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현의 중국문화산책] “마음이 맞으면 천 잔의 술도 부족해”
*중국 속담 속에 담긴 ‘중국인의 지혜와 처세, 그 달관의 예술’
酒逢知己千杯少,?不投机半句多
(지우펑즈지 첸베이샤오, 화 뿌터우지 빤쥐뚸)
“술은 마음이 맞는 사람과 마시면 천 잔으로도 부족하고, 말은 마음이 맞지 않으면 반 마디도 많은 법이다.”
<이백, 두보를 만나다>(다카시마 도시오 저, 이원규 역)에 보면 두 시인 간 극적인 만남과 절절한 이별의 얘기가 나온다. 둘은 ‘첫 눈에 반한 남녀(一見鍾情)’처럼 한 눈에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았다. 몇 마디 말을 주고받자 곧 의기투합하였다.
이백과 두보는 열한 살 차이가 난다. 마흔 네 살의 이백과 서른 세 살의 두보는 허난(河南)성 뤄양(洛陽)에서 처음 만났다. 호탕한 이백과 고지식하고 사교성 없는 두보라는 천재 시인이 만나자마자 인생과 문학을 얘기하며 술판을 벌였다. 두 사람은 술에 취해 한 이불을 덮고 잤다고 한다. 둘이서 마음이 맞다 보니 ‘천 잔의 술’도, ‘만 마디 말’도 부족했을 것이다.
오래 전 우연히 알게 된 중국인 양(楊)장군은 기분이 좋을 때는, 경기도 파주 농가주택에 앉아 “지우~펑즈지, 첸베이샤오…”하면서 연거푸 술을 들이켰다. 스무 살 남짓한 호기어린 대학생에서부터 늙수그레한 교수, 농민공, 시장 바닥 사람에 이르기까지, 우연히 알게 된 중국인들은 술 한잔 들어가면 흥에 겨워 이 속담을 곧잘 입에 올린다. “지우~펑즈지, 첸베이샤오, 화, 뿌터우지 빤쥐뚸.” 그리고 금세 친해진다.
이와 정반대의 사례도 흔하디흔하다. 우리나라 명문 사립대학 교수 사이에 벌어진 ‘서글픈’ 얘기다. 같은 대학, 한 건물, 유사한 전공을 하며, 옆 연구실에 위치한 두 교수는 ‘견원지간(犬猿之間)’이다. 두 사람은 30년 가까운 세월을 한 울타리에서 보냈으나, 성남 모란 시장, 개장 속의 개들처럼 서로가 늘 으르렁 거린다. 학자적 자세며, 학덕(學德)이 부족하다고 서로를 헐뜯는다.
“그런 작자가 교수야!”
이쯤 되면 서로가 얼굴을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이들 사이의 알력(軋轢)은 제 3자가 보기에는 ‘도토리 키 재기’ 일뿐이다.
이들은 백발이 되도록 말 한마디 섞지 않은 채 결국 은퇴하고 말았다. 의기가 투합하지 않으니 반 마디 말도 아까운 것이다(?不投机半句多). 술 한 잔 같이하며 서운한 감정을 풀 수도 있었을 텐데, 이제는 영원히 돌이킬 수 없게 돼버렸다. ‘남과 북’의 관계처럼 아예 처음부터 대화를 단절해버리고 만 것이다.
우리 사회는 언제부턴가 장삼이사(張三李四)는 물론 국회의원, 대학교수를 막론하고 서로가 싫으면 말 한마디 나누지 않는다. ‘윤창중 음주 자폭사건’, ‘육사 생도 음주 성폭행 사건’에서 보듯, 많은 폐해에도 불구하고 서먹서먹한 감정을 풀어주는 데는 술 만한 ‘명약’도 없다.
남자들은 종종 술친구가 그립고, 여자들은 같이 떠들고 얘기를 들어 줄 친구가 그립다. 가까운 벗들과 포장마차에서 소주 몇 잔을 마시며, 상사를 안주삼아 ‘오징어포처럼 씹고’ 나면 하루의 피로가 싹 가신다. 여자들은 찻집에 진을 치고 앉아 수다를 떤다. 이 사람 저 사람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흉을 보고 나면 하루 스트레스가 말끔히 풀린다.
이국 땅, 텅 빈 거실에 홀로 앉아 맥주 한 컵을 부어 놓고 시름을 달랜다. 설탕물처럼 달던 맥주 한 컵이 목에 걸려 도무지 넘어가지 않는다. 입안에 담고 있다가 쓴 맛이 거슬려 그만 뱉어버리고 말았다. 이 시간, 더불어 술 한 잔 기울이고 싶은 양 장군, 낚시터에서 우연히 만난 술친구, 미장이 송 씨가 몹시도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