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론자의 후예를 경계한다

<동북아역사재단-아시아엔(The AsiaN) 공동기획>

*편집자 주: 동아시아 지역 안보에 격랑이 일고 있다. 뿌리 깊은 영토분쟁과 민족갈등이 상존하는 가운데 북한 핵 위기 또한 고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당사국인 한국과 중국, 일본 모두 지도부 교체기를 맞아 새로운 질서를 모색 중이다. 아시아엔(The AsiaN)은 동북아역사재단과 공동기획으로 한·중·일 새 정부 출범에 맞춰 동북아 역사현안 및 갈등 해소 방안을 강구하는 국제전문가 기고 시리즈를 마련했다. 총 8회에 걸쳐 한글·영어·중국어·아랍어 등 4개 국어로 게재되는 이 기고 시리즈는 역내 현안에 대한 아시아 각국 전문가·언론인의 깊이 있는 통찰과 분석, 해법을 제시한다.

[동북아현안 국제전문가기고 시리즈] ⑤ 힘이 넘치면 이웃나라를 넘보는 일본

조석으로 변하는 나 자신도 알기 힘든데, 일본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더 더욱 어려운 일이다.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不如近?)”는 말이 있다. 이 속담은 두 나라 간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같은 한자? 유교문화권에 살고 있으며 얼굴 모습도 비슷한데 양국은 물과 기름처럼 따로 논다. ‘쪽바리!’, ‘조센징!’이라며 서로를 비하한다.

지난 2월 17일 도쿄 한인타운에서 대규모 반한시위가 열렸다. 2월 22일, 시마네현(島根)에서는 ‘다케시마의 날’ 행사를 강행하였다. 일본 정부는 차관급 고위 공직자를 파견하여 독려하였다.

일부 극우 활동가들은 “일본에서 한국인을 제거하자”며 태극기를 찢고 발로 밟았다. 스즈키 노부유키(鈴木信行)라는 인물은 “다케시마는 우리 땅이다. 그 곳에 거주하는 한인을 반도로 쳐 넣자”는 극언을 퍼부었다.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 1827~1877) 와 같은 정한론자(征韓論者)의 후예들이 지금 일본 전역에서 극성을 부리고 있다. 예의주시할 일이다.

“일본인은 강자에 약하고 약자를 경멸하는 경향이 있다.”

귀에 익숙한 이 말은 맥아더가 사용함으로써 널리 알려졌다. 일본인의 속성을 단적으로 드러내주는 말이 아닌가 싶다. 일본인의 이중성을 극명하게 표현하는 용어로, 흔히 ‘혼네(本音)’와 다테마에(建前)를 예로 든다. ‘혼네’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이요, ‘다테마에’는 겉치레 말이다.

<국화와 칼(The Chrysanthemum & the Sword)>의 저자, 루스 베네딕트(Ruth Benedict, 1887~1948) 여사는 일본인의 행동특성을 분석한 결과, 특유의 이중적 성향을 지니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일본인은 유례없이 예의바르다. 그러나 또한 불손하며 건방지다.
·일본군인들은 로봇같이 일사불란하다. 그러나 또한 병사들이 공공연하게 반항한다.
·일본인은 국화(평화) 가꾸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또한 칼(전쟁)을 숭배한다.

힘을 과시하며 야욕을 부리다 패망한 역사가 일본의 역사다. 일본은 700년 동안의 무가정권을 거치는 동안 본능적으로 ‘칼’의 힘을 앞세웠다. 그리고 힘이 팽창하면 이웃나라를 넘보았다. ‘정한론(征韓論)’에 근거하여 우리에게 치유하기 힘든 상흔(傷痕)을 남겼다.

<일본서기>는 왜곡과 허구의 전범(典範)이다. 신공(神功)황후가 임신한 몸으로 고구려? 백제? 신라를 정벌하였다고 날조한다. 이처럼 정한론은 신화시대에 그치지 않고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으로 이어졌다.

한상일은 <일본 지식인과 한국>에서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 1838~1922),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1835~1901) 등 ‘정한론자’들이 조선을 어떻게 인식하였는가를 서술하고 있다.

야마가타 아리토모는 메이지 시대 대륙정책을 주도한 인물로서, ‘이익선론(利益線論)’을 펼쳤다. 즉, 한 국가가 독립을 유지하려면 ‘주권선’을 수호하는 것만으로는 충족되지 못하고 ‘이익선’을 방어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일본의 이익선(또는 생명선)의 초점은 조선에 있다.”고 하여, 정한론의 근거로 삼았다.

일본 지폐 일만 엔에 등장하는 후쿠자와 유키치는 일본의 국민적 영웅으로 불린다. 그는 “문명국 일본이 ‘작은 야만국’ 조선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며 조선에 대한 야심을 드러냈다. 일본에서는 비록 ‘현자(賢者)로 추앙받을 지라도 우리에게는 침략논리를 제공한 간웅(奸雄)일 뿐이다.

구한말 지식인들은 후쿠자와의 기만에 찬 ‘조선의 독립’ 논리에 매몰돼, 대한제국은 결국 35년 간 식민지배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갑신정변 무렵, 그의 문하생 노릇을 했던 이동인, 박영효, 김옥균, 서광범 등을 비롯한 개화파들의 ‘순진함’에 저절로 장탄식이 나온다.

일찍이 동북아의 평화를 위해 일본과의 화해와 공존의 방략을 제시한 인물들이 많았다. 안중근은 옥중에서 집필한 미완의 ‘동양평화론’에서 한? 중? 일 삼국 간 평화의 길을 모색했다.

“여순(旅順)에 동양평화회의 본부를 두고 각국에 지부를 두자. 공동은행을 설립하고 공동화폐를 사용하자. 3국의 청년이 공동 군단을 만들고 언어를 익혀 우방 또는 형제의 관념을 높이자.”

1925년 간암으로 사망한 손문은 죽기 몇 개월 전 고오베에서 <대아시아주의>라는 유명한 연설을 하였다.

“당신들 일본 민족은 서방패도의 앞잡이가 될 것인가, 아니면 동방왕도의 방패가 될 것인가, 그것은 일본 국민이 신중하게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될 일입니다.” (시바료타로 司馬遼太郞저, 서석연 역, <일본, 일본인 탐구> <혁명가 손문의 일본 인식>)

조선의 처지를 이해하고 감싼 양심적인 일본인도 있었다.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1889~1961)는 한국 민족의 대변자로서 일본의 잘못을 비판하며 대한의 독립을 호소했다. 한국과의 선린 우호를 강조한 양심적인 일본 지식인의 전형으로 평가된다.

수학자요, 문명비평가인 김용운(1927~ )은 ‘문화공존의 시각’을 제기하여, 한? 중? 일 세 나라의 화합을 추구하였다.

“한? 중? 일 세 나라는 유교라는 기반과 공통된 한자문화권이라는 이점이 존재한다. 이를 확대해 나가면서 보편적 가치를 지닌 문화를 만들어 나가자는 것이 나의 목적이다.”(<한 중 일의 역사와 미래를 말한다>, 문학사상사) 그는 아울러 ‘아시아 대학’ 설립을 제기하여 교육과 문화 교류를 통한 공존을 도모하였다.

그러나 틈만 있으면 ‘패도’를 부르짖는 일본과의 상생은 과연 가능한가? ‘다케시마의 날’ 행사를 배후조종하는 듯한 일본 지도자들의 이중적 행태를 목도하며 근본적인 회의감마저 든다. 일본은 가해자가 아니라 전쟁의 피해자로 자처한다. 침략과 강탈의 일본 역사를 ‘자학사관(自虐史觀)’이라며, 역사를 마음대로 해석하고 왜곡한다.

‘칼’의 힘을 믿고 설쳐대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 상대에게, ‘약자’가 아무리 “갈등과 반목을 극복하고 화해와 평화의 길로 나아가자.” 고 외쳐본 들 공허한 메아리에 지나지 않는다. 화해와 공존을 논하기에 앞서, G2로 우뚝 솟은 중국처럼 힘을 길러야 일본의 망동을 잠재울 수 있다.

백암 박은식(1859~1925) 선생이 그 해답을 명쾌하게 제시하였다.

“안중근이 평시에 대성질호(大聲疾呼)하며 우리 국민에게 고한 것은 단합주의(團合主義)다. 우리 동포들은 그것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아! 안중근이 손에 칼을 쥐고 우리의 좌우에서 지켜보고 있다.”(김삼웅, <안중근 평전>) <글=강성현/중국 섬서성 웨이난 사범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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