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현의 중국문화산책] “길이 멀어야 말의 힘을 알고, 사람은 겪어보아야 안다”

“한 때 부잣집 도련님이었던 문호 루쉰은 가세가 급격히 기울자, 이웃은 물론 가까운 친척으로부터도 거지 취급을 당했다. 소년 가장으로서 동생들을 돌봐야 했던 그는, 어린 시절부터 인생의 쓴 맛을 톡톡히 맛보았다. 조부모, 부모가 건재하던 시절, 친척들은 그를 애지중지 하였으나 형편이 어렵게 되자 그만 길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만 것이다.” 사진은 근대 중국의 대표적인 문호이자 사상가인 루쉰.


*중국 속담 속에 담긴 ‘중국인의 지혜와 처세, 그 달관의 예술’

路遙知馬力, 日久人心
(루야오즈마리, 르지우찌엔런씬)

“길이 멀어야 말의 힘을 알고, 사람은 겪어보아야 안다.”

사람은 오래 두고 겪어 보아야 그 속내를 헤아릴 수 있고, 말은 타보아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다. 사람이란 알면 알수록 이해하기 힘든 동물이다. 7년을 연애하다 마침내 결혼에 골인한 젊은 남녀가 사소한 감정다툼으로 틀어져 바로 헤어진다. 50년을 산 노부부가 재산 문제로 사이가 벌어져 이를 부득부득 갈며 하루아침에 갈라선다. 금실 좋던 재혼 부부도 돈 몇 푼 때문에 또 다시 파경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한 때 부잣집 도련님이었던 문호 루쉰은 가세가 급격히 기울자, 이웃은 물론 가까운 친척으로부터도 거지 취급을 당했다. 소년 가장으로서 동생들을 돌봐야 했던 그는, 어린 시절부터 인생의 쓴 맛을 톡톡히 맛보았다. 조부모, 부모가 건재하던 시절, 친척들은 그를 애지중지 하였으나 형편이 어렵게 되자 그만 길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만 것이다.

한국 사람들이 처음 중국에 왔을 때 중국 사람들의 ‘극진한’ 환대에 쉽게 감동하고 곧바로 마음이 흔들린다. 정에 약한 민족성이 작용한 탓이리라. 중국 사람들은 처음에는 그야말로 ‘혼이 나가도록’ 정성껏 대접한다. 실례를 들어보자. 2012년 5월 무렵의 일이다. 필자가 머물렀던 사범대학에서 서안 주재 한국 총영사를 초청하였다. 한국 유수 대학과의 교류를 위해 총영사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것 같았다.

초청 기일이 임박한 어느 날, 대학 총장이 “총영사의 직급이나 위상이 어느 정도 되느냐”고 물었다. 잠시 어리둥절한 끝에 “한국 대도시의 시장급은 될 것”이라며 대충 얼버무렸다.

이윽고 서안 총영사가 정문에 도착하자 교직원, 학생들이 연도에 늘어서 환호하였다. 총영사의 이름이 새겨진 붉은 현수막이 여기 저기 나붙었다. 각 단과대학의 학장 및 주요 보직교수들도 총출동하였다.

총영사가 강당에 들어서자 군악대 비슷한 악단이 애국가를 4절까지 연주했고, 그의 얼굴은 상기된 나머지 붉게 물들었다. 이어서 무용과 교수를 비롯한 제자들의 춤사위가 한바탕 벌어졌다. 가극, 성악, 시낭송 할 것 없이 두 시간 여에 걸쳐 ‘열린 음악회’가 펼쳐졌다. 장엄하고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만찬 석상에서도 총영사를 흐뭇하게 하는 ‘기쁨조’의 행동은 그칠 줄 몰랐다. 노회(老獪)한 대학 서기(서열 1위)가 사뭇 권위적인 목소리로 “00 교수, 노래 한 곡 불러보세요” 하였다. 여교수는 총영사를 기쁘게 하려고 최선을 다해 노래를 불렀고 앵콜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환대를 받고 돌아가는 총영사의 어깨가 얼마나 무거웠을까.

또 한 예를 들어보자. 충무로 주변에서 활동을 하던 어느 중견 사진작가가 중국 동종업계 사람들의 초청을 받았다. 하얼빈공항에 도착하자 검정색 고급 리무진 수 십 대(본인의 표현)가 나와서 그를 맞이하였다. 그는 이내 흥분하였고 격정을 감추지 못했다. 고급 호텔에 머물며 황제 부럽지 않은 온갖 호사를 다 누렸다.

1~2년이란 짧은 세월이 흐르자 고급 기술을 익히고 나서는 언제 봤냐는 식으로 모르쇠 하더란다. 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고나 할까. 목덜미에 중국 ‘깍두기’들에게 그어진 선명한 칼자국만 남긴 채 그는 결국 용도폐기되었다. 중국말 한 마디 못하는 그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조선족 통역에 의지해 이리저리 이끌려 다니면서, 철저히 이용만 당한 그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지 자못 궁금하다.

중국에서 고군분투하는 중소기업 사장들도 다 한번씩은 유사한 일을 겪어 봤을 것이다. 겪어볼수록 어렵고 까다로운 상대가 중국인이다. 쉽게 “형님!, 아우!” 하며, 즉석에서 말을 트고 정을 주는 한국 사람들은 중국이라는 ‘인(人)의 정글’에서 백전백패하기 십상이다.

일본 사람은 중국에서 사업을 시작할 때 중국 물정도 파악할 겸 최소한 1~2년간은 중국어부터 익힌다고 한다. 비록 밉기는 하지만, 일본인의 세심하고 신중한 자세가 돋보인다.

여담 한마디 하자. 토종 붕어에 비해 어딘지 힘이나 모양에서 부족함이 느껴지는 중국산 수입 붕어를 낚시인들은 ‘짜장 붕어’라 칭한다. 또한 인력시장에서는 인건비가 싼 중국인이나 조선족을 ‘짜장’이라 부르며 멸시한다. 이런 못된 습관을 지닌 채 중국 대륙에 진출했다가는 큰 코 다친다.

중국에 진출하는 모든 한국인들은 중국인을 대할 때 ‘짜장’이라 무시하지 말고 돌다리도 두드리는 자세로 그들을 대해야 실패를 줄일 수 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헤아리기 어렵다’는 속담은, 흙탕물 같아서 좀처럼 속내를 알 수 없는 중국인에게 적절한 표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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