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현의 중국문화산책] “사람은 이름 나는 것이 두렵고…”

“사람은 이름 나는 것이 두렵고, 돼지는 살찌는 것이 두렵다”

출세나 지위가 극에 달한 상태의 위태로움을 도살장으로 끌려가기 직전의 살찐 돼지에 빗대어 경계한 말이다. 중한사전에는 좀 더 생동감 있게 풀이하고 있다.

“사람은 (화의 근원이 되기 때문에) 이름 나는 것을 두려워하며, 돼지는 (도살되기 때문에) 살찌는 것을 두려워한다.”(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발간 <중한사전>)

평범한 사람은 누구나 출세와 부귀영화를 꿈꾼다. ‘무항산 무항심(無恒産 無恒心)’이라 하지 않았던가. 돈·권력·명예·벼슬을 추구하는 것은 인지상정인지라 그다지 나무랄 것이 못된다. 다만 지나치면 문제가 된다. 과욕이 화를 불러일으킨다. 동서고금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권력의 정점에서 ‘하산’하는 방법을 몰라 비명횡사한 인물이 한둘이 아니다. 지나치게 권력이 비대해지면 마치 장대 끝에 매달린 것 같아서 매우 위태롭다.

대장군 한신은 유방과 맞설 만큼 세력이 커지자 모반의 죄를 뒤집어 쓴 채 비명에 갔다. 천하를 삼분(三分), 독자적 세력을 유지하라는 책사 괴통(?通)의 충고를 한 귀로 듣고 흘려버린 결과다.

한때 모택동의 후계자로 지목되었던 류사오치(劉少奇, 1898~1969)는 문화혁명 때 주자파(走資派)로 몰려 비참한 최후를 고했다. 장제스의 심복으로 비밀정보기관의 수장이었던 다이리(戴笠, 1897~1946)도 그의 보스로부터 견제와 의심의 눈초리를 피해 갈 수 없었다. 그는 결국 비행기 추락 사고로 생을 마감했다. 비행기 안에 폭탄을 장치해 암살했다는 말도 전해진다. 이들은 모두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몰라 천수를 누리지 못했다.

최근에 ‘섭정왕’ 장성택(1946~2013)도 40년을 권력의 단맛에 취해 살다 기관총 세례를 받았다. 김일성의 사위가 된 순간부터 그의 비극적 파멸은 예정돼 있었는지 모른다. 당 정치국 확대회의 석상에 끌려나온 그의 모습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의 그것과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 그의 비극적 종말을 접하고 깊은 탄식과 아울러 측은지심이 일 뿐이다.

지나치게 나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 ‘역사의 혼’으로 추앙받는 사마천은 흉노족에 투항한 동료 이릉(李陵)을 변호하다가 한 무제의 분노를 사 궁형(宮刑)의 치욕을 맛보았다. 강직한 성품을 지닌 그가 별로 가깝지도 않은 친구를 감싸다가 도리어 자신에게 화가 미친 것이다. 사마천은 꽤나 오지랖이 넓었던 것 같다.

출세를 향한 인간 군상들의 욕망의 끝은 어디인가. 일례를 들어보자. 군사령관을 지낸 어느 육군대장이 참모총장으로 발탁되지 못하자 밤새 통음(痛飮)하며 통곡했다는 씁쓸한 얘기가 한때 회자(膾炙)되었다. 이 육군대장은 ‘하늘의 별’을, 그것도 네 개씩이나 이마에 주렁주렁 달고도, 더 높은 지위에 오르지 못해 가슴을 부여잡고 울분을 토한 것이다.


권력의 중심, 호랑이와의 동반

정오의 햇살은 몇 시간 뒤면 서산 너머로 사라진다. 달도 차면 이지러지는 법이다. <주역> 건괘(乾卦) 편에 ‘항룡유회 영불가구야(亢龍有悔 盈不可久也)’라는 경구가 나온다.‘올라갈 데까지 올라간 용(亢龍)은 추락하는 일만 남았다’는 뜻이다. 한신부터 장성택에 이르기까지 뭇 항룡들은 예외 없이 모두가 다 추락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했다. 조선 왕조에도 모난 인물들이 많았다. 조광조(1482~1519)나 김옥균(1851~1894)은 뜻을 제대로 펼쳐 보지도 못하고 반대파의 공격을 받아 요절한 인물들이다. 조광조는 37세의 나이로, 김옥균은 43세를 일기로 파란만장한 삶을 마쳤다. 이들은 너무 일찍 이름이 드러나 반대파의 공적(公敵)이 되고 말았다. 중국 속담에 ‘대장부는 마땅히 굽혀야 할 때 굽히고, 펴야 할 때 펼 줄 알아야 한다(能屈能伸)’고 하였다. 이들은 왜 나아갈 줄만 알고 물러날 줄을 몰랐는가.

<장자> 인간세(人間世) 편에서는 역설적으로 ‘무용의 용(無用之用)’을 강조했다. 계수나무는 계피를 먹을 수 있어서 베어지고, 옻나무는 옻칠에 쓸모 있어 쪼개진다고 했다. 곧게 쭉 뻗은 나무는 제일 먼저 도끼에 맞아 잘려 나간다. 반면에 역한 냄새와 함께 진액이 묻어 나오는 나무나 굽은 나무들이 오래도록 생명력을 유지한다. 깊은 늪 바닥, 진흙 속에 몸을 숨긴 자라는 천수를 누린다.

전설적 은자(隱者)로 널리 입에 오르내리는 허유(許由)라는 인물이 있다. 요임금이 그에게 천하를 양도하려고 하자 손사래를 치며 달아났다. 부끄러운 말을 들었다고 여겨 냇가(潁水)에 가서 두 귀를 빡빡 씻었다. 천하를 얻고도 목숨을 보전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음을 깨달았던 것일까.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알아서 화를 면한 인물로 연나라 사람 채택(蔡澤)을 꼽는다. 그는 진나라로 건너와 재상이 된 지 몇 달 만에 누가 모함하자 병을 핑계로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나 화를 피했다. 유방의 모사(謀士) 장량(張良)도 사욕을 버리고 권력의 중심에서 벗어남으로써 한 몸을 잘 보존했다. 이들은 ‘군주를 모시는 것은 호랑이와 동반하는 것(伴君如伴虎)’처럼 위태로운 일임을 직감적으로 체득했던 것이다.

가끔 TV를 켜면 우울한 얘기가 종종 들린다. 전직 어느 세무공무원은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 승진 누락 등으로 우울증을 앓다 자살하였다고 한다. 참으로 애석할 뿐이다. 인간만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 하였다. 승진 안 된 것이 차라리 복이 될지, 승진된 것이 오히려 화가 될지 아무도 모른다. 출세 못했다고 너무 슬퍼하거나 가슴 아파할 필요없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변화무쌍한 인간사회에서 영원한 승리자도 영원한 패배자도 없기 때문이다. 사마천이 들려주는 얘기가 이 새벽에 유독 귓전을 울린다.

“물을 거울로 삼는 사람은 자기의 얼굴을 알고, 사람을 거울로 삼는 사람은 자기의 길흉을 안다.”(<한권으로 보는 사기> 사마천 저, 김진연·김창 편역, 3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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