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안보 위기에 대한 상식적 접근법

<동북아역사재단-아시아엔(The AsiaN) 공동기획>

*편집자 주: 동아시아 지역 안보에 격랑이 일고 있다. 뿌리 깊은 영토분쟁과 민족갈등이 상존하는 가운데 북한 핵 위기 또한 고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당사국인 한국과 중국, 일본 모두 지도부 교체기를 맞아 새로운 질서를 모색 중이다. 아시아엔(The AsiaN)은 동북아역사재단과 공동기획으로 한·중·일 새 정부 출범에 맞춰 동북아 역사현안 및 갈등 해소 방안을 강구하는 국제전문가 기고 시리즈를 마련했다. 총 8회에 걸쳐 한글·영어·중국어·아랍어 등 4개 국어로 게재되는 이 기고 시리즈는 역내 현안에 대한 아시아 각국 전문가·언론인의 깊이 있는 통찰과 분석, 해법을 제시한다.

[동북아현안 국제전문가기고 시리즈] ①?평화와 번영의 큰 그림을?먼저 보라

동아시아에서 이웃의 평화를 어지럽히는 요란한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다.? 갈등지역은 한반도의 비무장지대(DMZ)부터 남중국해에 이른다.

북한의 젊은 지도자 김정은은 최근의 핵실험에 대해 “미국을 겨냥한 것”이라고 득의양양하게 선언했다. 그는 또 “이명박을 비롯한 역적동맹은 우리가 그들의 위협과 적대적 태도에 굴복하지 않을 것임을 알아야 한다”며 “필요하면 핵실험을 더 할 수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은 “북한의 심각한 도발행위는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일본에서는 아베 신조 총리가 중국 해군이 일본 전함과 헬리콥터에 대해 사격용 레이더를 조사한 ‘위험한’ 행위에 대해 중국측에 사과를 요구했다. 중국당국은 그런 사실을 부인하면서 “일본이 ‘중국의 위협’이란 유령을 만들기 위해 없는 일을 꾸미고 있다”고 말했다.

위기를 고조시키는 이런 긴장상황은 이미 중일전쟁과 한국전쟁의 상흔을 안고 있는 이 지역에 무슨 전조일까. 한반도 비핵화를 원하는 주변국들은 북한이 3차 핵실험을 감행으로써 국제사회에 대항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싱가포르도 최근 이 대열에 합류했다. 싱가포르 정부는 외교부 성명을 통해 “핵실험은 북한의 안보를 개선시키지 않으며, 북한 자체를 포함한 모든 나라에 손상을 입히고 불안을 야기하는 위협요인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흥미로운 점은 싱가포르를 비롯한 동남아 국가들의 북한 핵 위협에 대한 통상적인 대응방식이 도전 받고 있다는 점이다.

말레이시아 국제전략연구소(ISIS)의 정치분석가 무티아 알가파(Muthiah Alagappa)는 동남아의 새로운 입장을 잘 보여준다. 그는 북한이 핵무장을 추구함으로써 실질적인 안보 위해요인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알가파는 미국 워싱턴 카네기국제평화재단(CEIP)의 비상임 수석연구원이다.

그는 미국과 그 동맹국, 그리고 중국이 불행하게도 북한 핵 문제에 근본적으로 대처하는 데 실패했다고 주장한다.?‘선군정치’를 내세운 북한은 주민들에게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한 국제 제재와 고립이라는 값비싼 대가를 치렀지만 핵을 포기하지 않았다. 6자회담을 비롯한 여러 시도는 북한의 핵개발을 되돌리는 데 무력했다. “세계는 이제 북한의 핵 보유라는 현실을 직시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알가파는 말한다.

이런 현실은 핵무기 비확산 규정을 어긴 북한에게 오히려 보상을 준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까.?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핵무기 개발을 통해 김정은 체제는 왕조통치를 유지시키고 미국, 한국 정부와의 협상력을 강화하고자 해왔다.

김정은은 그러나 자신들의 핵 개발이 이미 미국의 핵우산으로 보호받고 있는 남한과 일본을 포함한 역내 핵무장 경쟁을 불러일으킬 것임을 간과한 듯하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동맹관계인 한국과 일본에 대한 미사일 방어체제 강화를 약속하면서 북한에 대해 단호한 행동에 나설 것임을 경고했다.

미국이 군사시설에 대한 ‘외과수술’적 타격을 가해 북한을 공략하지 않는다면 어떤 식으로든 핵 보유국으로서 북한에 대처할 새로운 방안을 모색하게 될 것이다.

알가파는 “이제 아시아와 서구의 정책결정권자와 전문가들은 가짜 안보 담요를 걷어내고 냉전 이후 마비의 시대를 넘어 좀더 현실적인 일을 해야 할 때”라며 사고방식의 전환을 요구했다.? 그는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이런 자극을 준 북한에게 감사해야 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미국과 일본, 한국의 정책담당자들은 동아시아 안보 위협이 북한의 핵 개발뿐 아니라 슈퍼파워로 부상한 중국의 공격성과도 관련돼 있다고 믿는다.

권위 있는 중국 전문가이자 관측가인 싱가포르국립대(NSU) 리콴유공공정책대학원의 왕궁우(Wang Gungwu) 교수는 그러나 중국을 안보와 평화에 근거한 세계질서를 위협하는 잠재요인으로 바라보는 것은 잘못된 시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많은 언론 헤드라인이 중국을 지난 세기 독일과 일본이 견지한 세계질서를 위협하는 존재로 간주하며 중국이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에서 취해온 행동에서 물러나 국제사회 시스템에 순응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독일과 일본은 미국, 영국, 프랑스가 지배하는 국제사회 시스템에 도전했다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했다.?일본과 몇몇 동남아 국가들은 미국이 아시아지역에 드려온 안보 차양을 밀어내려는 중국의 점증하는 위세를 우려하고 있다.

왕 교수는 이렇게 분석한다. “일본과 동남아 국가들은 부상하는 중국에 맞설 자신들의 미래 입지를 오늘날의 국제관계 체제가 그대로 존속하는 것으로 상정하고 그 구도에 의존하고 있다. 이들 국제사회 시스템 수호자들은 떠오르는 중국이 개방과 자유화를 꺼릴 것으로 전망하고 중국이 강력해질수록 국제사회 규칙에 따라 행동하도록 하는 게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미국-중국 사이의 잠재적 대립각이 있다. 중국 지도부가 영토분쟁 중인 섬들에 대한 영유권을 지키기 위해 국제사회 규칙을 위반한다면 대결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는 시나리오다.? 왕 교수도 일부 중국 지도자들이 게임의 보편적 규칙을 지키지 못할 수 있음을 인정한다.

실제로 중국은 인근해역에 석유·가스가 풍부한 동중국해와 남중국해 분쟁 도서지역에서 일본, 필리핀, 베트남과의 해군 전면대결을 염두에 두고 군사력의 몸을 풀고 있다는 듯 보인다.?왕 교수는 그럼에도 이 지역 갈등의 핵심이 중국의 패권강국 부상이나 중국의 패권 추구에 대한 오해에 있지 않다고 말한다.

그보다는 일부 국가가 미국이 강요하는 시스템에 중국이 순응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데 갈등의 본질이 있다고 왕 교수는 보고 있다.?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정말 문제되는 것을 중국의 선제적 대응만이 아니다.? 미국이 기존 국제질서를 얼마나 더 강화하려고 하는지, 특정지역을 지키려는 중국의 욕구를 얼마나 잘 이해하는지 또한 매우 중요한 요소다.”

난마와도 같이 얽힌 중-일 관계에서 발생하는 전쟁 조바심은 냉정한 판단으로 다스려야 한다. 이와 관련해 싱가포르의 정론지 <스트레이트 타임즈>는 최근 사설에서 “중국과 일본 두 나라는 역내 질서 속에서 양국관계가 가장 중요한 축임을 새롭게 인식하고, 신뢰 구축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상식적 접근법에 입각해, 나는 두 나라 지도자들이 본격적인 적대행위에 이르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분석가들은 중국이 일본을 무너뜨리기 위해 ‘지연전술’을 쓰고 있다고 본다. 중국은 일본이 중국의 항의를 무릅쓰고 센카쿠/댜오위다오 열도를 국유화한 데 대해 교훈을 주려 할 뿐 무력을 사용해 영유권을 주장하지는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중국과 일본은 과거 전쟁을 치렀기 때문에 서로 상대의 힘을 잘 알고 있다. 마찬가지로 중국과 미국도 1950~1953년 한국전쟁에서 싸운 바 있다. 한 고참 언론인은 재래식 전쟁이 초래하는 가공할 파괴와 인명살상을 상기시키면서 “이들이 전쟁을 벌인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미친 짓”이라며 “더구나 각자 핵무기를 지닌 오늘날 전쟁을 생각한다는 게 가당한 일이겠냐”고 반문했다.

그렇다면 이미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값비싼 전쟁을 치른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사태를 냉정하게 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미국의 존 케리(John Kerry) 신임 국무장관은 중국 지도부와 상호호혜적인 파트너관계 구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와 중국의 새 지도자 시진핑도 정상회담을 통해 협상을 통한 문제해결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양국이 좀 더 큰 안목의 이해관계에 초점을 맞춘다면 최선의 희망적 결론이 도출될 것이다.

두 나라는 개혁·개방을 이끈 중국의 지도자 덩샤오핑과 일본의 소노다 스나오 전 외무대신의 회담과정에서 도약의 발판을 찾을 수 있다. 두 사람은 1978년 중국과 일본 간의 국교 정상화 협상에서 센가쿠/댜오위다오 열도 문제에 대한 이견이 결코 핵심 사안을 훼손시키지 않도록 한 채 합의를 이끌어 냈다.

중국의 공식문서는 덩샤오핑이 당시 이렇게 말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 문제를 지금 끌어들이지 말자.
그런 사안은 나중에 따로 차분히 논의할 수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양측이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방안에 이를 수 있다. 만약 우리 세대가 그 길을 찾지 못한다면 다음 세대, 또 다음 세대가 길을 찾을 수 있다.”

이것이 현실에 적용된 실용주의이며, 일을 해나가는 합리적인 자세다. 큰 구상을 우선시하라. 중국과 일본에게 큰 그림은 아시아태평양 지역, 나아가 전세계의 평화와 번영이다.

북한에게는 2월25일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취임이 이명박정부에서 얼어붙었던 관계를 털고 ‘햇볕정책 타입의’ 새로운 대화와 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는 기회다. 그 과정에서 현재 진행중인 대결과 설전을 잠재울 수 있을 것이다. <글=이반림 아시아기자협회 회장>

*원문은 아시아엔(The AsiaN)?영문판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http://www.theasian.asia/archives/610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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