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현의 중국문화산책] “가마우지보다 더 탐욕스런 새는 어떤 ‘새’인가?”
*중국 속담 속에 담긴 ‘중국인의 지혜와 처세, 그 달관의 예술’
林子大了,什??都有
(린즈따러, 선머냐오 떠우이어우)
“숲이 크면 온갖 새가 다 있다.”
이 속담은 곧잘 인간 사회에 비유된다. 인간사회에는 별 희한한 사람도 다 있다는 뜻으로, 주로 부정적 의미로 사용된다. 숲 속에는 온갖 새들이 존재한다. 백로처럼 단아한 새들이 있는가 하면, 참새·뱁새 같은 작은 새들도 있다. 키 작은 뱁새는 무시당하기 일쑤다. 그러나 뱁새는 자신의 분수를 안다. 뱁새는 넓은 숲 속에 살지만 오직 한 개의 나뭇가지에다 둥지를 튼다. 장자 (莊子)의 「소요유(逍遙遊)」에 나오는 유명한 얘기다.
새들 중에는 가마우지처럼 탐욕스런 새도 있다. 가마우지는 구부러진 주둥이와 긴 목으로 물고기를 재빠르게 낚아채 쉽게 삼킨다. 제법 큰 잉어도 거뜬히 먹어치운다. 그러나 가마우지보다 더 탐욕스런 ‘새’가 있다. 이 ‘새’는 가마우지의 목 아랫부분을 끈으로 묶어 물고기를 삼키지 못하도록 한 다음, 물고기를 토해내게 한다. 그리고 가마우지가 애써 잡은 물고기를 가로챈다. 이 ‘새’가 바로 무한정 탐욕을 부리는 인간이다. 직설적 표현을 가급적 자제하는 중국인들은, 세상에는 가지각색의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본 속담을 인용해 에둘러 표현한다.
중국은 거대한 ‘인간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중국에서 ‘밑바닥 생활’을 몇 년 해보니, 중국이란 ‘숲’에는 ‘나쁜 새’들이 훨씬 많이 눈에 띤다. 13억이 우글거리는 ‘숲’에, ‘좋은 새’는 어디로 다 사라지고 ‘참새’, ‘가마우지’들만 눈에 띈다. 시장에 야채를 사러 갈 때면 가끔 낯익은 순진한 중국인들이 묻는다.
“한국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이 많아요, 나쁜 사람들이 많아요?” 이 한심한 질문에 그들이 즐겨 인용하는 경구로 답변을 대신한다.
“린즈따러, 선머냐오 떠우이어우.”
대한민국의 면적은 중국의 100분의 1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작은 숲에도 온갖 ‘나쁜 새’들이 활개를 친다. ‘참새’들이 사회 전체에 끼치는 해악은 그다지 크지 않다. 선한 척하는 지도자급 ‘새’들이 문제이다. ‘모피아’, ‘원전 마피아’라는 용어가 최근 뉴스의 한 면을 장식하였다.금력과 유착한 원전 마피아들의 탐욕을 정홍원 총리는 무장공비 규탄하듯, ‘천인공노할 만행’이라 하였다. 다소 어색한 표현이지만 십분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중국과 한국의 숲에 정도를 지키며 정직하게 살려는 ‘새’는 일급수에 사는 열목어만큼이나 귀한 것 같다. 이들은 어쩌면 현대사회에서 가장 무능한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전설적인 은자(隱者), 허유(許由)처럼 다 깊은 숲속에 숨어버린 것 같다.
중국에서도 하남성 사람들에 대해 편견이 다소 존재한다. 장쑤(江蘇)성에서 만나, 주말마다 낚시를 함께 즐겼던 한 중소기업체 사장도 하남성 사람들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하남성 사람들은 도무지 믿을 수가 없어요.”
이것도 알고 보면 편견에 불과하다. 일부 사람들은 도둑, 사기군, 강도, 흉악범 중에 하남성 사람들이 가장 많다고 여긴다. 하남성 인구는 4~5년 전에 이미 1억명을 돌파하였다. 인구가 많다보니 이런 저런 오해 아닌 오해도 받고 사는 것 같다. 사람은 다 똑같은데 중국이나 한국 모두 지역감정을 쉽사리 떨쳐버리지 못한다.
대한민국이라는 작은 숲에 사는 ‘새들’도 , ‘경상도 보리 문둥이’, ‘전라도 개똥사니’하며 편을 가른다. 작은 숲 속에서 선거철만 되면 ‘문둥이’와 ‘개똥사니’가 뒤엉켜 한바탕 진한 싸움을 벌인다. 수십 년 간 반복된 이 지리한 싸움이 언제 그칠지 아무도 알 수 없다.지금은 ‘국정원 대선 개입 논란’과 ‘NLL 포기’ 발언으로 여당과 야당이 ‘진흙밭 개싸움(泥田鬪狗)’을 벌이고 있다.
숲 뿐 아니라 늪에서도 해로운 생물들이 생태계를 어지럽힌다. 얼마 전 뉴스에, 울산 태화강에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큰 입 배스 한 마리가 알을 한꺼번에 1만 마리나 낳았다며 야단법석이다. 배스는 완장을 차고 행세하는 물속의 ‘수퍼 갑’이다. 이것들은 피라미, 토종 붕어나 잉어의 치어들을 닥치는 대로 먹어치운다.
한편, 경남의 한 농촌 마을에서는 때 아닌 뉴트리아 섬멸 작전이 벌어졌다. 털과 고기를 목적으로 들여 온 외래종 뉴트리아가 늪, 소하천, 논 할 것 없이 무차별 출몰하며 평화롭던 농촌마을을 뒤흔들었다. 어린 벼 싹의 끝을 모조리 뜯어 먹은 것이다. 뉴트리아는 그 크기가 고양이만하다. 이 ‘괴물’이 물고기 등을 먹어치우는 양과 번식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어느 자치단체에서는 마리당 3만원의 ‘현상금’을 내걸고 소탕작전을 벌였다. 그러나 그 개체수가 얼마나 많던지 이미 확보한 기금이 고갈돼버렸다고 한다.
뉴트리아나 배스는 ‘현상금’을 걸고 소탕할 수 있지만, ‘원전마피아’처럼 도처에 선한 모습을 한 ‘인간 뉴트리아’들은 이들보다 훨씬 교활해서 소탕하기가 쉽지 않으니 애석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