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현의 중국문화산책] 돈이면 귀신도 부린다
“돈이면 귀신도 부린다”
중국인들 사이에 널리 입에 오르내리는 참으로 음습한 속담이다. 드라마 에 나오는 장면이다. 옥에 갇힌 임충(林?)이 사납게 날뛰는 옥졸에게 은밀히 뇌물을 건넨다. 그러자 그의 태도가 순한 양처럼 돌변한다. 희희낙락 돌아서는 옥졸의 뒤통수에 대고 그가 나직이 내뱉는다.
“돈이면 귀신도 부린다더니…”
언제부턴가 돈이 인생의 화두가 되었다. ‘동양의 유대인’이라 불리는 중국인들은 요즘 들어 더욱 돈독이 오른 것 같다. 웨이난(渭南)사범대학에 오래 몸담았던 50대 중반 운전기사의 말이 새삼스럽다.
“중국은 온통 돈에 미쳐 돌아가는 것 같아요. 시아버지와 며느리 사이, 심지어 부녀지간도 돈 때문에 사이가 틀어져요. 우리 마누라도 돈만 귀하게 알고 남편은 아주 귀찮게 생각해요.”
이 속담은 우리 사회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공직에 청춘을 바쳤던 어느 분도 “돈이면 귀신도 부린다”는 말을 금과옥조처럼 여긴다. 종종 이 말을 되새김질하듯 중얼거리기까지 한다. 그는 돈으로 ‘귀신’들을 적당히 다룰 줄 안다. 처세에 능하고 대인관계도 원만하다. 큰 돈은 안 쓰고 푼 돈은 거침없이 쓴다. 윗사람이 해외출장 갈 때면 미리 바꿔둔 달러를 선뜻 내민다. 상사는 돌아와서 주변에 입이 마르도록 그를 칭찬한다.
“그 친구 예의 바르고 참 괜찮은 사람이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눈치 없고, 융통성 없는 사람으로 낙인 찍힌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별장에 미녀들을 불러다가 잔치를 벌인다. 성접대까지 받은 관료들이 ‘감동’하지 않을 수 있겠나. 정신이 가난한 공직자들은 돈 몇 푼에 쉽게 감동한다.
물론 돈은 소중하다. 양복 입은 신사도 돈 없으면 요리 집 문 앞에서 매를 맞아야 한다. 돈 때문에 벼랑 끝에 내몰려 본 사람들은 “돈은 곧 인격!”이라고 힘줘 말한다. 얼마 전에도 세 모녀가 생활고를 못 이겨 마지막 집세, 공과금 등 70만원을 남겨 둔 채 번개탄을 피워놓고 동반자살했다. 돈 없으면 어린 자녀에게 우유를 사줄 수도 없다.
의 저자 박형미 씨는 화장품 방문판매업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통한다. 생활고에 찌든 그녀도 어린아이 우윳값을 벌기 위해 화장품 가방을 둘러멨다. 그 지긋지긋한 ‘돈의 노예’에서 해방되는 것이 소원이었다. 발이 부르트도록 이 빌딩, 저 빌딩을 누비고 다녔다. 마침내 그녀는 월 1억 원 소득을 올려 맺힌 ‘한(恨)’을 풀었다.
그러나 아무리 돈이 소중해도 장사하는 사람과 공직자의 돈에 대한 관념은 달라야 한다. ‘장사의 신’으로 불리는 전설적 거부 호설암(胡雪巖, 1823~1885)은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상인은 이윤이 생기는 일이라면 칼날에 묻은 피도 핥을 수 있어야 한다.” ( 289쪽)
돈 버는 데 필사적이었던 호설암도 상도를 지키는 데 철저했다. 결코 검은 돈, 부정한 돈에는 손대지 않았다. 동아건설 창업주 공산(公山) 최준문(崔竣文, 1920~1985) 선생도 검박한 생활이 몸에 배었다. 재물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어보자.
“만석꾼은 쌀 한 톨을 중시하고, 거지는 쌀 한 가마를 우습게 안다.” (상권 114 쪽)
온통 돈에 취한 중국, 중국인
오늘날 중국은 부정부패로 몸살을 앓고 있다. 비분강개형의 한 택시 기사가 거대한 인민정부 건물을 가리키며 “저 안에 ‘좀도둑! 쥐새끼!’들이 바글바글하다”며 분노를 주체하지 못한다. 주원장(朱元璋, 1328~1398) 시절에도 관리들의 부정부패가 극에 달하였던 모양이다. 역사 드라마 에 보면 주원장이 직접 탐관을 문초하는 장면이 나온다.
“탐(貪)이라는 글자는 이제 금(今)자와 조개 패(貝)가 합쳐진 것이다. 즉 ‘한시적 재물’이라는 뜻이다. 탐욕스럽게 취한 재물은 일시적인 것으로서, 자신의 소유가 되지 못하고 바로 몰수 된다는 사실을 모르느냐?”
형부상서로서 청백리를 가장한 이 탐관은 극형에 처해졌다. ‘황금’하면 최영 장군이 떠오른다. 소설가 이병주가 지은 에도 우리가 익히 아는 일화가 등장한다. “최영이 16세 때, 그 아버지 원직(元直)이 임종의 자리에서 ‘황금 보기를 돌 같이 하라’고 유언했다. 최영은 이 유훈을 굳게 지켜 재물엔 일체 마음을 쓰지 않았다.”
다산 정약용 선생도 목민심서 율기육조(律己六條)에서 공직자들에게 일갈했다.
“뇌물을 주고 받는 일을 어느 누가 은밀히 하지 않으랴. 그러나 밤중에 한 일이 아침이면 드러나게 마련이다(貨賂之行 誰不秘客 中夜所行 朝已昌矣).”
최영 장군, 황희 정승, 정약용 선생, 법정 스님에게 “돈이면 귀신도 부린다”는 속담이 통할 수 있을까. 황금을 초개와 같이 여겼던 이들 네 분은 모두 전설이 되었다. 아쉽게도 지금 이 땅에는 돈을 밝히는 공직자가 너무 많다. 돈에 취(醉)해, 취할 돈과 취하지 않을 돈을 구별하지 못한다.
과연 우리는 어느 정도의 돈이 있으면 만족할까. 이에 대해 종교철학자 제이콥 니들먼(Jacob Needleman)이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는 에서 돈에 대해 깊이 사색했다.
“돈을 이해하고 존중해야 한다. 돈은 사악한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 정말 필요한 돈은 어느 정도이고,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느 만큼의 돈이 필요한가?’ 라는 책임있는 물음을 던져야 한다. 돈을 잘 버는 사람이든 돈을 못 버는 사람이든 오직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한다는 맹목적 충동이 문제다.”
욕심이 과하면 철창과 콩밥이 기다린다. 법원이 얼마전 김종신 전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에게 징역 7년 형을 선고했다. 1억7000만 원을 받고 영혼을 판 대가를 톡톡히 치른 셈이다. 검찰, 경찰, 군인, 교육 공무원, 공기업 직원들도 뇌물수수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승진하고 싶은 욕심 때문에 뇌물을 주고받는다.
십여 년 전 얘기다. 비리를 수사하는 책임자였던 어느 공직자가 장뇌삼을 몰래 받아먹었다가 이 사실이 들통나자 홧김에 그만 목을 맸다. 장뇌삼 몇 뿌리가 자신의 목을 조이는 올가미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공직자, 공기업 종사자는 ‘적으나마 샘물처럼 마르지 않는’ 녹봉에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부정한 방법으로 취한 모든 금품은 자신의 목을 졸라매는 ‘올가미’요, ‘쥐약’임을 뼛속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