾아 임시방편으로 붕어빵을 팔고 있다. 다시금 돈을 벌기 위한 그의 아이디어가 번득인다. 고향의 자연산 나물을 절여서 한국에 들여와 파는 방법, 고향에 호도과자 기계나 붕어빵 기계 대여점을 여는 방안, 아내에게 한식당을 차려주려는 계획 등 돈 벌기 위한 구상으로 가득하다. 그의 꿈은 돈을 많이 벌어서 고향에 교회와 학교를 세우는 것이다.

어느 날, 늘 싱글벙글 웃고 있는 그에게서 재미있는 얘기를 들었다. 이른바 ‘3등(等)인’에 관한 이야기다. 세 가지를 기다리는 인간이란 뜻이다. ‘등(等)’이란 중국에서는 ‘기다리다’는 의미로 흔히 쓰인다. 세 가지란 무엇을 가리키는가.

첫째, 퇴근(下班)을 기다린다.
둘째, 월급(?支)을 기다린다.
셋째, 종신 연금(?身 養老金)을 기다린다.

항간에 나도는, 철밥통(鐵飯碗)인 중국의 공무원을 풍자한 말이다. 이쯤 되면 3등인이 아니라 ‘삼류인생’이라 해야 타당할 것 같다. 그의 말을 듣고 즉석에서 맞장구를 쳤다.

“그럼, ‘4등인’이 뭔지 아세요? 바로 죽음을 기다리는 인간이에요.”

그는 자신의 딸에게도 절대 공무원은 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권력의 향배를 점치며 ‘복지안동(伏地眼動)’하는 우리의 공무원사회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을 듯싶다.?오가는 길에 ‘붕어빵 가게’에 들러 추억을 되씹으며 그와 얘기하는 것이 어느새 즐거움이 되었다. 생글거리는 ‘조선족 한 사장’에게 어느 날 짖꿎은 질문을 던졌다.

“한 때 돼지 만 마리 기르는 사장에서 ‘붕어빵 사장’으로 전락했는데 부끄럽거나 창피하지는 않느냐” 고 묻자, 힘주어 말하는 그의 중국어 답변이 걸작이었다.

“미래가 있으면 똑같은 시련을 겪어도 결코 두렵지 않다(有未來, 就不?重來).”

우리는 어느 사이 ‘헝그리 정신’을 잃었다. 길거리에도, 공사판에도, 식당에도, 헝그리 정신으로 무장한 조선족들이 그 틈새를 메우고 있다. 이들을 ‘반(半)짜장’이라고 무시만 할 것인가.

비록 엄동설한에 붕어빵을 굽고 있을망정 따뜻한 곳에 앉아 시간을 때우는 ‘3등인’은 되기 싫다는 한광석! 대규모 양돈농장 사장에서 붕어빵 장수로, 빈부귀천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미래를 위해 치열하게 살아가는 조선족 한광석의 삶에서 향기가 물씬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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